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과 ‘검증’ 구분 못하는 방송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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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비평] “인물검증 대선” 전망하며 안철수 의혹에만 집중

18대 대통령 선거까지 100일도 남지 않았지만 지상파 방송 3사의 뉴스에서 여야 대선 후보들을 검증하는 보도를 찾기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선이 98일(9월 12일 기준)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를 확정한 곳은 새누리당뿐이다. 민주통합당은 모바일 투표를 둘러싼 갖가지 잡음 속에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르고 있고, 야권의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경우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나는 대로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그의 행보엔 ‘변수’가 가득하다.

■인물 검증 대선? ‘박근혜 역사관’ 검증 실종= 대선 100일을 앞둔 지난 10일 지상파 방송 3사의 저녁뉴스들이 이번 대선에선 정책 검증보단 도덕성, 즉 인물 검증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하거나 정책 검증의 실종을 우려한 배경이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서 정책검증보다는 도덕성 검증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9월 10일, SBS <8뉴스>)이 많고 “검증의 과정이 네거티브(Negative)일 수도 있다”(9월 10일, MBC <뉴스데스크>)고 이번 대선을 전망한 방송들은 정작 인물 검증에도 소극적인 모습이다.

실례로 현재까지 유일하게 확정된 대선 후보인 박근혜 후보는 지난 10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과거사에 대해 변하지 않는 인식을 드러냈다. 진행자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와 유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박 후보는 또 ‘유신의 그림자’로 일컬어지는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똑같은 대법원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유신정권 시절인 1975년의 유죄판결이 2007년 재심에서 무죄로 뒤집혔음에도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한 것이다.

박 후보의 이 같은 발언은 이날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11일자 아침신문들 역시 박 대표의 발언을 상세히 보도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 등은 해당 발언을 1면에 이어 정치면에서도 주요하게 다루며 박 후보의 역사관을 따져 물었으며, <국민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역시 정치면에서 박 후보의 역사관을 둘러싼 논란을 전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경우 박 후보가 과거사와 선 긋기에 나섰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지만, 해당 발언 자체는 충실히 전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지상파 방송 3사 메인뉴스 어디에서도 박 후보의 발언과 이를 둘러싼 논란 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 7월 16일 MBC <뉴스데스크> ⓒMBC
박 후보에게 있어 ‘아버지 박정희’는 그의 정치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하지만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이더라도 박 후보에게 아버지에 대한 비판을 담은 평가는 수용 불가능한, 건드려선 안 될 영역인 탓이다. 박 후보에 대한 야당의 공격이 이 부분에 집중되는 이유다.

실제 박 후보의 역사관은 그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16일 한 토론회에서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발언한 직후 박 후보는 지지율 하락을 경험했다. <중앙일보>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매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16 발언 이후 이틀 동안(7월 16~17일) 박 후보의 지지율이 4.5%p 급락한 것이다.

반(反)민주·반인권 등 유신 정권의 과(過)를 배운 20~30대와 민주화 운동을 직접 경험한 40대, 특히 이들 세대의 부동층들은 박 후보의 아버지 시절에 대한 경직된 사고를 수용하기 쉽지 않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지상파 방송들이 메인뉴스에서 박 후보의 역사관을 둘러싼 논쟁을 단순한 여야 정쟁 사안으로 다루거나 외면할 때, 이번 대선의 초점이 될 인물 검증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의 메인뉴스들은 지난 7월 16일 박 후보의 발언 이후 관련 내용을 거의 전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나온 박 후보의 역사관을 둘러싼 공방 정도로 몇 차례 간략히 처리했을 따름이다.

유신정권 시절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고(故)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이 불거진 이후에도 <뉴스데스크>와 <뉴스9>는 지난 8월 17일 각각 20번째 리포트 “‘37년 만에’ 장준하 타살 의혹 재점화”와 19번째 리포트 “의문사 37년…故 장준하 사인 논란 재점화”에서 관련 소식을 다뤘을 뿐이다.

