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거리두기’ 신선… ‘안전장치’ 시각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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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드라마 ‘다시쓰기’

드라마에 ‘다시쓰기’ 바람이 불고 있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SBS <야왕>·<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겨울>), MBC <7급 공무원>은 각각 박인권 화백의 만화 <야왕전>,일본 드라마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 영화<7급 공무원>을 새롭게 쓴 작품들이다.

지금까지 인기 소설과 만화를 드라마로 옮기는 작업은 꾸준히 있어왔다. <꽃보다 남자>, <풀하우스>, <뿌리깊은 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좋은 원작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건 새로울 게 없지만 이들 드라마에 눈길이 가는 건 새로운 경향성을 보이고 있어서다.

먼저 방송 중인 드라마에 원작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7급 공무원>은 국가정보원이라는 배경을 제외하고는 아예 다른 드라마다. <야왕>드라마의 하류는 원작에서 복수심에 차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하류와 달라 보인다.  

▲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SBS
<그 겨울>은 원작 드라마의 인물 설정만 가져온 정도다. 재벌 후계자이지만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여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접근하는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노희경 작가의 섬세한 감성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다. 결말 비틀기 정도로 원작과 차별화를 시도했던 것에서 진화된 형태다.

드라마의 원작으로 쓰는 저작물의 장르도 다양해졌다. 이전에는 만화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대세였다면 요즘은 <그 겨울>, <7급 공무원> 처럼 일본드라마나 영화를 다시 드라마로 만드는 경우가 늘고 있다. KBS도 <광고천재 이태백> 후속으로 일본 NTV에서 방송돼 큰 반향을 일으킨 <파견의 품격>을 원작으로 한 <돌아와요 미스김>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드라마 제작이 가능한 소설과 만화의 판권을 대부분 선점한 제작사들이 해외 드라마에 관심을 돌리고 있는 추세와 맞닿아 있다. 김영섭 <그 겨울> CP는 “할 만한 문학 작품은 드라마로 이미 제작을 했다는 평가 속에서 드라마의 소스가 되는 원작을 일본 원작이나 웹툰 등으로 넓히고 있다”며 “특히 일본드라마는 우리 정서에 맞게 각색하는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현재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묘미가 있다”가 말했다.

이미 국내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사 간에는 수년간 판권 확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웬만한 원작은 모두 제자사들이 드라마 판권을 갖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작인 <바람의 화원>과 <뿌리깊은 나무>가 드라마로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던 이정명 작가의 신작에는 여러 제작사와 방송사가 구입의사를 타진한 상태다.

▲ SBS <야왕> ⓒSBS
이정명 작가는 “지난해 펴낸 <별을 스치는 바람>의 국내 판권이 풀린 뒤 현재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할 수 있는 영상 판권과 뮤지컬 판권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원작을 살려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제작사와 계약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흥행작으로 꼽히는 KBS<각시탈>의 성공도 KBS가 허영만 화백의 동명소설 만화 판권을 얻기 위해 수년간 공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같은 ‘원작’ 드라마 붐은 검증된 원작으로 위험 부담을 덜어보자는 방송사의 ‘안전주의’에서 기인한다. 대중의 인기를 끈 원작을 둔 드라마는 방송 전부터 화제에 오르면서 힘들이지 않고 홍보효과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섭 CP는 “드라마의 산업화는 심해지는 데 시장성을 고려안할 수 없는 환경에서 대중들에게 검증받은 작품들을 하는 게 방송사 입장에서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적 분쟁을 대비해 판권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 방송 전후에 불거지는 표절시비에 대응하기 위한 ‘보험용’이다. 이 때문에 드라마에 원작의 인물 설정 정도만 차용하더라도 판권을 구입하는 분위기다.

▲ MBC <7급 공무원> ⓒMBC
박홍균 <7급 공무원> CP는 “<7급 공무원>은 동명 영화를 집필한 천성일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판권 구입을 하지 않았지만, 저작권법이 엄격해지고 있고 드라마 표절 시비가 빈번하기 때문에 판권을 미리 구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이런 ‘안전주의’는 결과적으로 순수 창작 극본이 설 자리를 좁게 만든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관계자는 “소위 ‘쓸 만한 작가’가 없다고 하는데 실제 활동하는 작가가 500명 정도 된다”며 “하지만 한번 실패한 신인 작가는 작품을 맡기지 않으려고 하고, 시청률이 보장되는 스타작가나 원작에 기대려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햇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도 창작 극본에 대한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편성을 따내기 위한 안전장치로 원작을 확보한다면 갈수록 드라마의 질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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