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좌담:늘어난 제작업무에 따른 PD-작가의 역할 재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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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고 존중하는 풍토 절실 … 정당한 보수·명예 찾기에 PD도 공동보조 맞춰야

방송프로그램 제작에서 PD와 작가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다. 그러나 방송환경이 전반적으로 복잡·다변화되면서 두 직종 사이의 업무 영역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문제제기다. 특히 교양과 다큐 장르 프로그램들에서 이로 인한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에 대한 원인분석과 대안마련의 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고, 방송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PD와 작가의 역할 재정립이나 작가의 위상 제고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는 이 문제에 대한 첫 공론의 장으로 교양·다큐 장르 PD와 작가들의 좌담을 난상토론 형식으로 열었다. <편집자주> 토론자김주영 13년차 <병원24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집필권기경 12년차 <역사스페셜> <일요스페셜> 등 집필송미현 15년차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집필최경 13년차 <그것이 알고 싶다> <10대의 반란> 등 집필황용호 KBS 기획제작국 차장박상일 MBC 시사제작국 차장신용환 SBS 신용환 교양국 차장 류현위 EBS 어린이팀 팀장 일시 : 2002년 3월6일(수) 12시주최 :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작가협회장기랑 : 방송프로그램 제작의 핵심은 PD와 작가들이다. 방송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두 직종의 일하는 방식이나 서로에게 거는 기대치, 직종에 대한 이해 등도 같이 달라지고 있다. 공개된 장에서 이를 논의하고 확인하자는 취지로 오늘 좌담을 마련했다. 과거에 비해 달라진 역할이 무엇인지부터 얘기해보면 좋겠다. 김주영 : PD와 작가의 역할 변화로 인한 부정적인 문제의식은 PD보다 작가들이 더 많이 갖고 있을 것 같다. 현재 작가들은 스스로가 무슨 일을 하는 집단인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 작가들의 역할은 늘어나 제작 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나, 늘어난 일을 정작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인지 아닌지에 대한 혼란이다.황용호 :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김주영 : 일부 다큐프로를 제외한 정규프로의 경우 제작 전 과정에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얼마전 작가협회에서 제작 전 과정을 20여 항목으로 나눠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 데 프로그램 기획회의 참석, 회의 내용 정리, 아이템 리스트 작성, 촬영시 기본 구성안 작성, 홍보문안 작성 등 거의 모든 과정에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모 방송사의 시사고발프로의 경우 작가들이 몰래인터뷰나 심지어 잠입취재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문제는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업무 즉 편집구성안이나 자막·촬영콘티 작성, 촬영 후 테이프 TC(Time Code) 작성 등까지 작가들의 업무영역이 타의에 의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랑 : 여기에 대해 각사 상황은 어떻고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지에 대해 얘기해보자 황용호 : 얘기한 것과는 달리 프로그램 별로 차이가 크다. <일요스페셜> 등 많은 프로에서 아이템이 선정된 후 작가가 참여하고, 최종편집은 PD와 CP가 주로 하고 있어 설문조사 결과와는 차이가 있다.작가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에 비해 PD들이 가지는 불만은 다르다. 예전과 비해 작가들에게서 동료의식을 느끼기가 어렵고, 실력 있는 작가와 일을 하고 싶지만 이런 작가들이 방송사를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신용환 : 설문조사에서 지적된 내용이 SBS에는 많은 부분 해당되는 것 같다. PD인원이 적은 SBS의 특성상 초반에는 아침프로에서부터 작가 의존도가 높았는데 이제는 거의 전 프로그램으로 확산됐다. 90년대 초반까지는 TC작성까지는 작가 몫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할이 늘어나 촬영콘티 작성까지 하는 등 다른 방송사와는 다른 작가시스템이 자리잡았다. 조연출이 부족하고 CP제도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 PD들이 주로 의논하고 고민을 나누는 대상이 작가가 된 셈이다. 그래서 편집을 끝낼 때까지 조연출과 보내는 시간보다 작가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박상일 : 환경의 변화가 큰 것 같다. IMF사태를 겪으며 방송사 인력이 확연히 줄었다. 현재 MBC 교양쪽에 공채를 통해 들어온 AD는 5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부족한 인력은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교체가 심한 외부인력에 동료의식을 느낀다든지 일을 가르치고 상의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외부인력은 늘어나는데 상황은 이렇다보니 자연히 늘 얘기하고 같이 일하는 시간이 많은 작가에게 AD 역할까지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권기경 : 그럼에도 PD나 AD가 해야 하는 연출의 영역이 작가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보수는 예전과 그대로이면서 일의 양은 늘다보니 체감하는 부담은 더 늘어난다. 