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언론 설립운동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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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언론 설립운동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
1987년 '한겨레' 창간과 1990년대 국민주방송 설립 운동의 교훈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3.01.0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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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론을 바라는 움직임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1987년과 1990년대에 두차례에 걸쳐 이뤄진 대안언론 설립 운동은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를 맛봤다. 1990년대 후반에 있었던 국민주방송설립 운동은 RTV 개국이라는 결실을 맺었지만 현재의 모습을 보면 실패에 가깝다.

최근 일고 있는 대안방송 요구는 정치지형만 놓고 보면 1988년 <한겨레> 창간 때와 닮았다. 1987년 김대중·김영삼 후보의 단일화 실패는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대선에서 군부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으로 귀결됐다. 이는 1975년 해직된 동아·조선투위 및 1980년대 해직 기자들을 중심으로 논의돼온 새 언론 창간에 불을 붙였다. 창간기금 모금 운동을 벌인 결과 모금을 시작한지 108일 만에 목표액인 50억원을 채웠다. 기금출연자는 2만 7223명이었다.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1987년 민주정부를 설립하는 데 실패한 뒤에 국민적 열기가 확산되면서 <한겨레>가 창간됐고, 이후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올해 국민주 방송이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분출된 요구를 책임 있는 단위에서 수렴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1996년 방송개혁국민회의(방개혁)가 중심이 된 국민주방송설립 운동은 당초 종합편성채널 확보를 목표로 했다. 2001년 위성방송 채널 확보를 놓고 방개혁과 경쟁한 시민방송설립추진위원회는 시청자참여 채널을 요구했다.

2001년 이들 두 단체가 통합에 합의하고 개국한 방송이 바로 시민방송 RTV다. RTV는 2002년 9월 16일 국내 최초의 퍼플릭액서스 방송으로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전국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 추진되고 있는 대안방송이 국민주방송 설립 때처럼 신규 채널을 얻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가칭)국민TV방송이 기존의 방송 산업에 진출하는 데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부침을 겪고 있는 RTV 사례를 보면서 자발적으로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거부한 측면도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당시 국민주방송 설립운동은 채널을 받을 수 있다는 낙관적인 상황에서 일어났다”며 “국민TV방송은 정부로부터 채널을 받는 게 어렵기 때문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수용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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