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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정책에 대한 네 가지 신화(1) 비율강화로 다양한 독립제작사가 등장하는가

글싣는 순서■외주정책에 대한 네가지 신화 / 김재영 세종대 교수? 비율강화로 다양한 독립제작사가 등장하는가② 비율강화로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질이 확보되는가 ③ 독립사와 프로그램 해외경쟁력 강화의 상관관계④ 다매체 시대에 지상파의 수직적 통합구조는 해체돼야 하는가■외주정책논리의 비판과 대안 / 김진웅 MBC 연구위원⑤ 외국사례의 실상과 허상⑥ 외주정책, 대안모델의 모색외주비율 상향 정책이 실시되어 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21세기의 핵심 부가가치 산업인 영상산업을 진흥하기 위해서는 독립제작사를 육성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상파 방송의 수직적 통합 구조가 해체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그러나 지난 10년의 시행결과는 누가 보기에도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과연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현재의 외주 정책은 정말 충분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지금이 바로 이 정책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를 철저하게 따져봐야할 시점이다. 는 이번호부터 6회에 걸쳐 외주정책을 진단하는 연재를 싣는다. 연재글은 지난해 말 MBC에서 발간된 ‘방송과 커뮤니케이션’에 수록된 김재영 세종대 신방과 교수와 김진웅 MBC 연구위원의 글을 필자의 양해를 얻어 일부 편집한 내용이다. <편집자주> 현재 외주정책에서 가장 먼저 분석해야 할 대상은 지상파방송에 대한 외주제작 편성비율 의무화를 시행 및 강화해야만 다양한 독립제작사가 출현해 이들이 방송영상시장에서 프로그램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논리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독립제작사 활성화의 성공적인 모델로 꼽히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일본의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방송프로그램 공급원 구실을 담당하는 독립제작사들은 1900년대 초부터 자생적으로 성장해 현재 미국 영화산업의 총본산 구실을 하는 할리우드 대형제작사들이다. 이들은 영상물 제작의 오랜 전통을 통해 소비자들의 정서에 소구하는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특히, 인종문화의 ‘도가니’(melting pot)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인종 또는 민족으로 구성된 미국 영상시장에서의 독특한 경험을 통해 폭넓은 계층과 부류의 소비자들에게 가장 광범위하고 효과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제작기법에 매우 민감하다는 평가를 받고있기도 하다(Hoskins & Mirus, 1988, p.506). 할리우드와 같은 경쟁력 있는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공급하는 제작사의 존재는 방송사에 대한 어떠한 정책부과의 결과가 아닌 영화산업을 경유한 자생적인 것이었다. 미국에서 독립제작사를 육성하기 위한 정책방안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1971년 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는 방송시장에서 네트워크의 과도한 지배력을 견제하기 위해 ‘Fin-Syn Rule’(Financial Interest and Syndication Rules)1)과 ‘PTAR’(Prime Time Access Rule)2)을 시행한 바 있다. 이 두 규칙은 모두 1996년에 폐지되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그간의 규칙시행으로 당초 의도했던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기 힘들며 케이블방송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해 방송환경이 변화되면서 더 이상 네트워크가 방송시장을 지배하지 않게 되었다는 판단에서였다. FTC(Federal Trade Commission)는 FCC의 요청으로 이 두 규칙의 폐지여부에 관한 의견을 진술하는 문건을 통해 이 두 규칙 시행이후 독립제작사 수가 증가하거나 이들의 경제적 입지가 강화되었다는 실증적인 증거를 찾기 힘들다고 단정했다(FTC, 1995). 오히려 두 규칙이 시행되기 이전 10여 년 동안의 주 시청시간대 프로그램 가운데 네트워크가 독립제작사로부터 구입한 프로그램은 71%에서 84%로, 특히 오락물은 79%에서 96%로 현격히 증가했음을 지적했다. 이에 비해 두 규칙 시행 20여 년 이후인 1994년 가을 당시 세 네트워크 방송사들이 외주를 통해 주 시청시간대에 편성한 프로그램 비율은 5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FTC, 1995). 결국 독립제작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책시행과 무관하게 자생적으로 성장한 미국의 독립제작사들은 자신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이 네트워크를 통해 방영될 수 있는 기회를 독자적으로 창출했던 셈이다.독립제작사를 육성하기 위한 정책과 완전히 별도로 네트워크들이 자발적으로 독립제작사에 프로그램 제작을 의존하는 관행은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생산함으로써 네트워크의 상업적 이해를 유지해줄 수 있는 할리우드 대형제작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실제로 Fin-Syn Rule과 PTAR이 시행되면서 네트워크 차원에서 자체 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 비중이 줄어들자 이를 충당할 프로그램 공급원으로서의 할리우드와 유통창구로서의 네트워크는 보다 긴밀하면서도 엄격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1980년대 중반 네트워크에 접수된 독립제작사들의 대본이나 방송소재는 일년에 9천여 편에 달했으며, 방송사는 이 가운데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300개 가량을 골라 제작비를 투자했다. 완성된 작품들 가운데 90-100개 가량의 프로그램만이 재선별되어 조사대상 시청자들의 사전평가를 받게된다. 이를 통해 취합된 결과에 따라 12-20개 가량의 프로그램은 바로 네트워크를 통해 방영되고 10여 개 프로그램은 이후에 시리즈 등으로 변형되어 방영되는 식이다(Gottlieb, 1986). 이러한 네트워크와 독립제작사들의 방송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의 긴밀한 협조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영상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한 할리우드 대형제작사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방송프로그램 선별과정에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투자될 수 있었던 것은 프로그램 판매를 통해 거둘 수 있는 이윤이 투자비를 훨씬 능가하기 때문이다.3) 결론적으로, 미국의 독립제작사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은 지상파방송에 대한 어떠한 정책적 강제의 결과가 아니었으며 영화산업을 통해 자생적으로 축적된 경쟁력이 네트워크의 상업적 이해관계와 효과적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둘간의 결합의 바탕에는 세계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규모의 영상시장이 있음은 물론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외주제작 의무화 정책이 독립제작사 활성화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영국 방송시장은 1980년 이전까지 공영방송인 BBC와 상업방송인 ITV의 독점으로 인해 독립제작사가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였다. 