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나 ①] “MB를 저 지경으로 만든 건 내 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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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외치다 징계를 받은 언론인들만 500여명에 이른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많은 언론인들이 분노와 좌절 속에 지난 5년을 견뎠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통의 시간도 지나가고 있다. 18대 대통령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언론인들이 지난 5년 동안의 대통령과의 질기고 독한 인연을 되돌아본다. 첫번째 순서로 <내조의 여왕>  <논스톱3> 등을 연출한 김민식 MBC PD다.  <편집자주>

얼마 전에 책을 한 권 냈다. 평소에 블로그, 유튜브, 팟캐스트 등의 소셜미디어를 가지고 노는 터라 매스미디어 PD가 말하는 소셜미디어 제작법, ‘낭만 덕후 김민식 PD의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란 책을 썼다. 책을 낸 인연으로 서울 근교 어느 시립도서관에 가서 저자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에 앞서 도서관장을 만나 인사를 하는데, 그 분이 이렇게 물었다. 

“혹시 예전에 MBC <느낌표> ‘찰칵찰칵’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으셨나요?”

“네, 맞는데요.”

“그때 제가 서울시청 홍보과에 있으며 촬영을 도와드렸는데요.”

▲ MBC노조에서 편성제작부문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민식 PD가 지난 10월 29일 서울 여의도 MBC본사 앞에서 김재철 해임안 처리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잊고 지내던 8년 전 예능국 근무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느낌표>에서 ‘찰칵찰칵’이라는 코너를 연출했는데, 시민들이 휴대폰으로 선행 장면을 촬영해 제보하면 MC인 이경규와 장경동 목사가 현장으로 달려가 사연의 주인공에게 ‘황금 뱃지’를 달아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서울 한가운데 자리한 시청 옥상에서 시민들의 제보 영상을 본다는 게 기획의도였기에 늘 시청에서 촬영을 했다. 그 분은 촬영 때마다 오셔서 제작진에게 식사와 음료수를 챙겨주셨다.

“그때는 선생님 덕에 촬영 참 편하게 했었죠.” 

“당시 이명박 시장님이 방송 출연을 참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느낌표> 같은 공익 프로그램이 촬영 온다고 하면 시청 홍보과 직원들이 총출동했던 겁니다. 그때 <느낌표>에 출연한 게 대선 주자로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아십니까?”

“아, 네. 그랬군요.” 하고 대답하는데 굳어지는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

“드라마 PD로 업무를 바꾸셨던데, 그럼 많이 바쁘지 않으신가요? 이렇게 작은 도서관 행사까지 찾아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순간 할 말이 없었다. ‘MB(이명박)가 함량 미달의 낙하산 사장을 보내 MBC를 망가뜨린 바람에 올해 초 6개월 간 파업을 했고,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한 통에 6개월 정직을 먹었답니다. 그 덕에 시간이 남아 이렇게 책도 쓰고 저자 강연회도 다니고 있답니다. 이게 다 방송 출연 좋아하는 시장님 덕분이죠, 뭐.’ 라고 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딴따라 PD로 살았다. 누가 “방송의 공영성을 지키기 위해 파업이라도 해야 하나?” 하면, “예능 PD라면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으로 공익에 복무해야하는 거 아냐?” 하고 반문하던 나였다. 정치적 성향은 따지지 않고 촬영에 협조를 잘해주는 사람이 최고라고, 그게 프로가 일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 김민식 MBC PD.
이제 와 돌아보니, 모든 게 내 탓이다. 방송사 PD 하나 주무르는 게 너무 간단하다는 걸 알려준 게 나다. 스태프들 밥 챙기고 음료수 챙겨주면 덥석 방송 출연시켜주는 게 PD라는 걸 알려준 게 나다. 방송 출연 좋아하는 사람 밀어주다, 방송을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믿게 만든 게 나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역사에 길이 남을 방송 장악의 원흉이 되어버린 대통령. MB가 저 지경이 된 건 다 내 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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