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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옥의 헛헛한 미디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언론, 특히 방송 뉴스는 워치독(Watchdog)으로서 언론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4부로서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수행하려 들면 소송과 징계가 이어졌고, 언제부턴가 벌어진 현실에 대한 대립된 입장과 의견들을 나열하는 기계적 균형을 갖추는 게 최선의 가치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보도 책임자들의 모습이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권력의 교체 여부를 결정할 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기계적 균형조차 벗어던진 채 특정 정파의 소식만을 앞세우거나 자세히 전달하는, 쉽독(Sheepdog)으로 전락한 언론의 맨얼굴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MBC의 메인 뉴스인 <뉴스데스크>의 민낯이 두드러진다.

▲ 11월 15일 MBC <뉴스데스크>
박근혜 입장에 주목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협상 ‘주객전도’ 리포트

당장 지난 15일 저녁 방송된 <뉴스데스크>는 첫 번째 리포트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 협상 파행 관련 소식을 2분 5초 동안 내보냈다. 앵커멘트(21초)와 리포트를 마무리하는 기자의 멘트(15초)를 제외하면 89초가 남는데, 이 중 단일화 협상 파행의 당사자인 문재인(18초), 안철수(29초) 후보 측의 입장을 전달한 시간은 47초뿐이었다. 남은 42초는 야권의 단일화 협상 교착에 대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의 비판과 공세로 채웠다.

언뜻 해당 리포트는 야권의 상황, 즉 교착 상태에 빠진 후보 단일화 소식과 그에 대한 여당의 반응을 비슷한 분량으로 전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뉴스데스크>는 바로 다음에 배치한 1분 42초 분량의 리포트(앵커멘트 15초)에서 모교를 방문해 교육 관련 정책 공약 등을 밝힌 박근혜 후보의 대선 행보를 자세하게 전했다.

반면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대선 행보는 세 번째 리포트에서 한데 묶어 1분 37초(앵커멘트 17초, 문재인 후보 37초, 안철수 후보 43초) 동안 보도했다. 보도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세 후보에 대한 소식을 전달함에 있어 박근혜 후보 129초, 문재인 후보 55초, 안철수 후보 72초 등으로 양적 균형조차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뉴스데스크>는 앞서 지난 14일에도 모든 방송 뉴스에서 앞서 전한 야권의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 중단 소식보다 박근혜 후보의 여성정책 발표를 먼저 보도해, 이날 오후 자신들에게 불리한 편파 보도를 하지 말라며 MBC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을 항의 방문한 새누리당의 압박을 수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보도 내용을 보면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야권의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에 대한 박 후보와 여당의 공세를 그대로 전달할 뿐, 이 속에 담긴 여당의 속내엔 관심이 없다. <뉴스데스크>는 박 후보와 김무성 본부장의 입을 빌어 교착 상태에 빠진 야권의 단일화 협상마저도 “정해진 각본에 따른 대국민 관심끌기 정치쇼”로 규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보 단일화에 대한 흠집내기와 두 후보 사이의 틈을 벌이려는 의도는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박 후보 측의 반응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려는 보도 태도인 것이다.

같은 날 KBS <뉴스9>는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 파행 소식을 두 개로 나눠 전했다. <뉴스9>는 1분 52초 분량의 첫 번째 리포트에서 단일화 협상 파행의 당사자인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입장을 각각 나누어 전달했다. 캠프에서 안 후보 사퇴론이 나온 데 대해 사과한 문 후보와 진정성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안 후보의 입장과 함께, 이날 있었던 이들 후보의 선거운동 소식을 보도한 것이다.

야권 단일화 협상에 대한 박 후보와 여당의 공세는 1분 36초 분량의 두 번째 리포트 <새누리 “단일화 협상 중단은 지연전술일 뿐”>에서 종합해 전달했다. 박 후보의 선거운동 소식도 <뉴스데스크>와 달리 별도로 배치하지 않고 해당 리포트 안에서 소화했다.

▲ 11월 15일 KBS 1TV <뉴스9>
‘영혼 없는 기계’로 전락한 언론

문제는 시간과 수의 균형을 맞췄다 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라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정책과 이슈에 대해 해설하지 않고 양쪽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 그친다면 앵무새와 다를 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속에 담긴 진실을 찾아내기는커녕, 서로에 대한 공세에 골몰하는 정파들의 모습에만 집중하는 언론은 유권자인 시청자들의 정치 혐오만 부채질하고, 이런 상황에서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기계적 균형을 유지했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그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MBC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해직기자인 이용마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의 증인으로 출석해 “보도는 하루의 역사를 쓰는 일인데, 틀린 역사를 쓰라고 강요받을 때 기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언론인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장관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보고서를 쓰는 ‘영혼없는 기계’의 모습으로 살아도 좋은 것인가에 대한 그의 질문이 지금, 이 순간, 유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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