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 김명민이 돌아온 ‘드라마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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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이 돌아왔다. 자기 욕망의 추악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변명하려 하지 않고 되려 더욱 필사적으로 욕망을 취하고 영혼에 자해를 하던 장준혁이 돌아왔다. <하얀거탑>에서 우리가 보았듯 그것은 김명민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이고 가장 어울리는 옷이다. 그가 연기하는 위악적인 캐릭터는 김명민의 공기를 구성하는 억양과 톤, 표정, 행동의 박자감 안에서 가장 생생하게 살아난다. <드라마의 제왕>은 근래 유일하게 눈을 머물게 만드는 멋진 드라마다.

SBS<드라마의 제왕>은 언뜻 <하얀거탑>(MBC(과 <베토벤 바이러스>(MBC), 그리고 <온에어>(SBS)와 <최고의 사랑>(MBC)으로부터 가장 근사한 것들을 뽑아와 버무린 것 같은 모양새다. 장항준이 각본을 쓰고 있는 이 드라마는 정려원이 연기하는 이고은의 성장물이라는 기본 포맷을 유지하면서, 연예계의 뒷모습에 대해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그러한 구태와 악습의 전형인 인간이 주인공 앤서니 김(김명민)을 연기하는 흥미로운 구조를 띄고 있다. 구태에 저항하는 양심적인 인물이 주인공이었다면 이 드라마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없는 빤한 선악 구도의 수사적인 이야기로 전락했을 것이다.

▲ SBS <드라마의 제왕> ⓒSBS

그러나 <드라마의 제왕>은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의 대결을 보여주는 대신 그 나름의 사연과 맥락, 서로의 당위들을 드러내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강요된 것이 아닌 자기 자신만의 고민과 판단을 가능케한다. 문제의식이란 바로 그런 수요자의 고민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잔뜩 인상을 찌뿌린 주인공이 절대악과 맞서 싸우며 시청자의 고민이 개입될 여지 없이 선과 악을 골라 집어낼 수 있는 이야기에는 문제의식이 필요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가장 어렵고 근사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욕망의 추악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변명하려 하지 않고 외려 더욱 필사적으로 욕망을 취하고 영혼에 자해를 하”는 김명민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는 상황에는 다소간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언젠가 김명민과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오고 간 일이 있다.

“요즘 중앙선관위 공명선거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던데. 금융이고 보험이고 어딘가 신뢰가 필요한 이미지에 곧잘 어울려 등장하는 것 같다. 역시 장준혁의 힘인가” “그러게. 그런데 난 그게 참 이상하다. <하얀거탑>의 장준혁은 야심으로 똘똘 뭉쳐 온갖 비리와 조작과 뒷거래를 총동원하면서 일신을 도모하는 파렴치한이 아닌가. 그런데 왜 내게 그런 신뢰를 갖는 걸까?”

여기에는 성과제일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을 태동케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향후 전개될 이야기에서 앤서니 김의 전말을 빨리 확인해보고 싶다.

텍스트 외적인 부분에서 문제 하나를 찾아본다면 역시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앤서니 김에게서 자연스레 장준혁을 떠올리게 된다는 점이다. 일단 인물의 개성이 너무 닮았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마저 <하얀거탑>과 <드라마의 제왕> 사이에 유사점이 많다.

▲ 허지웅 영화평론가
<하얀거탑>에서 최도영(이선균)이 상징했던 가치를 <드라마의 제왕>에선 이고은(정려원)이 고수할 것이다. 기시감이 잦다 보니 지난 방송에서 앤서니 김이 방송사 국장 앞에 무릎을 끓는 장면에선 역시나 장준혁이 노민국 앞에 무릎을 끓는 장면이 떠오르고 말았다.

그러나 앤서니 김·이고은 사이의 로맨스가 부각되기 시작하면 <드라마의 제왕>만의 공기가 확실히 자리 잡힐 것이라 생각한다. <드라마의 제왕>의 가장 사랑스러운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 멋진 이야기가 고작 4회 밖에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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