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 옛날이 그렇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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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 드라마는 연일 과거를 재탕하고 있다. 아니지, 과거를 ‘창조’하고 있다. 역사에 한 번도 있어본 적 없는 밑도 끝도 없는 무중력의 시공간을 제작진의 입맛대로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그러려면 차라리 SF로 분류해야 할 텐데, 타이틀은 ‘퓨전 사극’ 혹은 ‘시대극’이다. 연기는 최대한 사실주의 연극처럼 진지하게 가면서, 극의 디테일은 최대한 허술하게 가고 있다. 시간을 오가는, 그리고 아역설정을 포함해 시간을 건너뛰는 드라마일수록 극의 기본이라 할 고증은커녕 소품조차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그런 걸 무시한 채 현실만 휘황찬란하게 PPL(간접광고)로 채우려고 일부러 만들어낸 장르 같기도 하다. 이 불일치의 그로테스크가 관전 포인트인 것일까.

타임슬립(time slip)이라는 신조어가 너무 많은 드라마에 적용되고 있다. <닥터 진>(MBC),<인현왕후의 남자>(tvN), <신의>(SBS)등 비단 시간 여행을 주요소재로 삼은 작품뿐 아니라, 많은 드라마가 과거 신파극 풍으로 변모했다. TV를 틀었다가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슨 옛날 드라마 재방송 같다.

▲ MBC 주말드라마 <메이퀸> ⓒMBC

특히 주말 저녁의 드라마 퍼레이드들은 별로 예외가 없는데 MBC <메이퀸>과 SBS <다섯 손가락>은 특히 그렇다. 딱 보기만 해도 누가 나쁜 놈인지 누가 몰래 도와줄 천사인지 삼각관계는 향후 어찌 전개될지 바로 추측된다. 일그러지고 표독스런 표정만으로도 대사와 행동이 뻔히 예상된다. 내가 갑자기 신통력이라도 생긴 것인가. 분명 새로 시작한 드라마가 나를 어린시절로 곧장 ‘타임슬립’시켜주니 고마워해야 하는가?

중견배우들이 젊은이들로 ‘분장’하고 나와서만은 아니다. 그들이 젊을 때 하던 드라마의 갈등 패턴, 재벌가를 둘러싼 출생의 비밀, 번역투 대사들, 한 명의 영웅 주인공을 위한 스토리, 우연과 천운의 설정이 한없이 반복되고 있다.

아역들이 어린이의 개연성을 싹 무시하고 신파극의 도구 역할만 하는 것도 과거 방식이다. 촘촘히 시간과 공간을 메우는 게 생명이어야 할 연속극에서, 주인공 1인 ‘천재’와 ‘퀸’만을 위해 나머지 요소는 들러리다. 심지어 시간까지. 추상화되고 도구화된 시간은 다만 미화돼 있을 뿐이다.

드라마의 모든 요소가 과거로 회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 복제도 심해지고 있다. 현재 주말극 1위라는 <메이퀸>은 울산의 조선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8회까지 방영분만으로도 과거 MBC가 방영한 <사랑과 진실>, <내 여자>, <에덴의 동쪽>, <신들의 만찬> 등이 연상된다. 자사 제품 혼합 복제는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인가.

▲ 김원 문화평론가
현재는 다만 고여 있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는 ‘시간의 웅덩이’가 아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현재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또 있다. 설령 타임머신이든 타임슬립이든 과거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치자. 과거에 한 게 있어야 현재에도 돌아올 곳이 생기는 법이다.

역사에 무임승차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낸 현재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다 과거만 있는 TV속으로 모든 현재가 빨려 들어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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