[방송 따져보기] ‘여성 아나운서’를 바라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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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TV <뉴스9> 새 얼굴 이현주 아나운서가 메인뉴스 앵커 한 달째를 맞이했다. 발탁 당시부터 언론의 조명을 크게 받은 인선이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관련기사들 중 비판적 입장을 취한 건, 필자가 확인해본 결과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스포츠월드> 7월11일자 기사 ‘KBS 이현주 발탁 논란 “여자 아나운서는 젊고 예뻐야…” 성차별적 시각’이다.

기사는 “2009년 3월 공채 35기로 KBS에 입사해, 경력이 불과 4년차에 불과한 28살의 이현주 아나운서가 KBS 간판 프로그램 ‘9시뉴스’의 앵커를 맡은 것은 KBS 내부에서도 파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며 “이는 방송국에서 여성 앵커를 단지 ‘꽃’으로 보는 여성 차별적 시각과도 일맥상통한다. 여성 앵커를 경력이나 능력보다는 젊음과 미모로 평가하는 시각을 답습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짚었다.

틀린 구석이 없는 지적이다. 그런데 아무도 이 같은 논지를 이어받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나자 이런 지적조차 사라졌다. 메인뉴스 오른쪽 자리는 ‘본래’ 미모의 젊은 미혼 아나운서 몫이라는 것이다. 늘 그랬듯 말이다. 그렇게 발탁된 여성앵커가 30줄을 넘기고 유부녀가 되고 나면, 그 자리는 또 다른 미모의 젊은 미혼 아나운서에 돌아갈 것이다.

▲ KBS 1TV <뉴스 9>의 앵커로 발탁된 이현주 아나운서. ⓒKBS

이현주 아나운서에 딱히 문제가 있다는 얘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의욕 있고 자질 있는 젊은이이기에 그 위치까지 올랐을 것이다. 문제는 메인뉴스 여성앵커 발탁관행이다. 아나운서로서 능력만 따지면 당연히 다양한 경험을 쌓은 베테랑 쪽이 월등할 것이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런데도 방송사 간판이라 할 수 있는 메인뉴스에 있어 아나운서란 직업군의 전문성은 너무 당연한 듯 무시되고 있다. 마침 KBS 측이 밝힌 이현주 아나운서 발탁 경위도 “참신한 인상” “남자 앵커인 민경욱 기자와 잘 어울린다” 등이었다. 말 그대로 ‘꽃’이 앉는 자리지 경륜이나 전문성과는 별반 관계가 없다는 자답이다.

해외 방송선진국들은 물론 이와 크게 다르다. 미국 ABC <나이트라인>이나 CBS <이브닝뉴스> 여성앵커들은 모두 50대에 발탁됐다. 상식적으로 베테랑 인선이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바로 나오는 해명이 있다. 미국 여성앵커들은 모두 기자 출신들이며, 기자와 아나운서는 서로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 한국처럼 여성 아나운서가 앵커도 맡는 일본은 어떨까. 지난해 NHK 메인뉴스 <뉴스워치9> 여성앵커로 발탁된 이노우에 아사히는 당시 입사 8년차, 우리나이 31세였다. 어쨌든 우리보단 베테랑을 뽑았지만, 그래도 여론의 비난이 끊이질 않았다. 공영방송조차 실력보단 외모로 여성앵커를 뽑았다는 비난이었다. 그런데 그런 비판여론이 한국에선 거의 비춰지질 않는다. 뭔가 크게 뒤틀린 상황인데,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

마침 극장가에선 경력 13년차 32세 여배우 전지현이 영화 <도둑들>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1000만 관객 돌파도 코앞이다. 이처럼 연예인들조차 실력을 쌓아 느지막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곤 하는데, 여성 아나운서는 아직 미숙한 때 간판뉴스 자리에 턱 앉은 뒤 정작 실력과 역량을 쌓고 나면 중심에서 밀려나고 만다. 세상에 이런 직업군이 또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도무지 더 떠오르는 게 없다. 참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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