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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한중일 PD포럼 참가자들, ‘역사 속의 인간과 역사 속의 상상력’ 주제로 열띤 토론

역사를 주제로 한·중·일 PD들이 모인 포럼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 속에 열띤 토론이 오갔다.

‘역사 속의 인간과 역사속의 상상력’을 주제로 12일 경주에서 열린 한중일 PD포럼은 영토분쟁으로 긴장관계에 놓여 있는 동북아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한일관계 등의 과거사가 조심스럽게 언급됐지만 그럴 때마다 미묘한 긴장감이 감지됐다.

하지만 포럼 참석자들은 역사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3국 관계에 기여한 바가 있다는 점을 공감하고 프로그램 공동 제작 등 건설적인 협력 방안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는 ‘TV는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 “3국이 역사를 갈등의 도구로 삼지 않고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면서도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포럼이 열리는 경주가 신라의 수도였는데 신라의 왕족인 김춘추의 행적을 찾아가다 보면 일본과 중국사를 만나게 된다”고 663년 있었던 백강전투의 예를 들었다. 백강전투는 나당연합군이 일본과 손을 잡은 백제를 이기면서 신라의 삼국통일 발판을 마련한 전투다.

이덕일 평론가는 “백강전투는 시작부터 일본과 당나라가 깊숙이 관련돼 있었다”며 “이를 단순히 전쟁과 갈등의 시기로 다룰 게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창출했던 시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영토분쟁을 거론하며 “대마도와 독도를 우리 땅이라서 가는 게 아니라 우리의 유물이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 3국간의 갈등을 TV프로그램에서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사진은‘TV는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가’ 세미나 참석자들. ⓒPD저널

■“피해자의 역사, 가해자의 역사” =  한·중·일 3국의 불편한 관계는 이 자리에서도 확인됐다. 각 국가를 대표해 참석한 토론자들은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나서는 어려움과 한계에 대해 토로했다.

시오다 준 일본 NHK 대형기획개발센터 PD는 “지난 2010년도에 ‘일본 조선반도 2000년’을 기획하고 한일간 역사를 양국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살펴봤다”며 “당시 한국의 학자들에게 스튜디오에 나와 달라고 요청했는데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하는 프로그램에는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해 무산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영주 KBS 다큐멘터리국 EP는 “NHK가 특파원을 통해 제안한 ‘일본과 조선반도 2000년’ 공동제작에 대해 거절한 적이 있다”며 “일본 입장에서는 ‘한일합방 100주년’ 특집이겠지만 한국에서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라는 타이틀로 나가게 된다. 이게 피해자와 가해자의 차이”라고 양국간에 존재하는 시각 차이에 대해 언급했다.

3국간의 갈등을 TV프로그램에서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공통분모를 확대해 가자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중국을 대표해 토론자로 참석한 유장 베이징 예술연구소 연구원은 “중국 속담에 ‘바닷물의 물방울 하나로 바다를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며 “문화와 민족이 다르더라도 공통의 요소를 찾는다는 건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구 소련도 세계대전을 치르고 난 뒤에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과거의 참혹한 역사를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통해 조명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덕일 평론가는 논란이 되는 과거사를 조명하는 데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과거사에 대한 원칙을 정할 때 과거의 역사서가 그 기준이 될 수 있다”며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사기, 조선열전과 중국의 역사서인 구당서 신당서에도 모두 고구려는 외국열전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동일하게 고구려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바라보고 있어 논쟁거리가 안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 ‘TV는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가’ 세미나 현장ⓒPD저널

 ■ 공동 제작 실현될까 = 현재의 동북아 관계를 방송에서 뛰어 넘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프로그램 공동 제작 제안으로 이어졌다.

시오다 PD는 “전반적으로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프로그램에서 역사를 조명하는 경향이 부쩍 늘어났다”며 “근현대사와 관련해 한일, 한중 공동 연구와 공동 역사 교과서 논의처럼 TV 영역에서도 공동제작을 통해 역사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만들어가는 시도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장영주 PD는 “아직까지 국내 학계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정당화하기 위한 식민사관이 지배적”이라면서도 “구체적으로 3국의 공동제작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머릿 속에 떠오르지 않지만 만나서 의논하는 과정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청중석에서 포럼을 지켜본 조규진 KBS PD는 현실 가능한 공동제작의 방법으로 신화와 설화 등을 통한 우회적 접근을 제시했다. 그는 “3국이 사실을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다루게 되면 갈등과 긴장은 필연적”이라며 “3국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선녀와 나무꾼과 콩쥐팥쥐 같은 설화와 신화를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해도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자국 중심 역사 프로그램 문제 없나” = 방송에서 역사에 접근하는 태도와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자국 중심의 역사 프로그램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재영 MBC PD는 “과거사에 대한 논쟁보다는 한국과 일본, 중국 TV 프로그램이 국수주의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현재의 동북아의 분위기와 무관한 것인지 살피는 게 필요하다”며 “공영방송 관계자들이 나왔으니까 내부에서 반성적인 움직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한성환 OBS PD도 “2006년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에서 고구려 영토 문제를 다루면서 다분히 쇼비니즘적인 시각이 엿보여 썩 유쾌하게 보지 않았다”고 평가한 뒤 “역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자국 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영주 PD는 이같은 문제제기에 일부 수긍하면서 원인을 시청자들의 요구에서 찾았다. 장 PD는 “시청자들은 역사 프로그램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보급해주기를 원한다”며 “공영방송에서 “이런 분위기 때문에 KBS는 고구려를 한국사로, 중국 CCTV는 만주사로 접근할텐데 이렇게 과도하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에서 빠져나와야 삼국의 역사를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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