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제작기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버림받은 희생, 삼청교육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잔학과 비겁의 현대사

|contsmark0|방송 다음날 인터뷰 취재를 했던 삼청교육 피해자 한 분으로부터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상당히 화가 난 목소리로 자기 인터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항의하며, 방송으로 나간 내용도 숫제 볼 것이 없었다며 사정없이 질책하는 것이었다.
|contsmark1|사람이 수 없이 죽어나간 것이며, 몽둥이며 군화발, 개머리판에 유린당하며 변을 볼 때는 수 백명이 하나같이 피똥을 싸던 그 생지옥의 현장이 순화교육 기간이었는데, 그런 얘긴 없고 순화교육에 비해 천국이나 진배없었던 근로봉사와 감호기간 얘기만 한가롭게 했다는 것이었다.
|contsmark2|
|contsmark3|잔인했던 폭력의 잔해 그대로 느껴
|contsmark4|천번, 백번 자인하는 부분이다. 적어도 취재한 피해자들이 생생하게 토해낸 그 고통과 절망과 죽음의 현장을 채 10분의 1이라도 전달했으면 하는 것이 당초의 욕심이었지만, 그마저 전달했는지 하는 모자람과 자괴는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이템 선택에서부터 고심을 많이 했었다. 그것은 일차로 내 스스로의 머리 속에 각인돼 있는
|contsmark5|‘삼청교육대’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소위 ‘깡패’와 ‘불량배’를 과 감히 솎아낸 용단에 당시 많은 국민이 환호한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그런 나의 짧은 인식에다 일정한 신념을 부여해준 것이 기왕의 언론이 ‘삼청교육대’ 문제를 한 번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만의 인식부재라고만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다. 거기에다 요즘 흔한 풍경인 ‘조폭신드롬’에 선정적으로 편승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한 것이 사실이었다.
|contsmark6|그러나 이것들은 무지와 단견의 소치임이 금방 드러났다. 우선 처음 몇 명의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지고 있는 고통과 불행에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contsmark7|그 때부터 취재팀은 우리 언론이 한 번도 하지 않은 소위 ‘깡패’와 ‘전과자’의 눈물과 인권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날 망가진 육신과 정신에 전율하며, 서럽고 고통스러운 한을 쏟아냈다.
|contsmark8|그들의 진한 눈물 속에는 과거 그들을 굴종시키며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던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폭력의 잔해가 그대로 살아있었다. 그리고 ‘깡패’도 ‘전과자’도 아니었던 수 많은 폭력의 피해자들이 동시에 드러났다. 그들은 요즘도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만만하기만 한 그런 이웃들이었다. 여기에다가 집단 폭력의 광기에 자연스럽게 표적들이 된 사람들까지….
|contsmark9|그러나 이들 모두에게 주어진 결과는 똑 같았다. 한 조교의 표현처럼 모두가 ‘인간 이하 개, 돼지…’ 이하로 다루어졌다. 그들은 청소돼야 할 ‘사회악’으로 인식되고, 교육되었기 때문이었다. 피해와 후유증은 처참했다. 1989년 정부 공식 발표만으로도 사망 54명, 후유증 사망자 397명, 장애 및 상해 2천 8백명, 경악할 수치였다.
|contsmark10|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증언과 정황은 취재를 통해 계속해서 나왔다. 그리고 취재 초기에 군의 발포로 사망자가 난 사건에서 은폐된 사망자가 더 있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확보되었다. 사망자 수뿐만 아니라, 사망원인에 있어서도 의혹 투성이였다.
|contsmark11|문제는 사실 관계의 구체적 확인이었다.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도 필요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이 피해자들의 증언만으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 일이었다. 조심스럽게 미뤄왔던 제보 고지 자막은 기대를 넘어서는 성과를 안겨주었다. 당시 삼청교육대 실시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의 자발적인 제보와 증언은 ‘삼청교육대’ 안에서 일어났던 잔학행위들이 대부분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contsmark12|
|contsmark13|왜 한번도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나
|contsmark14| 어렵게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던 한 조교의 증언은 더욱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추정으로만 머물렀던 사망자 은폐와 알려지지 않은 죽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증언을 듣던 날, 우리팀 자신부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아야했다.
|contsmark15|방송은 삼청교육대의 전체 실상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는 데 초점이 두어졌으나, 지적처럼 터무니없이 미진했음을 거듭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삼청교육대는 잔학과 비겁의 현대사, 그 자체이다.
|contsmark16|그런 일이 불과 20년 전에 이 땅에서 일어났다고 누가 믿겠는가? 더군다나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음에도 지금까지 아무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음을 상기한다면, ‘삼청교육대’ 문제는 전두환 정권만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죄악임을 일깨워준다. 선택적 무지와 집단인식의 오류, 그리고 조직적 세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삼청교육대’ 문제를 바로잡는 출발점이다. 당연히 그 역할은 전적으로 언론에 주어져 있다.
|contsmark17|채환규 mbc 시사제작국 |contsmark18|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