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자살에 무감각한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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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C 생명기획 특집3부작 ‘울지마 죽지마 사랑할거야’

바로 어제도 사업실패를 비관한 40대 남성이 마포대교에서 투신해 숨졌다는 기사를 봤다. 자살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전만해도 수많은 뉴스 중 하나일 뿐 바쁜 일상에 단 몇 줄의 자살기사에 잠시 시선을 두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잠시, 내 바쁜 마음은 벌써 처리해야할 일상들로 향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살하기까지 얼마나 아프고 고독한 시간을 혼자 보내다 그런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겼을까 어렴풋이 짐작되기에 마음 한끝이 저려온다.

내가 어쩌다 자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까 생각해 보니 벌써 1년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이동우, 김다혜의 오늘이 축복입니다>를 제작하던 중 새로운 꼭지를 해야 할 상황이 생겼던 때인 것 같다. 당시에도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던 때였고, 그래서 ‘자살에 관한 꼭지를 하자. 대신 자살문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살유혹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매주 한 명씩 섭외해 방송을 통해 알려보자’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생겨난 코너가 ‘김기수의 살자, 살자’이다.

김기수 씨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살을 시도하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생명의 존엄성을 이 꼭지를 통해서 알리는데 정성을 다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자살 유혹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우,김다혜의 오늘이 축복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는 이동우 씨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는 고통 중에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그 누구보다 밝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나누고 있다.

이런 선한 의지와 지향들이 모여 자살극복 사례자 섭외의 어려움이나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김기수의 살자, 살자’코너를 1년여 지속하면서, 우리나라 자살의 현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함에도 정부의 대처나 민간의 대응이 너무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그래서 방송통신위원회 제작비지원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평화방송 생명기획특집 3부작 <울지마 죽지마 사랑할거야>를 제작하게 되었고, 하면서 알게 된 우리나라 자살의 현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 PBC 생명기획 특집3부작 <울지마 죽지마 사랑할거야> 콘서트 현장의 모습.

‘자살대국’의 대한민국 현실을 알리고파

우선 가장 먼저 정부의 재정적?행적적인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지난 5년 동안 자살률이 50%나 오르고, 매일 자살 관련뉴스가 빠지지 않는 상황에서 올해 자살관련 예산은 20억원이 좀 넘는 수준이다. ‘자살대국’이지만 정부와 민간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자살률을 줄여나가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에 견주어 봐도 인구대비 150분의 1밖에 안 되는 예산이다.

4대강 예산이 22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20억원이라는 숫자는 너무 초라하다. 당장 먹고 살 돈이 없어서 죽음을 택하는 현실 앞에 자살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 따져 봐도 연간 11조 7200억원이라는 한 경제연구원의 발표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는 자살자나 자살시도자에 대한 대책이나 관심은 그나마 있지만 자살생존자라고 불리는 자살유가족에 대한 보살핌 또한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탤런트 최진실씨의 자살이 동생 최진영씨의 자살로 이어졌듯이 자살유가족들은 자살고위험군에 속하다는 사실이다. 자살률을 10여년의 준비와 노력을 통해 현저하게 줄여온 핀란드 취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자살시도자나 자살유가족, 우울증을 앓고 있는 등의 자살고위험군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가 자살률을 현저히 낮추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은 우리가 앞으로 어느 쪽에 한정된 예산과 자원을 집중해 자살률을 낮춰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 번째로 우리나라 언론의 자살보도는 옐로우 저널리즘의 전형이라는 사실이다. 생명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를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아무 거름 없이 거칠게 보도한다는 점이다. 2005년 보건복지부가 만든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 기준’이 있지만, 자살동기, 자살장소, 자살방법 등에 대한 보도는 신중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권고 내용이 무색할 정도로 MBC, KBS, SBS, YTN의 기준 미준수율이 65.6%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언론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벼랑 끝 ‘자살극복사례자’ 외침에 귀 기울여야

그만큼 우리는 자살로 인한 죽음에 무감각해져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물질중심의 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사람들이 궁지에 몰려 선택하게 되는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고 우리는 잠시나마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살을 취재하면서 자살을 권하는 건 우리 사회고 그 사회에 나도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은 그나마 뒤늦었지만 소중한 깨달음이다. 이런 깨달음이 나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공동의 책임의식을 갖고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서울 노원구청의 사례취재는 우리에게 자살문제에 있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많은 점들을 시사해주면서 일말의 희망을 던져주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의회에서 자살예방법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례를 제정해서라도 행정력을 동원하고 자살고위험군에 대한 우울증관련 전수 설문조사를 통·반장을 동원해 실시하는 등의 노력으로 구의 자살률을 30%가량 떨어뜨리는데 성공했다. 그 시작은 자살로 인한 사회적 아픔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있었고, 문제해결을 정부에만 미루지 않고 구차원에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고 실천한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우리나라가 자살문제에 관한한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취재를 하면서 노원구청의 사례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생명의 불씨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열악한 환경이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외로운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생명의 전화를 통해 자살을 시도하기 전 흐느끼며 아픔을 호소했던 15살 소녀의 음성이 귓가에 생생하다.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구박, 학교에서의 왕따로 마포대교 위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있던 한 소녀가 27분 동안 같이 울어주며 마음으로 함께 아픔을 나누며 상담했던 자원봉사 상담사의 노력으로 소중한 생명을 구하게 되는 과정을 편집하면서 나도 함께 울었다. 그렇게 자살유혹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취지에서 자살의 어두운 면만이 아니고 자살극복사례자의 희망을 나누는 <살자, 살자 생명토크콘서트>는 나름 작은 희망을 나누는 행복한 자리였다. 양희은, 소냐, 강산에씨가 출연해 자신의 아픔극복 과정을 나누고,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있었기에 자살유혹을 극복하고 성공한 셀트리온의 서정진회장과 호스피스 최서윤씨도 소중한 삶의 체험을 나눠줬기에 더 큰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자살로 인한 아픔으로 눈물 흘리기보다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지켜낸 소중한 생명들이 주는 희망과 기쁨의 눈물이 우리 마음을 적시는 날이 좀 더 많아지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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