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혐오에 방송에서 쫓겨나는 성소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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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보류된 ‘XY그녀’, 성소수자 프로그램의 잔혹사

KBS 조이 <XY그녀>의 방송 보류 결정은 성소수자에게 사회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 사건이었다. “남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여자가 되고 싶어서 수술했다”라고 용기있게 고백한 트렌스젠더들에게 되돌아온 것은 차가운 여론이었다.

트렌스젠더 토크쇼라는 파격적인 콘셉트를 내세운 탓에 논란은 처음부터 예상됐다. 방송 시작 전부터 일부 학부모단체로부터 항의가 빗발쳤다.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 등의 단체들은 “동성애는 문화적 요인이며 학습된다”며 동성애자가 진행하는 <XY그녀> 트랜스젠더 토크쇼가 방송될 때 어린 청소년들에게 ‘동성애와 트렌스젠더’가 학습되고 확산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 트렌스젠더 토크쇼를 표방했다가 시청자들의 반발에 밀려 1회만에 방송이 보류된 KBS 조이의 . ⓒKBS N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 6일 첫 방송에 출연한 17명의 출연자들은 어떻게 트렌스젠더라는 운명을 받아들였는지 담담하게 고백하면서 자신들에게 향한 삐딱한 시선을 바로 잡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제작진은 <XY그녀>를 19세 이상 관람가로 새벽 시간에 편성해 혹여나 청소년에게 미칠 영향을 차단하는 노력도 기울였다. 하지만 방송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하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실력행사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KBS N은 지난 13일 “<XY그녀>에 대한 시청자 여러분의 의견을 수용해 추후 방영 보류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진선미 의원 등 민주통합당 의원 7명이 “방송법에 의해 보장된 방송의 다양성과 소수자에 차별금지를 위협하고 보편적 인권을 지켜야 하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방송보류 철회를 요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방송인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한지 12년이 지났고, 트렌스젠더 가수 하리수는 올해 데뷔 11주년을 맞았지만  성소수자는 여전히 제 3의 성이라는 시선에 갇혀있는 것이다.

성소수자를 다룬 방송이 논란의 중심에 선 경우는 <XY그녀>가 처음이 아니다. <XY그녀> 방송 보류 논란 이전에 동성간의 사랑을 다룬 SBS <인생은 아름다워>,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KBS 2TV <드라마스페셜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이 곤욕을 치렀다.

일단 성소수자를 다루는 방송에 강한 거부감이 표출되면 방송사와 제작진의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동성애와 트렌스젠더 등이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는 소재인 탓에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만으로 반대 여론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방송된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은 방송 이후 반대여론에 밀려 ‘다시보기’를 중단했다. 명품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던 <인생은 아름다워>는 2010년 방영 내내 방송 중단을 촉구하는 단체의 항의에 시달렸다.

KBS 조이 시청자 게시판에는 <XY그녀> 방송 보류 결정 이후 ‘폐지’와 ‘방송 재개’를 요구하는 찬반글로 들끓었다. 폐지를 요구하는 글에는 ‘가정을 망치는 저질 프로그램’ 등의 원색적인 비난이 주를 이뤘다. 여기엔 성소수자들을 정신질환자로 치부하고 혐오하는 ‘호모포비아’가 깔려있다.

더 큰 문제는 왜곡된 시선이 동성애와 트렌스젠더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유포한다는 점이다. 성소수자를 다룬 방송의 중단을 요구한 단체들이 일간지에 낸 광고를 보면 “트렌스젠더·성전환자 부추기고...”,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 된 내 아들 에이즈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 등의 대목에선 섬뜻함마저 느껴진다.

지난 2006년 커밍아웃한 김조광수 영화감독은 방송 보류 결정 소식을 듣고 자신의 트위터에 “‘트렌스젠더 부추기는...’ 이란 구호에 비추어 봤을 때 그들이 아직도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를 통칭하는 말)들을 병을 옮기는 존재들로 보는 모양”이라고 일갈했다.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트렌스젠더와 동성애는 선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주장에 공감대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 동성애와 에이즈는 무관하다는 게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XY그녀>를 연출한 임용현 PD는 “그동안 트렌스젠더나 동성애자를 조명한 프로그램은 소수자의 특이성과 유머코드로 접근한 측면이 큰데, 우리는 일반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이들을 바라보다보니 일부 시청자들의 거부감이 더 컸다”라고 말했다.

▲ 동성애를 그린 SBS <인생은 아름다워>. ⓒSBS

<인생은 아름다워> CP를 맡았던 김영섭 SBS 드라마 특별기획총괄국장은 “<인생은 아름다워>가 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 개선하는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지만 당시에도 반감이 많았다”며 “젊은 세대의 사고는 많이 바뀌어가고 있는데 기존의 40~50대의 사고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옳은 가치라면 대중의 정서보다 방송이 한발 앞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엔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보수적인 경향이 짙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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