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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피에타’ 포스터
피에타(자비를 베푸소서)! 미켈란젤로 이후 슈투크, 들라크르와와 모로, 고흐,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끝없이 변주한 피에타.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의 제목이 바로 피에타다. 조민수의 무릎 위에 축 늘어진 이정진이 뉘어 있는 사진을 보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모티브가 된 것이리라.

냉혹함으로만 가득찬 현실을 눈 똑바로 뜨고 바라봐야 한다고 다그치던 감독, 때로는 그 또한 그저 무심한 자연의 법칙이 아니냐고 뭉뚱그리던(<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감독이 개과천선이라도 한 걸까.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현실의 구원을 결국 모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던 걸까?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는 ‘피에타’를 필요로 한다. 정부가 황급히 2조원 규모의 긴급 재정투입을 발표할 정도로 경제가 심각하다. 지난 3월까지 3% 중반대의 성장을 할 거라고 낙관할 정도로 정부, 한국은행 그리고 재계가 무능한 탓에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더라도 임기 초반 위기 수습에 정신이 없을 것이다.

가장 다급한 사람들은 역시 저소득층이다. 하위 소득 1/10에 해당하는 계층의 빚은 이미 자기가 쓸 수 있는 소득(가처분소득)의 두배를 훌쩍 뛰어 넘었다. 이들은 고리채에 의존하고 있다. 영화에서 이정진이 노동자의 손목을 잘라 보험금을 타내는 일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그의 직업은 전혀 생소하지 않은데 SBS 드라마 <쩐의 전쟁>(2007)에서 박신양이 맡았던 역할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이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다행히 이 계층이 진 빚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빚 대부분(고리채로 늘어난 부분)을 금융권이 떠안도록 하고, 이들의 삶은 정부가 복지 지출로 해결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이들의 생명은 안전해질 것이다.

다음은 2006년경의 집 값 급등에 밀려서, 또는 대박의 꿈을 안고 은행 빚으로 집을 산 중산층이다. 앞으로 집값이 떨어지게 되면 이들은 점점 더 많은 원리금 상환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너도 나도 집을 내 놓는다면 집값은 더 떨어지고 시급히 갚아야 할 돈은 더 늘어나게 된다. 지난 2년간 누누이 말한대로 이 문제는 공적 자금으로 집을 사 주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다. 원하는 경우 그 집에 싼 값으로 세를 들 수 있게 한다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늘릴 수 있다.

이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집단이 남았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자영업을 시작한 경우이다. 지금도 동네 골목 곳곳의 음식점이나 구멍가게의 주인이 바뀌고 있는데 성장률이 2% 이하로 떨어지면 몇 집을 제외하곤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공식 실업률이 다른 OECD 국가들보다 현저히 낮은 것은 바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협하는 재벌들의 탐욕을 막고 자영업을 공기업이 돕는다거나(예컨대 자영업의 물류를 우체국이 도와준다) 협동조합으로 바꾸는 것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경우에는 구체적인 이행 프로그램이 문제인 것이다.

이번의 위기는 정부의 단발성 긴급대책으로 수습될 수 없다. 지금까지의 ‘밖으로부터, 위로부터’(수출과 낙수효과)의 정책기조를 완전히 바꿔서 ‘안으로부터, 아래로부터’(내수와 차오름효과), 즉 중소기업과 협동조합에 의한 따뜻한 협동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이제 냉혹한 경제에도 피에타가 가득차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국민을 무릎에 안을 자애로운 성모의 자리에 누가 어울릴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한번 상상해 보시면 분명 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피에타>를 꼭 개봉관에서 봐야 할 이유 하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이중의 불균형을 안고 있다. 조각의 비레를 맞추기 위해 마리아에 비해 예수의 신체가 비현실적으로 작아졌고 어머니가 아들보다 더 젊어 보인다. 후자는 그렇다 쳐도 180cm가 넘는 이정진이 조민수의 작은 무릎 위에 어떻게 누웠을까. 확인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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