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0년 외주정책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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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10년 외주정책 이대로 좋은가
외주비율 강화로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질이 확보되는가 탁상공론에 불과… 질 낮은 콘텐츠의 양적 증가만 초래
  • 승인 2002.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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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비율 상향 정책이 실시되어 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21세기의 핵심 부가가치 산업인 영상산업을 진흥하기 위해서는 독립제작사를 육성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상파 방송의 수직적 통합 구조가 해체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시행결과는 누가 보기에도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과연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현재의 외주 정책은 정말 충분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지금이 바로 이 정책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를 철저하게 따져봐야할 시점이다. 는 지난호에 이어 6회에 걸쳐 외주정책을 진단하는 연재를 싣는다. 연재글은 지난해 말 MBC에서 발간된 ‘방송과 커뮤니케이션’에 수록된 김재영 세종대 신방과 교수와 김진웅 MBC 연구위원의 글을 필자의 양해를 얻어 일부 편집한 내용이다. <편집자주> 1회 연재글에서 외주제작 편성비율을 강화하면 다양한 독립제작사가 출현한다는 논리는 국내외를 막론한 어느 방송시장에서도 실현되고 있지 않은 도그마(dogma)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아봤다. 설혹 외주제작편성 의무화정책을 통해 다양한 독립제작사가 등장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는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하는가? 먼저 검토할 논리는 “독립제작사가 활성화되면 방송프로그램의 수가 증가하고 다양한 포맷이나 의견이 제공돼 세분화된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프로그램 품질 향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국 시청자 복지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제작주체가 다원화될 경우 프로그램의 양적인 다양성이 확보되고 양질전화를 통해 프로그램의 질도 제고되는가의 문제다.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위상정립이 모색되고 있는 지상파방송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다양성은 대부분의 현대국가가 추구하는 방송정책목표 중 가장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의사표현이 선결되어야 하는데 현대사회에서 이를 가능케 하는 다양한 정보 및 프로그램 제공 기능을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가 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미디어정책의 기본 방침도 “다양하고 심지어 상반되는 소스로부터 파생된 모든 정보 (및 프로그램)를 최대한 광범하게 유통시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저명한 언론비평가인 Bagdikian(1985)도 “미디어 내용의 다양성과 풍부함은 민주주의의 장식물이 아니라 그 성패를 위한 필수요소”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다양성은 간단하게 규정될 수 있는 차원의 개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인 차원에서 이 개념을 명료화하기 위한 시도들이 몇몇 학자들에 의해 행해졌다. 가령, Hoffmann-Riem(1987)은 방송사 혹은 채널 수의 다양성보다 제공되는 미디어 내용의 질적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포맷과 이슈, 내용, 개인 또는 집단, 지역 등 네 가지 영역으로 분류했으며, Entman & Wildman(1992)은 제품(product), 아이디어, 접근(access) 등 세 차원으로 구분했다. 이밖에 Ferrall(1989), Horwitz(1991), Mc Quail(1992) 등도 다양성을 규정하기 위한 나름의 시도를 행하였다. 이들로부터 공통적으로 제기된 다양성의 핵심요소는 제공되는 미디어 내용의 관점(points of view) 혹은 준거틀(frames of reference)의 다양성이다. 즉, “방송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많은 종류의 프로그램 메뉴들은 오직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줄 때에만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실증적 차원에서는 Steiner(1952)의 연구를 분기점으로 해서 미디어 다양성을 측정하는 여러 구성요소들이 개발되어 왔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대부분의 실증연구들이 이론적 논의를 통해 다양성의 핵심 요소로 지목한 관점의 다양성에 관해서는 별다른 연구성과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관점의 차이가 어느 정도 발생해야 다양하다고 간주할 충분한 조건이 되는가?”라는 질문에서 드러나듯 관점의 다양성을 계량화하는데 따른 어려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대신 다양성에 관한 실증연구들은 주로 채널과 프로그램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절대적·상대적 다양성으로 나뉘어 접근된 채널 다양성에 비해 프로그램 다양성이 더 많은 연구자들의 조명을 받았다. 이는 “채널의 다양성이 증가한다고 해서 그 자체가 반드시 프로그램 공급원의 다양성 증가를 의미하지 않으며”, “유통창구와 공급원의 다양성이 반드시 프로그램의 다양성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실제로 탄탄한 영상제작기반을 갖춘 헐리우드 대형제작사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업체들이 방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미국에서의 많은 학자들조차 영상제작사의 수적인 증가가 프로그램 다양성을 보장하고 시청자들에게 폭넓은 선택기회를 제공한다는 논리에 회의적인 견해를 표명해왔다. 가령, Bagdikian(1985)은 프로그램 제작주체가 다원화되고 이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이 케이블과 위성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광범하게 전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사고와 정보의 범위는 매우 좁다”고 지적했으며, Le Duc(1982)도 대안적인 방식과 내용의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확대된 방송채널을 통해 더 많은 독립제작사들의 작품이 방영된다는 사실 자체는 민주주의에 필수적이고 방송정책에서 핵심적인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아무런 상관관계를 갖지 못하며 “단지 시청자를 소비자로 만드는 미리 구조화된 시장질서 내에서의 양적 증가만을 의미할 뿐”이라는 것이다. 증가된 채널 수와 이에 조응한 많은 독립제작사들의 프로그램공급이 방송영상시장의 다양성을 보장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프로그램의 질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는 의견도 개진되었다. 이론상으로 프로그램 제작시장에의 손쉬운 진입 및 시장원리에 의거한 자유로운 수급경쟁은 프로그램 질을 향상시키고 프로그램 차별화를 통해 세분화된 시청자들의 기호를 충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실제 방송영상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이와 정반대로 시청자에 대한 “더 많은 선택기회는 더욱 낮은 품질의 미디어를 의미”하는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아무리 다양한 독립제작사들이 존재하더라도 이들이 시장에서 경쟁하게 되면 네트워크로부터의 위탁을 확보하기 위해 논쟁적이거나 도전적인 주제를 회피하고 시청자들의 공통분모적(lowest common denomi nator) 관심사나 문화적 취향에 주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송제작자들은 대체로 광고주들에게 매력적인 중상류계층의 시청자들을 목표로 하면서 여타 계층을 포괄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한다. 시청자가 광고시장에서의 거래를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프로그램은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흥미위주의 주제나 낮은 수준의 문화적 내용으로 표준화되는 경향을 띤다. 이와 같이 방송프로그램 공급원으로서의 독립제작사 수가 증가할 경우 어느 정도 방송영상물의 양적 팽창이 이루어지기는 하겠지만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다양성에까지 자동적으로 연계된다는 논리와 시장경쟁을 통해 영상제작물의 품질이 지속적으로 향상된다는 주장은 실제로 전개되고 있는 방송영상시장에서의 현실과 큰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다양한 독립제작사가 존재하면 방송프로그램의 양과 질 모두가 향상돼 시청자 복지를 증진시킨다는 논리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론상의 구절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김재영 세종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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