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집단 건강성으로 언론현실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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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PD연합회 25년 회고와 과제

“오늘의 한국사회는 정치·경제·문화의 전 부문에 걸쳐 국민의 시대적 요구를 수렴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성취해야 할 현대사회의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중략) 방송전문인으로서의 긍지와 자각을 바탕으로 자유언론과 방송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매진할 것이다.”(1987년 9월 5일 한국 PD연합회 창립 선언문 중에서)

25년 전 한국PD연합회 창립 선언문에 새긴 자유언론과 방송문화의 발전이라는 길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오히려 언론 자유의 시계는 1980년대로 퇴행했다는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PD연합회 창립 25년을 맞아 지난 25년을 뒤돌아보고 앞날을 조망하는 좌담을 마련했다. 박인규 인하대 교수(언론정보학과)가 사회를 맡은 좌담에는 김윤영(4대), 장해랑(11대), 김환균(20대), 양승동(21대 회장) PD 등 역대 회장들이 참석했다. 지난 5일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좌담을 지상중계한다.

▲ 김윤영 ⓒPD저널
사회: PD연합회가 25돌을 맞았다. 1987년 PD연합회 출범 당시는 어땠나.

김윤영: 당시 PD연합회를 세우게 된 배경은 단순했다. PD들을 대표하고,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했다. PD들이 사전에 방송 프로그램을 검사받던 시절이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제작 자율권이나 언론의 자유에 목말랐다. 창립 당시와 비교하면 PD연합회의 규모도 커지고 회원도 많아졌지만 현재 우리를 둘러싼 제작 환경은 결코 달라진 게 없어 서글프다. (PD연합회는) 25년이라는 단단한 성년의 나이가 됐는데 처음 시작했던 때와 무엇이 바뀌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김환균: 연합회 창립 즈음해서 활발하게 일었던 방송 민주화 운동은 정치권력과 재벌권력으로부터 독립 운동 등으로 한발씩 나아갔다. 2000년엔 통합방송법이 제정되고 지금 유명무실하게 됐지만 편성규약도 명문화됐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그런 흐름이 꺾였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제작 자율성이 확대되는가 싶더니 지금은 후퇴한 모습이다. 후배들에게 1987년 이전으로 되돌아갈 지도 모르겠다고 겁을 준 적이 있는데 후배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출발 지점으로 거의 되돌아 온 것 같다.

“편성규약·국장책임제, 80년대 싸움의 성과 유명무실”

사회 : 편성규약과 공정방송위원회, 국장책임제 등은 운동의 성과로 얻어낸 것들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제대로 작동이 안 되고 있다. 어디에 원인이 있다고 보나.

김윤영: 내부 요인만 살펴보면 언론 자유가 원래부터 주어진 것으로 생각한 PD들의 책임도 일부 있다. 예능,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제작 자율성이 무슨 상관인가 하는 발상이 다시 우리들을 옥죄고 있다. 방송영역에서 상업화가 진행되고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지면서 재미를 우선시하게 됐다. 점점 언론환경에 관심 없는 PD들이 생기면서 이런 엄혹한 상황이 닥쳤을 때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닐까. 

장해랑: 내부의 방심을 현 사태 원인으로 짚는 건 부적절하다. 올해 KBS와 MBC 구성원들이 각각 100일, 170일 동안 파업을 할 수 있었던 건 굴종의 시대를 겪지 않은 후배들 때문에 가능했다. ‘방송을 왜 이렇게 만들어’, ‘간섭을 왜 하는 거야’ 이런 원칙을 갖고 싸웠다. 문제의 본질은 권력의 천박한 욕심이다. ‘방송사 사장을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다’는 인식이 공영방송을 예전의 정부 홍보 대행기구로 만들었다.

양승동: KBS에서는 2003년 마련된 편성규약이 2007년까지 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후에 사쪽과 제작자쪽과 의견이 대립될 때 편성규약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사장이 누가오든 열심히 프로그램만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5년간 정권이 사장을 내려 보내고, 그 사장이 또 본부장을 임명하는 시스템 속에서 제작 자율성을 구현하는 건 어렵다. 신문에서는 사장, 편집국장 임명 동의제 등의 제도가 구축돼 있다. MBC는 그나마 있던 국장책임제도 없애 버리지 않았나. 방송 공영성을 담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다시 쟁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장해랑 ⓒPD저널
사회: 영국 BBC는 보수성향의 사장이 와도 조직문화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1980년대에 방송 민주화 대열에 함께 섰던 분들이 오늘날 반대편에 서 있는 것도 많이 목도한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장해랑 : KBS 공채 출신이 사장으로 왔다. 결과적으로 프로그램과 보도에서 비판정신이 사라졌다. 옳은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지역으로 내려갔다. 주요 보직 자리는 납득할 수 없는 인사들로 채워졌다. 세월이 언제 좋아질지 모르지만 내부의 불신과 시스템을 원상 복귀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더욱 답답한 건 함께 PD연합회를 만들었던 사람들 일부가 이런 상황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김윤영: 지금까지 마음에 들었던 사장이 있었나. ‘이런 사장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실현 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 어떤 여건에서도 초심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사회: PD연합회가 창립한 이후 기자 영역으로 있던 저널리즘을 PD 영역으로 끌어와 정착한 성과도 있다. 한편으로 PD저널리즘에 대해 훈련받지 않은 저널리즘이라는 비판도 있다. 

