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안 별로 ‘오락가락’ 심의기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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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심의 등에서 두드러져…방심위원 자질 시비, 구조개편 요구 높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앞선 심의들과 같은 기준들을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 동일한 잣대로 심의를 한다면 논란을 벌일 이유가 없다.” (장낙인 위원, 7월 1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 이하 방심위) 심의가 ‘고무줄 잣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내부에서조차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제기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현안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공정성·객관성 등의 심의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공정성 심의, ‘반론’ 보장의 이중잣대

당장 일련의 논란은 오는 13일 전체회의에서 재현될 전망이다. 방심위가 권재홍 MBC 보도본부장의 부상 소식을 다룬 MBC <뉴스데스크>에 대한 심의를 이날 다시 진행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방심위는 지난 8월 9일 해당 안건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위원장의 ‘회피’와 부위원장의 ‘기권’으로 사상 초유의 ‘부결’ 선언 사태를 빚은 바 있다. 이후 8월 28일 전체회의에서 부결 선언을 번복함에 따라 오는 13일 전체회의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는데, 방심위원들은 앞선 회의들에서 해당 안건에 대한 심의 기준 문제를 놓고 다툼을 벌였다.

<뉴스데스크>는 지난 5월 17일 첫 번째 리포트에서 “권재홍 보도본부장이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허리 등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었다”, “차량 탑승 도중 노조원들의 저지 과정에서 허리 등 신체 일부에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지난 8월 9일 전체회의에 해당 안건을 ‘회피’, ‘기권’한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제외한 여당 측 위원 4인은 △앵커의 유고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고 △권 본부장이 MBC 특보에서 발을 헛디뎠다고 밝혔는데 발을 헛딛고 나면 허리에 통증이 오는 만큼 팩트(사실)를 전달했다 등의 이유로 ‘문제없음’ 의견을 냈다.

해당 리포트로 인해 시청자들이 노조의 폭력에 의해 권 본부장이 부상을 입었다는 오해를 할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리포트 직후 MBC 게시판엔 노조의 폭력을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과정에서” 등의 두루뭉수리한 표현이 시청자의 오해를 부른 만큼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객관성 위반을 지적할 만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방심위는 지난 2008년 7월 16일 MBC <PD수첩> ‘광우병’ 편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를 내렸을 당시, 해당 프로그램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과 관련해 과도한 정보를 제시해 시청자의 오해를 불렀다는 등의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시청자 오해의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때에 따라 달리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 조항 적용 문제는 대표적인 시빗거리다. 방심위는 지난 7월 5일 전체회의에서 민주통합당 의원들의 항의방문을 “무작정”, “난입”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한 5월 9일자 MBC <뉴스데스크>에 대해 ‘권고’를 결정했는데, 해당 보도에 공정성 조항 위반 여부를 적용할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여당 측의 위원들은 “난입” 등의 표현을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에게 사용한 건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며 방송심의규정의 품위유지 조항 위반을 지적했다. 반면 야당 측 위원들은 이해관계가 대립된 사안을 다루며 <뉴스데스크>가 자사의 입장만을 전한 만큼 공정성·객관성 조항 등의 위반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 측의 장낙인 위원은 “사안에 따라 공정성 조항 적용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냐”며 심의의 중립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문제제기의 배경엔 그간 방심위가 진행한 공정성 심의가 있다. 실례로 방심위는 지난 3월 8일 전체회의에서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 진행자들이 출연한 CBS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 지난 1월 5일자 방송에 대해 ‘주의’ 제재를 했는데, 정부의 부동산·물가 정책 등에 대해 일방적인 비판을 방송했다는 이유였다.

특정 사안에 대한 출연자의 논평과 해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코너일 뿐 아니라, 해당 방송 이전 혹은 이후 1월 5일자 방송 출연진들과 다른 의견인 이들이 출연해 반대 입장을 일방적으로 개진한 점을 인정하더라도 공정성 위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방심위는 지난 2011년 7월 7일 유성기업 파업 사태를 다룬 KBS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와 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홍기빈입니다>에 대해 게스트(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가 노조 측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이유로 각각 ‘권고’ 조치를 했다. 또 같은 날 회의에서 일제고사 반대로 해직됐다가 복직한 교사들을 인터뷰한 MBC라디오 <박혜진이 만난 사람>에 대해서도 일방의 입장만을 전달했다는 점을 문제 삼아 ‘주의’ 제재를 했다.