특히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8월 31일과 5일 열린 공정방송위원회 회의에서 사측이 해당 리포트에서 기자의 초교와 달리 박정희 정권과 관련해 ‘독재’라는 표현을 모두 뺐으며, 이로 인해  1972년 유신 발표 이후 장준하 선생의 투옥과 의문사 등 논점이 흐려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사측 관계자는 “저널리즘적 측면에서 독재처럼 평가가 마무리 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객관적이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는데 대해 지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8뉴스> 역시 해당 소식을 8월 17일자 19번째 리포트에서 다뤘을 뿐이지만 접근방식은 달랐다. 단순하게 사인을 둘러싼 논란의 재점화로 접근하지 않고 진실 규명을 통한 역사 청산의 의미와 함께 이에 대한 “이미 (참여정부 시절) 과거사 진상조사위에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냐”는 박 후보의 반응까지 종합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 9월 3일 MBC <뉴스데스크> ⓒMBC
■안철수 도덕성 검증엔 ‘열심’= 반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안철수 원장에 대한 인물 검증엔 지상파 방송 3사 메인뉴스 모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안 원장이 지난 2003년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명운동에 나섰던 것이나 V소사이어티 차명투자 의혹, ‘안철수 룸살롱’ 보도를 둘러싼 논란, ‘재개발 딱지’ 논란 등이 나올 때마다 해당 내용을 소상히 전했다.

특히 MBC <뉴스데스크>는 7월 30일 안 원장의 최태원 회장 구명운동 관련 소식을 시작으로 지난 9월 5일까지 여야 정치권 공방 등은 제외하고 안 원장을 둘러싼 논란 그 자체만 여섯 차례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같은 기간 동안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을 둘러싼 논란을 공방으로만 처리했을 뿐, 집중적으로 조명한 일이 없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반면 지난 6일 안 원장 측 관계자가 새누리당으로부터 대선 불출마 협박을 받았으며 불법 사찰 의혹도 있다고 밝힌 것을 지상파 방송 3사는 공방으로 처리했다. 당시 안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는 “정준길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안 원장의 뇌물 공여와 여자 문제를 거론하면서 ‘우리가 조사해서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며 “언급된 조사의 주체가 국가 사정·정보 당국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안 원장에 대한 사찰 의혹은 이때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재개발 딱지 매입 의혹이 대표적인데, 해당 의혹을 보도한 언론들은 부동산 등기부등본 등 공개된 자료를 통해 확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은 언론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기 힘든 정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한겨레>는 지난 8일자 신문 6면 기사 “등기부등본으론 모를 압류 사유 등 ‘안철수 정보’ 줄줄이”에서 “안 원장 쪽이 1988년 ‘딱지 거래’를 통해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서울 동작구 사당동 대림아파트의 경우, 공개된 정보를 이용해 안 원장의 옛 주소를 알 방법은 안랩(옛 안철수연구소) 등의 법인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는 것뿐이지만, 이를 통해서도 안랩 설립(1995년 4월) 이전 주소지는 알 수 없다”며 사정기관 배후설을 제기했다.

▲ 9월 6일 KBS 1TV <뉴스9> ⓒKBS
하지만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는 안 원장 관련 의혹 알리기에 집중했을 뿐이다. 당장 <뉴스데스크>는 첫 번째 리포트 “새누리 공보위원, 안철수 대선 불출마 종용”에서 새누리당 측이 안 원장 측에 대선 불출마를 종용하며 제기한 의혹을 자세히 전하는 데 주력했다. <뉴스9>는 대선 불출마 종용 논란을 둘러싼 사실 공방에 초점을 맞췄고 <8뉴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8뉴스>는 클로징 멘트를 통해 “협박이든 충고였든 논란이 될 말을 먼저 꺼낸 쪽 책임이 더 커 보인다”고 덧붙였다.

결선 투표가 없다면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은 오는 16일 마무리된다. 안 원장도 이에 맞춰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는 방침이다. 본선 무대에서 대결을 펼칠 여야 후보들이 사실상 확정되는 것이다. 모든 선수가 링 위에 오른 후 인물과 정책에 대한 언론, 특히 지상파 방송 3사의 검증은 어떤 모양새로 진행될까. 공방이 될 사안과 의혹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사안의 구분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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