경력 있는 작가들이 방송사는 떠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주영 : KBS 일을 주로 하다 몇 년 전부터 MBC나 SBS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방송사들의 공통적인 경향으로 작가의 역할이 늘고 있고, 이것이 다른 방송사로 파급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는 3사 작가를 대상으로 했는데 TC넘버를 적고 있는 작가가 전체 설문응답 작가 중 40%, 가편집을 같이 하는 작가가 40% 등으로 3사에서 공통적으로 예전에 안 하던 일을 작가가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경험이 적은 일부 젊은 PD에게 주로 해당되겠지만 작가들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보니 PD 스스로의 연출능력에 대한 우려도 작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장기랑 : 소속 방송사나 제작 장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작가 역할이 늘고 있는 것이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인데.류현위 : 지적대로 라면 PD의 역할이 줄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PD와 작가와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가는 전체적인 일의 양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 방송환경의 변화로 봐야 할 것 같다. 시청자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고, 프로그램의 국제경쟁력까지 염두에 두고 제작해야 하는 등 프로그램 포장에 쏟아야하는 PD들의 역할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과거 교양프로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는 낮은 수준이어서 PD가 연출을 하면서 원고까지 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교양에 오락프로의 재미를 가미한다든지 다큐의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드라마적 요소를 첨가해야 하는 등 일의 부피가 엄청나게 커졌다. 따라서 작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이런 관점에서도 봐야 한다. 황용호 : 자료조사를 하는 작가가 자료조사 외에 홍보문안도 써보는 등 경험을 쌓는 것이 앞으로 메인 작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김주영 :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인정한다. 보통 작가라고 하면 자료조사원이나 MBC·EBS만 있는 보조작가를 제외하고 한 꼭지라도 맡아 원고를 쓰는 이들을 가르킨다. 이번 설문조사도 이들만을 대상으로 했다. 설문결과에서 완전히 작가로 자리를 잡아도 잡다한 업무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송사내 인력부족과 환경변화로 인해 늘어난 업무가 작가들에게만 전가돼서는 안 된다. 장기랑 : PD와 작가의 업무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는 모두 동의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 맞게 요구되는 게 있을 것 같다.김주영 : 역할 증가로 정작 작가 본연의 역할이 소홀해지는 일까지 빚어지고 있다. PD는 최고의 화면을 만들어내고 잡아야 하는데 작가가 TC 넘버를 적고 최종편집까지 같이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 이로 인해 원고 쓰기에 지장을 받고 있다.류현위 : 작가와 PD가 편집 등을 같이하는 것을 작가 업무가 늘어난다는 측면보다는, 작가에게는 현장감 있는 원고를 기대할 수 있고 또한 두 사람의 고민이 합쳐져 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점 등에서 순기능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작업을 작가에게 미루는 것이라면 문제라고 본다. 송미현 : 예전에는 촬영본을 PD와 작가가 같이 본다든지, 편집을 같이 하는 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이었는데 반해 요즘은 이런 의미라기보다 양쪽이 일에 쫓기면서 어느 한쪽이 일을 미루는 것으로도 보인다.권기경 : 작가들이 모이면 “옛날 PD와 요즘 PD는 다르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전반적으로 제작 업무량이 늘어났다는 것과는 다르게 작가에게 일을 미루는 경향이 요즘 PD들에게서 자주 보인다는 지적이다.송미현 : PD들이 섭외나 출연자 관리 등 작가와 같이해야 하는 부분까지 점차 포기하고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최경 : KBS에서 SBS로 옮기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 중 대표적인 것이 TC를 붙이는 것이었다. 지금은 <인간극장>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 TC를 붙이는 모습을 그쪽 PD가 보고 이해를 못했다. 늦은 시간까지 방송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나 편집실에서 더 오래 있는 사람들이 PD보다는 작가였고, 심지어 모닝콜을 해줘야 한다든지 카메라배정 연락을 취해야 하는 것도 작가 몫인 경우까지 있다. 작가에 입문한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잡무를 맡아 나중에는 문제의식 없이 당연한 일로 느끼는 게 안타깝다.