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씁쓸한 김인규 KBS 사장의 퇴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인규 KBS 사장이 오는 23일 퇴임한다.

김 사장은 이날 월례조회 형식으로 조촐한 퇴임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 그가 어떤 소회를 밝힐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그는 KBS 내부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3년 전 KBS 사장으로 취임하는 김 사장에게 보낸 ‘KBS 공채 1기 출신 사장’에 대한 기대는 점차 실망으로 바뀌었다. 반대로 ‘특보 사장’에 대한 우려는 ‘관제방송’ 논란 속에 현실이 됐다. 취임하면서 약속한 수신료 현실화는 이루지 못했고, ‘적자 경영’에 대한 책임 추궁도 이어졌다.

퇴진 압박에도 그는 3년 임기를 꼬박 채웠다. 역대 KBS 사장의 임기를 따지고 보니 그의 퇴임이 더욱 씁쓸해졌다. KBS 사장 가운데 임기 3년을 채우고 퇴임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 김인규 KBS 사장이 23일 3년간의 임기를 채우고 퇴임한다.‘낙하산’이라는 오명 속에 2009년 11월 24일 취임한 김 사장이 노조의 출근 저지로 간부·청원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본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PD저널

KBS 사장은 정권교체 시기와 맞물릴 때면 중간에 물러나는 게 관행처럼 인식돼왔다. 스스로 내려오느냐, 끌려 내려오느냐의 차이였다. 정연주 전 사장은 후자였다. 정 전 사장은 지난 2008년 8월 8일 임기를 15개월 남겨놓고 이사회에서 강제로 해임을 당했다. 정 전 사장 후임으로 취임한 이병순 전 사장이 임기를 채우긴 했지만 그의 임기는 1년 3개월로 짧았다.

이전 정부로 넘어가더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3년 박권상 전 사장은 임기를 70여일 앞두고 자진 사퇴했고, 1998년 홍두표 전 사장도 임기 중간에 스스로 물러났다. KBS 사장 자리는 정권 창출에 따른 전리품 정도로 여겨졌다.

방송법에 따르면 KBS 사장은 ‘방송의 공정성 실현이라는 공적 책임을 지고 있는 KBS를 대표한다. 하지만 역대 KBS 사장의 수난사를 보면 이런 방송법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정권을 창출한 정치권력은 어김없이 방송을 장악하고 언론사에 자기 사람을 심고 싶어 했다. 그리고 권력의 낙점을 받은 이들은 당당하게 ‘독립성’과 ‘공정성’을 강조하면서 KBS에 발을 디뎠다.

이들의 씁쓸한 마지막 모습처럼 첫 출근도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첫 출근길에 사퇴를 요구하는 직원들과 대면하는 것은 이제 통과의례가 됐다. 김인규 사장도 ‘낙하산 사장’이라는 야유를 듣고 첫 출근을 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출근 저지’와 중도 퇴진없는 KBS 사장을 바라는 건 아직도 지나친 기대일까.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