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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약 30분 정도 머물렀는데 국감이 진행되는 동안 박 후보는 특별한 질문 없이 침묵하다 선거운동 일정을 위해서 자리를 떴다. 국감에 가서 아무 질문도 안 한 것을 보도하면서 연합뉴스 보도채널 ‘뉴스Y’에서는 ‘별도 질문 없이 경청, 정책 구상 몰두’이라고 자막을 달았다. 정말 대단한 독심술이 아닐 수 없다.

권력에 아부하는 언론은 호환 마마보다도 무섭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된다는데, 그 나라 국민 수준은 언론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언론은 방귀를 낀 독재자에게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부하던 시대로 후퇴해 있다. 국정감사가 음악회도 아닌데 조용히 음미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책 구상 몰두’라니,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와 쌍벽을 이룰 만하다.

이렇게 아부하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대선후보에 청첩장을 돌리며 실리를 챙기는 기자들도 있다. 흔히 ‘마크맨’이라 부르는 대선주자 담당 출입기자 중에 대선후보에게 청첩장을 돌리는데 이 결혼식에 직접 가는 후보도 있다는 것이다. 기자 결혼식에 가는 것을 언론과의 스킨십을 하는 일로 여기는 한가한 대선주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선 캠프 스태프보다 더 열심히 후보를 위해 뛰는 기자들이 화제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경선을 치를 때 그를 적극적으로 도운 5명의 기자들이 ‘독수리 5형제’라고 불리면서 화제가 되었는데, 이번 대선에서도 그런 ‘사실상’ 캠프 스태프이나 마찬가지인 기자 무리가 생겨 논란이 되고 있다. 언론과 정치가 한 몸이 된 것이다.

대선보도의 용병, 정치평론가 중에서도 ‘사실상’ 선거 운동원이나 마찬가지인 평론가들이 있다. 한 평론가는 언론사 노조가 자사 방송 출연을 금지시키라는 성명을 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는 한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평론을 한다는 비난을 듣고 있는데, 그 평론가만 욕할 게 아니다. 이전 총선에서 정당에 공천 신청을 했던 정치평론가들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그라운드를 뛰는 선수와 심판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박근혜 캠프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가 낙마한 김재원 의원의 막말 사례는 대선캠프와 기자들이 맺고 있는 ‘부적절한 관계’의 전형이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야! 이 병X 새X들아. 너희가 기자 맞냐. 너희가 대학 나온 새X들 맞냐. 병X들아 이렇게 정보보고 한다고 특종할 줄 아냐”라고 막말을 해서 물의를 빚고 캠프에서 물러났다.

김 의원이 막말을 하며 화를 낸 이유는 기자들에게 “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명예를 위해 정치를 한다”라고 했던 말이 돌고 돌아 한 시간 만에 다시 그에게 전달되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기자들이 그의 술자리 발언을 회사에 정보보고 한 것을 한 시간도 안 되어 데스크(간부)가 캠프에 고자질한 것이다. 한 마디로 가관이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일단 언론사 데스크가 자사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캠프에 고자질한 부분이다. 일선 기자들은 청첩장을 돌리며 권력자와 자신이 가깝다는 것을 과시할 때 간부들은 권력에 줄을 대고 자신의 미래를 도모한 것이 포착된 것이다. 김 의원이 기자들에게 막말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앞서 말했듯 정치부 기자들이 권력자에게 줄을 대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겉으로는 김재원 의원의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었지만 사실은 우리 언론의 치부가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보도할 때 조선일보는 '자사 기자는 없었다'라고 기사에 명기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어이없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해당 술자리에 있었던 <한겨레>와 <경향신문> 기자는 이에 침묵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국회의원을 ‘선배’라고 부른다. 친해지려고 하는 표현이라는데,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선배란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ㆍ학예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을 뜻한다. 기자가 국회의원을 선배라 부르는 것은 자신이 정치를 했거나, 앞으로 할 거라는 의미다. 친근함의 표현으로 선배라고 부르기에는 기자와 정치인의 연배차가 크다. ‘선생님’으로 불러야 할 차이다.

▲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정치부 기자들이 국회의원을 선배로 부르는 구습은 기자 출신 국회의원들이 많아지면서 생겼다. 언론계 선배였던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서 ‘의원’이라고 부르지 않고 예전처럼 ‘선배’라고 불렀다가 다른 국회의원도 점차 ‘선배’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권언유착’을 보여주는 구습일 뿐이다.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은 호칭에서부터 나온다. 아무튼 대선이라는 큰 장에서 권력의 개평을 챙기려는 언론인들이 자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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