최초의 독립제작사가 등장한 1962년이래 영국의 제작사들은 자국 내의 유통망을 뚫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1979년 시장원리에 입각한 거의 전 산업의 탈규제를 표방한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영국의 방송시장은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방송제작을 다변화하기 위해 독립제작사들의 유통망 구실을 하는 채널4가 설립되어 1982년 첫 방송을 한 것이다. 이 방송사의 출범으로 독립제작사들은 비로소 자국의 방송시장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채널4는 단 한편만을 자체 제작하고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독립제작사를 비롯한 외부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매년 700개 이상의 독립제작사에 프로그램을 위탁한다. 채널4의 등장으로 독립제작사가 활성화되고 1970년대부터 정체성 위기를 맞은 영국 영화산업도 발전하는 부수적 효과를 거두자 영국 정부는 1990년부터 기존의 BBC와 ITV에도 전체 편성의 25% 이상을 독립제작사 쿼터로 할당하도록 법제화했다. 이처럼 영국은 채널4라는 독립제작사 프로그램 전문채널을 출범시켜 독립제작사를 활성화시킨 후에야 기존 지상파방송에 외주제작 비율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취한 것이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외주제작 의무화정책의 결과로 독립제작사가 육성된 것이 아니라 독립제작사들의 프로그램 유통을 전담하는 채널을 설립함으로써 이들이 활성화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이밖에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도 독립제작사가 800여 개에 이르고 5대 민방의 외주비율도 70%를 상회할 정도로 독립제작시장이 활성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에는 현재까지도 독립제작사 육성 혹은 외주제작물 의무화에 관한 어떠한 법률이나 제도, 규칙 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에서 독립제작사가 활성화된 배경에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이 자리잡고 있다. 고도경제성장을 거듭하던 일본 경제는 1968년의 동경 올림픽 이후 불황을 겪으며 올림픽 개최 후에 남아도는 방송인력과 기자재들 때문에 민방들은 경영난에 봉착하게 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일환으로 방송사들이 자발적으로 프로덕션화를 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일본의 외주제작 형태는 제작저작, 공동제작, 제작협력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5) 전체 외주제작비율의 대부분은 공동제작과 제작협력이 차지하고 있으며 실제 독립제작사에 의한 순수 외주제작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어떠한 국가에서도 독립제작사 활성화는 외주제작 편성비율 의무화와 같은 규제정책을 통해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부터 독립제작사를 육성하기 위한 규칙들이 시행되었으나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외부적인 방송환경의 변화에 따라 1990년대 중반에 폐지되었으며, 영국에서는 독립제작사들을 위한 유통창구를 별도로 마련해준 이후에야 지상파방송사에 편성쿼터를 할당했으며, 일본에서는 아예 아무런 법이나 제도가 시행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부터 외주제작 편성비율을 끊임없이 상향조정한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책이 독립제작사 육성과 영상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는 한결같은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외주제작 편성비율을 강화하면 다양한 독립제작사가 출현한다는 논리는 국내외를 막론한 어느 방송시장에서도 실현되고 있지 않은 도그마(dogma)에 불과하다.(주) 1) 이 규칙은 독립제작사가 만든 프로그램을 네트워크가 방영한 후 이 프로그램의 배급사업에 참여해 이윤을 획득하는 것과 네트워크가 개별 방송국에 프로그램을 직접 판매하는 신디케이션 사업에 참여하는 것 등을 금지했다.2) 이 규칙은 상위 50개 방송시장의 네트워크 가맹사가 주 시청시간대(저녁 7시-11시) 가운데 한시간을 네트워크에서 초방을 마친 프로그램을 구입해 재방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는 주 시청시간대에 지역 방송국으로 하여금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해 방영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3) 미국의 방송사들이 독립제작사들의 프로그램 제작 및 검증에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영상시장 자체가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세계적 규모의 시장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수요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영상작품이 흥행에 성공했을 경우에 발생하는 수입은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 선별에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인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이 연구의 세 번째 분석대상인 ‘다양한 독립제작사가 존재하면 방송프로그램의 국제경쟁력이 강화돼 해외시장 진출이 용이해지는가?’를 통해 전개될 것이다.4) 1970년대 말 한 독립제작자는 음악 다큐멘터리 중 걸작으로 꼽히는 ‘Itzahak Perlman: Virtuoso Violinist’ 제작을 위해 자신의 집을 저당잡혀야 했다. 영국 방송사들은 그에게 제작비를 대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프로그램을 독일 방송사에 판매함으로써 부족한 제작비를 메꿀 수 있었다(Lambert, 1982, p.82).5) 제작저작은 독립제작사가 만들어 완성한 프로그램을 방송사에 납품하는 것이며, 공동제작은 방송사와 독립제작사가 프로그램을 함께 만드는 형태다. 그리고, 제작협력은 방송사의 인력과 시설이 상당부분 투입되고 독립제작사 인력은 용역형식으로 방송사에 파견되어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다. 김재영 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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