김환균 : <PD수첩>이 논쟁의 중심에 섰을 때 아예 PD저널리즘 용어 자체를 폐기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PD저널리즘이란 용어가 경쟁관계에 놓인 직종간에 불필요한 오해를 낳는다는 판단이었다. 분명한 건 <PD수첩>, <추적60분> 등의 정통 시사프로그램이 ‘어떻게 객관적으로 보도할 것이냐’에서 ‘무엇이 진실인가’로 관심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시사프로그램도 균형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진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해왔다.

양승동: 지난 5년 동안 시사프로그램을 돌아보면 성과를 꼽는다는 게 어색하다. 대표적인 시사프로그램에서 예민한 이슈들이 방송에 못나가거나 물타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PD수첩>이 아사 직전에 와버린 상황이다. 애써 성과를 꼽는다면 가혹한 상황 속에서 각 방송사 노조와 PD연합회가 저항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점이다.

▲ 김환균 ⓒPD저널
“상반기 파업에서 보여준 건강성 유지될 것”

사회: 시청자의 입장에서 KBS <시사투나잇> 등 시사교양 PD들이 단련하는 공간이 없어져 아쉽다. 
  
양승동: 60분짜리 프로그램에서 다루기 어려운 소재가 많다. 방송에서 조명해야 하는 소재는 많은데 이것을 담을 만한 그릇이 없으니 답답하다. 내부에서 다양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복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만만치 않다.

김환균: 이전엔 <PD수첩> 선배들이 대단하게 보이지 않았다. 저 자리에 있으면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철이 들고 나서 보니 몇몇 선배들이 생각난다. 오래전 일인데 누가 봐도 이 아이템을 허락 안 해줄 것 같은 선배가 선뜻 아이템을 하라고 했다. 방송을 무사히 마치고 그 선배가 나중에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 ‘(아이템)은 마음에 안들어. 그런데 내가 마음에 안 들어도 방송에서 해야 할 말은 있다.’ 이런 분들이 <PD수첩>을 키웠구나 생각이 들었다.

장해랑: PD집단을 건강하게 키워온 선배들이 있고, 또 이를 지켜갈 후배들이 있다. 물론 실망을 줬던 선배들도 있지만 PD집단의 건강성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 25년 전과 비교하면 PD연합회 구성원들의 소속이 다양해졌다. 앞으로 PD연합회를 이끌어가면서 다양한 특성과 이해를 어떻게 조율해 나가야 할까.

양승동 : 모두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창의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돼왔다고 본다. 하지만 종합편성채널과의 관계는 여전히 과제다. SBS가 탄생할 때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김환균: 독립PD협회가 창립될 때 PD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충돌지점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다. 당시에 소속은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다만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철학과 소신은 가입 과정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최근 독립 PD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은 동료로서 격려해주고 박수쳐줘야 하는 일이다. 요즘에 지상파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는데, 독립 영화의 선전이 없었으면 선뜻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장해랑: 극장 상영뿐만 아니라 다양한 그룹이 모이면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대한 고민을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차이는 인정하되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동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한편으론 PD연합회가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아우를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 양승동 ⓒPD저널
사회 : 26대 회장으로 이정식 회장이 새로 취임했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PD연합회에 바람이 있다면.

김윤영 : PD연합회를 만들던 때와 비교하면 방송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PD연합회가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동안 PD연합회가 이런 저런 이유로 현안의 중심에 서있지 못하고 빗겨나 있던 경우도 많았다. 이런 선택이 상황이 좋지 않을 때 PD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분명하지 않은 입장 때문에 구성원들이 실망하고 떠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장해랑: 꿈을 계속 꾸었으면 한다. PD들은 여전히 좋은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꿈을 잊어버리지 않고,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환균: 지난 파업 국면에서 제기된 것인데, 방송 공공성 회복을 위해 사장 선임 구조 등이 진지하게 논의 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집행부에서 해왔던 것처럼 PD라는 이름을 넘어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가 멀리 봤으면 한다. 

양승동 : PD연합회가 외풍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란 기본 믿음이 있다. 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5년을 준비하는 작업도 이번 집행부가 책임져야 한다. 민주적인 조직문화와 시스템 개선을 대선 후보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실현 가능하도록 압박하는 것도 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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