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드라마는 끝났지만 교육은 ‘ing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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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학교2013’ 이민홍 PD

승리고 2학년 2반 출석부에 적힌 35명의 학생들. 한 교실에 앉아있지만 저마다 처한 상황은 각기 다르다. S대 합격자 명단에서 탈락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하경(박세영), 명문대 진학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매니저 엄마를 둔 민기(최창엽), 학교 다니는 이유를 ‘그냥’이라고 쓴 뒤 잠을 청하는 남순(이종석),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학교를 겉도는 정호(곽정욱).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든 붙잡아 무사히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려 보내려는 기간제 교사 정인재(장나라)와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는 강세찬(최다니엘) 선생이 있다. 지난달 28일 ‘학교의 자화상’을 담아낸 <학교 2013>이 16부작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마는 ‘마침표’를 찍었지만 학교의 현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이민홍 KBS PD를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KBS 별관 드라마국 회의실에서 만났다.

▲ 이민홍 KBS PD ⓒPD저널

1982년 KBS에 입사해 20여 편이 넘는 드라마를 연출한 이민홍 PD는 KBS 드라마 <학교> 시리즈의 원조 격인 <학교1>(1999)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학교1>에서는 학교 세태를 적절히 그려내 세간의 화제를 낳았고, 동시에 배우 장혁, 배두나, 최강희 등 신예 스타들을 대거 배출했다. <학교1>은 <학교> 시리즈물의 물꼬를 텄으며 배우 김민희, 공유, 임수정 등을 발굴했다.

<학교1>을 만든 지 13년 만에 <학교 2013>의 연출을 맡은 이 PD의 감회는 남달랐다. “<학교1> 이후로도 교육 현장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늘 있었어요. 뉴스에서도 학교 폭력과 관련된 사건을 쉽게 접할 수 있듯이 1990년대와 달리 지금 상황은 너무 많이 변했죠. 교권 추락, 공교육 붕괴, 학교 폭력과 왕따까지. 그야말로 교육 현장이 천지개벽한 수준이죠.”

연출을 결심한 이 PD는 지난해 5월 기획안을 확정할 때까지도 ‘방점’을 어디에 찍어야 할지 고심했다고 한다.

“학교 전문가가 아니니까 해결방법을 제시할 수 없어요. 다만 드라마 PD로서 현재의 학교에서는 어른들이 모르는 부분과 아이들이 감추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여겨서 그 부분을 정서와 진정성으로 파고들려고 했죠. 교육은 늘 ‘~ing형’(현재진행형)이니까 시청률보다는 직구를 던져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려보자는 생각이 컸습니다.”

이를 보여주듯 이 PD의 기획 의도는 회를 거듭할수록 명확해졌다. <학교 2013>에서는 공교육의 무너진 현실, 기간제 교사, 교원 평가제 등으로 설 자리가 좁아진 교사, 성적순으로 계급화된 교실의 모습 등을 차근차근 조명해나갔다. 이에 시청자의 반응도 뜨거워졌다. 드라마는 이병훈 PD가 터를 잡은 <마의>(MBC)와 배우 김명민이 나선 <드라마의 제왕>(SBS) 사이에서 입지를 다져가며 당초 시청률 7%대를 내다봤다는 이 PD의 예상과는 달리 15%대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결국 <학교 2013>은 탄탄한 연출력, 짜임새 있는 극본, 신인 배우들의 신선한 연기 등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졌다는 평가다. 특히 이 PD는 “러브 라인과 해피엔딩만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점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쉽게 택하기 어려운 길이었다. 그러나 현직 교사로 이뤄진 자문단에서도 지금의 학교 현실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교육 관련 드라마에서는 절대로 해피엔딩이 있을 수 없죠. 드라마가 끝나도 현실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니까요. 마지막 회에서 말썽을 일으키던 정호가 ‘나쁘게 살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학교로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 모르는 거죠. 교육의 주체는 제도나 선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KBS 2TV <학교 2013> ⓒKBS

이처럼 이 PD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까지 얽힌 학교의 민낯을 그대로 들여다보기 위해 촬영 공간도 ‘학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자 했다. 그는 “오히려 ‘학교’라는 공간만을 최대한 파고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그려낸 ‘교실’처럼 한정된 공간에서조차 승자와 패자가 철저하게 나뉘는, 징그러울 만큼 세세히 담아내기로 한 것이다.

‘교실’은 숨은 권력을 보여주는데 효과적이었지만 실제 촬영 현장에서는 수고로움이 더해졌다는 후문이다. “한 교실에서 35명을 찍는 일이 만만치 않아요. 한 명의 표정을 찍으려면 그 주위의 책걸상을 다 옮겨야했거든요. 한 신을 찍은 뒤 조는 학생, 공부하는 학생, 떠드는 학생 등 각각 동선을 따라 50~60컷을 찍기도 했죠. 하루는 교실에서만 21신까지 찍어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땐 교실만 들어서면 머리가 아프더라고요.”(웃음)

이 PD는 또 출연진 대부분이 신인 배우인지라 연기 지도에도 힘썼다. 신인들은 의욕이 앞선 나머지 자칫 과잉된 연기로 이어지기 쉽다는 판단에서다. “느낌만 과감하게 던지라고 했어요. 연기는 꾸민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꾸밀수록 거짓말이 나오니까요. 감정신에서 지나치게 몸이나 눈동자를 움직여서 표현하려고 할 땐 일체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죠.”

그는 애초 신인급 배우 캐스팅 과정에 대해서도 “공개 오디션으로 500여명을 봤다. 물론 아이돌에 대한 유혹이 있었지만 반사이익만큼 반감되는 부분도 있을 거라 여겨 뽑지 않았다”며 “공부파, 외모파, 일진파 등의 그룹을 지어 누구 하나도 버리지 않고 인물의 이야기를 담아내자는 쪽으로 (작가들과) 가닥을 잡았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심혈을 기울인 16부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어냐고 묻자 그는 강세찬이 정인재에게 ‘당신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고 말하는 장면과 정인재가 학생들에게 시(詩)를 읽어주는 장면을 꼽았다. 특히 “정인재가 매 대신 손바닥으로 체벌하는 신은 혼신의 힘을 다해 찍었다. 자칫하면 오글거리기 쉬운 장면이라 멋진 앵글을 잡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배경음악도 깔지 않았다”라고 이 PD는 설명했다.

<학교 2013>은 막을 내렸지만 종례는 끝나지 않았다. 정인재 선생의 애를 태우던 남순과 흥수는 무사히 고3에 올라갔지만 문제아로 낙인찍힌 정호는 끝내 “나쁘게 살지 않겠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나 또 다른 기다림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그저 버티는 것으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지금 학교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과연 이 사회에서 어른들이 져야할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남긴 대목이다. 앞으로 이 PD가 이 사회에 던지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후배들과 똑같이 (기획안) 경쟁해서 아주 솔직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요. 삶에 대해서도, 우리의 본성에 대해서도 모든 걸 여과 없이 드러내 소름이 끼치는 드라마요. 어차피 연출자는 아무것도 없는 길을 걸어가서 시청자들에게 ‘이 길을 가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묻는 게 역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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