반면 방심위는 지난 2011년 7월 21일 전체회의에서 친일파 백선엽씨의 전쟁 영웅적 면모만을 부각시켰다는 지적을 받은 KBS 다큐멘터리 <전쟁과 군인>에 대해 ‘문제없음’ 결정을 내렸는데, 이 과정에서 여당 측의 한 위원은 “백선엽 장군을 좀 미화한들 무슨 문제냐”고 주장, 공정성 조항 자체를 무시한 심의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결국 일방의 입장을 전달한 것은 매한가지거나, 심지어 다른 날짜에 반론권마저 보장했음에도 공정성·객관성 조항 적용 여부는 그때그때 다른 게 방송심의의 현실인 것이다.

보도·시사 공정성 심의 없애야

일련의 문제제기에 대한 반론도 당연히 존재한다. 바로 ‘민원’의 내용이다. 민주통합당 의원들의 항의 방문을 ‘난입’ 등의 표현으로 보도한 <뉴스데스크>에 대해 앞선 심의들과 달리 왜 공정성 위반을 지적하지 않냐는 야당 측 위원의 비판에 여당 측의 한 위원은 “(민원에서) 제기된 내용이 ‘난입’, ‘무작정’ 등 표현과 관련한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방심위는 최종적으로 해당 보도에 대해 ‘권고’를 결정하며 공정성 등의 위반을 지적하긴 했지만, 제기된 문제에 공정성 등이 빠져있었다는 반박은 군색하다 볼 수 있다. 그간 방심위의 심의가 민원에서 제기된 부분에 대해서만 진행됐던 게 아닌 탓이다.

실례로 방심위는 지난 8월 28일 SBS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대해 방송심의규정의 광고효과의 제한 조항 위반을 이유로 ‘주의’를 결정했는데, 당초 <신사의 품격>에 대해 제기된 민원은 광고 부분이 아닌 “끼 부리지 말아요. 나랑 잘 거 아니면” 등 방송심의규정의 성 표현 조항 위반 여부를 가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성 표현 위반 여부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정작 민원인이 제기한 성 표현 문제보다 과도한 간접광고 등이 더욱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와 이에 대한 심의를 함께 진행하게 된 것이다.

특위에서의 논의 결과를 얼마나 참고할 것인가 여부도 때에 따라 다르다. MBC 노조 파업을 일부 다룬 KBS 1TV <시사기획 창>에 대한 제작진 의견진술이 있었던 지난 8월 29일 방심위 방송심의소위원회 당시 여당 측의 한 위원은 보도교양방송특위에서 해당 방송에 대해 ‘문제있다’는 의견이 5인, ‘문제없다’는 의견이 4인이었음을 전하며 “다툼의 여지는 물론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냐”고 물었다. 특위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프로그램의 내용이 균형성 등의 측면에서 충분히 시빗거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방심위는 지난 1월 15일 KBS 1TV에서 방송된 <KBS 스페셜> ‘정율성’ 편에 대해 보도교양방송 특위 위원 9명 중 7명이 “정율성이 공산주의자라고는 하지만, 해당 인물의 음악적 활동에 초점을 맞춘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음에도, 여당 측 위원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제작진 의견진술을 포함한 심의를 강행했다.

그때그때 다른 심의 기준에 따른 방심위의 제재에 대해 방송 관계자들은 불신을 표현하고 있다. 당장 CBS는 출연자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인터뷰 프로그램에 대해 방심위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사실 보도를 원칙으로 하는 뉴스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공정성 등의 심의 잣대를 들이대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상파 방송의 한 관계자는 “방심위의 문제제기에 모두 수긍해 제재 조치를 수용하는 게 아니다”라며 “똑같은 사안을 놓고 그때그때 다른 심의를 하는 방심위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방심위의 심의, 특히 다수의 공정성 심의는 위원들이 여야 정치권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진행하는 것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며 “이런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는 보도·시사프로그램에 대한 공정성 심의를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성 심의 중단에 대한 요구는 방송·언론계뿐 아니라 언론단체,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4·11 총선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은 방송 공정성 심의 시 국가 정책 관련 방송은 배제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으며,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최근 방심위 위원 구성을 여야 6대 3구조에서 여야 동수로 바꾸고 위원의 결격사유 등을 강화해 공정성 등의 심의를 둘러싼 시비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을 냈다.

한편 민주통합당 최재천, 유승희, 진선미 의원은 오는 6일 국회에서 방심위의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공정성 심의 등의 문제를 짚기 위해 CBS <김미화의 여러분> 법정 제재와 행정소송’이란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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