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추천방송]KBS 2TV ‘다큐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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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2TV <다큐멘터리 3일>ⓒKBS
KBS 2TV <다큐멘터리 3일> / 9일 밤 10시 55분

마지막 영업 준비 중

태풍 볼라겐이 한반도를 덮쳤던 8월 28일의 서울 영등포구. 거센 비바람보다 더 커다란 인생의 돌풍을 겪고 있는 한 재래 시장을 찾았다. 철골 구조만이 남아있는 초라한 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텅 빈 가게 출입문에 붙어있는 ‘점포정리’ 종이가 눈에 들어온다. 한때 점포수가 200 여 개에 달하며 멀리 지방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제법 규모가 컸던 대림시장. 68년에 문을 연 후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 왔지만 지난 4월 경매를 통해 시장 부지가 병원으로 넘어가면서 상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이제 20여 개의 점포만이 남아있다. 30살에 장사를 시작한 주인이 70살이 되어버린 긴 세월, 반평생을 함께한 일자리와 준비 없이 이별을 맞이한 사람들. 폐장까지 앞으로 3일, 그들의 마지막 출근길을 함께했다.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

시장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2.5평짜리 작은 잡화점 사장님 김건태 씨. 태풍이 서울을 강타했던 28일 오후, 점포 정리 중에 무심코 밖을 내다보는 김건태 씨 표정이 먹구름 낀 하늘처럼 잔뜩 흐렸다. 20년을 매일같이 출근해 온 가게, 이 공간 속에 서 있는 것도 이제 겨우 3일 남았다. 장사가 호황이던 90년대, 물건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던 진열대의 모습은 이제 사진 속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양 손 가득 물건을 사들고 일주일에 몇 번씩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던 그 시절 그때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벽에 걸려 있는 낡은 시계를 선뜻 떼어내지 못하고 잠시 망설인다.

시장 내 점포에서 10년 째 수선집을 운영해오던 박혜숙 씨는 폐장 소식을 접한 후 고민 끝에 새 점포를 얻었다. 70세가 넘은 대부분의 시장 상인들은 이참에 장사를 쉬자는 쪽에 가깝지만 이제 50대 중반인 박혜숙 씨에게는 새출발의 발판이 된 것이다. 새 점포와 옛 점포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물건을 옮기고 정리하는 일 모두 혼자 힘으로 해내고 있는 박혜숙 씨. 눈 코 뜰 새 없이 분주했던 시간들이 모두 지나가고 어느덧 30일날 저녁, 섭섭한 마음에 마지막으로 들른 옛 가게를 둘러보던 중 그간의 옛 추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사 가는 날

8월 31일 오전. 철골 구조물을 뜯어내는 인부들과 남아있는 짐을 정리 중인 상인들 틈에 정든 상인들과 작별인사를 하러 온 단골손님들도 눈에 띈다. 나이가 많은 포장마차 주인이 걱정돼 도움이 되고자 한걸음에 달려왔다는 단골손님 윤희덕 씨와 강승문 씨. 무뚝뚝한 성격의 주인은 고맙다는 말 대신 그들의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한다. 대부분의 점포들이 철거 된 텅 빈 시장 한 가운데서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밥 짓는 냄새가 풍긴다. 엊그제 손님과 마지막 안부를 주고 받으며 눈물을 흘렸던 이이심 씨. 오늘은 남편과 함께 32년 동안 장사해온 포장마차를 철거하고 있다. 그 동안의 긴 세월을 말해주듯 그을음이 잔뜩 묻어있는 까만 난로에서 마지막 연탄 한 장을 꺼내 버린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왔던 장소,, 고향처럼 여겨왔던 시장과 마지막 작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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