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의 책읽기 ‘봐라,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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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염상정의 꽃, 서른 명의 수행자들

|contsmark0|동안거 기간인 요즘 전국 제방 선원에는 많은 스님들이 삼매를 체험하고 있다. 망심을 없애고 진심을 닦아 선정에 이르는 일을 일생의 중대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경남 함양군 황대선원에서 참선 수행하고 있는 성수 스님을 뵈러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contsmark1|“입은 헛말을 하지 말고, 손은 헛짓을 하지 말고, 발은 헛걸음을 하지 마라. 들숨과 날숨 사이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정신이라는 놈은 들락 날락 하는 놈이다. 중생 가운데 5분이라도 자신의 정신을 여일하게 관리 하는 놈 몇명이나 될 것 같은가?
|contsmark2|밥솥한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밥솥은 생쌀을 밥으로 바꾼다. 그런데도 덜익고 설익은 인간이 다 된 뜨거운 밥을 먹으면서도 눈물을 줄줄 흘릴 줄 모른다. 그 밥을 먹으면 밥솥한테 부끄러운 줄 알아서 뜨거운 눈물을 삼켜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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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세수 80세의 노스님이 들려준 가르침이다. 나는 그 말씀에 오금이 저리고 찬물로 세수를 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황대선원에서는 전국에서 찾아온 스님들과 보살들이 참선 정진을 하고 있었다.
|contsmark5|밤에도 방고래에 불을 넣지 않고 서늘한 방에서 그들은 정진하고 있었다. 방이 따뜻해지면 게으름이 생기고 졸음이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깨닫는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수스님을 만나는 동안 나는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조금의 방일조차 허락하지 않는 그 형형한 모습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contsmark6|‘봐라, 꽃이다!’를 읽는 동안에도 나는 참으로 부끄러워졌다. 이 책은 저자 김영옥씨가 해인사 포교잡지 ‘해인’의 ‘호계삼소’란을 통해 소개한 스님들 가운데 서른 분의 스님들만 다시 추려 책으로 묶은 것이다.
|contsmark7|유려한 문장도 좋지만, 또박 또박 새기듯이 작가가 받아 적은 스님들의 말씀도 큰 울림을 준다.
|contsmark8|글을 쓰는 내내 “법당의 찬 마루 바닥,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예불을 올리며 울고, 저녁 대종소리를 들으며 뒤돌아 주저 앉아 울고, 돌에 새겨진 부처의 발자국을 만지면서 울었다”는 작가의 고백 또한 그래서 심상치 않게 들린다.
|contsmark9|두두물물이 다 부처라 했으니,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서른 분의 스님들이 거처하는 처소도 각각 다르다. 인적이 끊어진 토굴에서 가부좌를 틀고 일각의 틈이 없이 화두를 타는 선승들도 있고, 도심 포교당에서 자비행을 실천하는 스님들도 있다.
|contsmark10|해질녘이면 갈가마귀떼들이 머리 위로 빙빙 돌며 우짖는 소리를 “야 이 새끼들아”라고 야단치는 소리로 알아 자책을 하게 된다는 연관 스님도 있고, 참선 수행이란 자기가 스스로를 보기 위해서 애써 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하는 명진 스님도 있고, 차와 선을 둘로 보지 않아 다도를 수행방편으로 삼는 선혜 스님도 있고, 이 길이 내 마지막 길이 되게 하리라며 제방 선원을 전전했다는 무비 스님도 있고, 정신질환자와 무연고 노인을 보살피고 있는 현각 스님도 있고, 처염상정의 꽃을 찾아 연밭을 헤매는 동욱 스님도 있고, 고려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성공적으로 회향한 종림 스님도 있다.
|contsmark11|수행방편은 다르지만,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스님들의 공통점은 법랍 30~40년의 중진 스님들이라는 것과, 여여하고도 오롯이 상구보리 하화중생(스스로는 지혜를 구하고 중생에게는 보살심을 내는 일)을 엄혹하게 실천하는 스님들이라는 점이다.
|contsmark12|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한가지에 함몰되어 서슬 푸른 기세로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무섬증은 무엇일까? 아무튼 우리는 그게 무엇 때문인지를 오래 궁리하지는 않지만, 우리 주변 처처에는 방만하고 탐욕스럽고 헛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섬증을 안겨주는 수행자들이 많다.
|contsmark13|허투로 살고 허투로 낭비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부끄러움을 안겨 줄 것이다. 자신의 종교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자신의 ‘서럽도록 누추한 자화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찌 뜨거운 눈물을 삼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contsmark14|문태준 불교방송 pd|contsmark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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