송미현 : 작가 일이 과중해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면에는 이로 인해 2∼3년차 PD들이 자리를 못잡고 있고, 작가들 사이에서도 어디까지가 작가 일인가에 대한 혼란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류현위 : 방송사에서 작가라고 부르는 범위에는 자료조사나 섭외 등의 영역을 담당하는 사람까지 모두 포함된다. 작가 본연의 업무인 원고를 쓰는 사람과 다른 업무를 보는 사람은 구분돼야 할 것 같다. 그러나 EBS는 작가와 보조작가만 둘 수 있게 돼 있어 작가라고 불리면서도 많은 잡무를 처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황용호 : 작가 일이 다양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이 늘었다고 보기에는 의문이 남는다. PD들내에서도 신입 PD들의 연출력에 대한 우려는 많다. 프로그램 구성이나 촬영 구성에 대한 훈련이 부족해, 프로그램을 혼자 맡았을 때 선배 PD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작가 분들이 한 얘기와는 조금 다르게 보고 있다. PD들은 방송사 외주제작프로 편성비율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이중 상당수가 신입 PD가 연출 훈련을 할 수 있는 프로들이 외주로 나가고 있어 더욱 경험을 쌓을 공간이 부족하다는데서 찾고 있다. 김수영 : 일이 늘었다는 것은 예전에 하지 않았던 업무가 추가되면서 본연의 작가 일을 하기가 두세배 이상 어려워졌다는 얘기다.그리고 일이 늘어난 것을 수련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 않냐는 생각에도 동의한다. 작가들이 배우기 위해 원해서 TC를 붙이는 등의 일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이만큼 정당한 대우나 명예가 돌아오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장기랑 : 방송환경의 변화에 따른 PD와 작가의 역할 재정립에 대해서는 오늘 첫 논의를 가졌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이후 좀더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라며, 좌담을 정리하자면.신용환 : PD와 작가는 오랜 시간 같이 작업을 해와 가족 이상으로 친밀한 관계다. 그러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IMF사태가 터진 후 방송사의 제작비 삭감 조치로 가장 먼저 줄어든 것이 작가 원고료였다. 비정규직인 작가의 특성상 전혀 조직의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작가들이 느낀 상대적인 박탈감은 상당했다. 이 상태가 지금까지 지속돼오면서 PD와의 사이도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들에게 이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라고 해서 풀릴 문제도 아니다.PD들이 작가들의 전위부대로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PD와 작가 사이에서 여러 불만들이 나왔지만 이에 앞서 근본적인 믄제는 PD와 작가 두 직종 사이에 갈수록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풍토가 없어진다는 데 있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PD가 작가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고 작가 권익보호에 가장 먼저 나서야 한다고 본다. 우선 PD와 작가는 아주 친밀한 사이지만 금전적인 문제로 인한 불편한 관계가 형성돼 있다. 10년차가 넘었는데도 월 100만원도 못 버는 경우도 있다. 회사는 규정과 형평성을 이유로 PD 개인에게 작가의 원고료를 가능한 낮은 선에서 정할 것을 떠넘기고 있다. 이렇다보니 작가와 PD 사이는 결코 가까워질 수가 없다. PD들도 작가 원고료를 현실화시키려는 싸움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작가와 회사의 구도가 아니라 제작진과 회사의 싸움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그리고 프로그램과 관련해 상을 받을 때 지금까지 PD와 CP 정도만 언급됐지 작가는 뒷전이었다. 이런 부분도 작가의 명예 측면에서 재고돼야 한다고 본다. 류현위 : 늘어난 방송제작 업무를 맡을 새로운 인력이 분명 늘어나야 하겠지만, PD와 작가의 역할과 업무가 달라졌고 늘어났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작가의 대우문제에 대해서는 회사 차원에서 인센티브제 도입 등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다. 권기경 : 보수 등 열악한 여건이 우선 개선돼야 하고, PD와 작가가 동반자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서로 입장을 바꿔 서로가 가지는 문제의식을 공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박상일 : PD들이 작가들의 입장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보수문제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PD들 내에서도 좋은 작가와 함께 제작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사측에 건의한 바도 있다. 10년전에는 제작비 청구서에 대해 PD들의 권한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국장이 관리하기 때문에 보수지급에 대한 융통성이 전혀 없어졌다. 김주영 : 잘못된 작가시스템이 관행화돼 오고 있는 것이 문제다. 단시일내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더라도 PD와 작가가 공동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주위의 작은 것부터 시정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리 = 이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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