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는 사회가 키운 ‘복수의 화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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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는 사회가 키운 ‘복수의 화신들’
SBS ‘야왕’ MBC ‘백년의 유산’ 등 복수극 인기 시대상 반영 … 대리만족 통해 쾌감 얻어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3.03.04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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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끝모를 나락에 떨어뜨린 뒤에야 드라마는 시작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존재가 파멸하는 순간까지 주인공의 복수는 멈추지 않는다. “당신, 부셔버릴거야”라고 울부짖은 SBS <청춘의 덫>의 윤희(심은하)가, 차라리 “지옥에 가겠다”며 복수심을 태운 SBS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장서희)가 그랬다.

요즘 안방극장에선 윤희와 은재의 뒤를 잇는 ‘복수의 화신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배신, 감금, 성폭행 등 하나같이 극한의 아픔을 겪은 주인공이 펼치는 처절한 복수극에 시청자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SBS <야왕>에서 하류(권상우)는 사랑했던 다해(수애)가 성공을 위해 자신과 딸까지 버리자 복수를 결심한다. 다해의 음모로 살인죄를 뒤집어쓴 하류가 감옥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서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시청률도 동반상승하고 있다.

▲ SBS <야왕> ⓒSBS
MBC <백년의 유산>에는 며느리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는 악행을 서슴지 않은 시어머니가 등장한다. 초반 자극적인 소재에 ‘막장’ 드라마라는 혹평을 받긴했지만 시청률은 20%를 넘나들며 주말극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MBC <백년의 유산>과 경쟁하고 있는 SBS <돈의 화신>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풍자를 극의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 극의 긴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이차돈(강지환)의 복수에 대한 기대감이다. JTBC <가시꽃>의 세미(장신영)는 <아내의 유혹>의 은재처럼 복수를 위해 7년 만에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안방극장에 다시 복수극이 범람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전부터 ‘복수’ 소재는 드라마의 극성을 강조한 장치로 자주 쓰였다. 특히 20부작을 넘는 중편드라마에선 드라마의 긴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야왕>과 <돈의 화신>은 24부작, <백년의 유산>은 50부작으로 모두 중편 드라마에 속한다.

이현직 <야왕> EP는 “16부작 미니시리즈에서는 캐릭터의 힘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지만 20부작이 넘는 드라마에서는 강한 이야기가 필수적”이라며 “지나치게 막장으로 흐르면 시청자들에게 버림받겠지만 적절한 극적인 장치는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경제적인 불안과 스트레스가 높아진 사회 분위기와도 밀접하다. 이은규 한국드라마PD협회장은 “빈부격차 등의 사회 갈등이 심해지는 시기엔 밝고 명랑하고 로맨틱코미디보다는 사회 분위기를 담은 장르가 인기를 끌었다”며 “암울한 시대엔 복수극에 나오는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해 대리만족을 얻거나 ‘악인’과 다르다는 점에서 위로를 받으려는 경향이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복수극의 인기와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은 ‘힐링 열풍’이 일맥상통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방극장에선 최근 종영한 KBS <내 딸 서영이>가 ‘착한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으며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고, 브라운관에선 눈물샘을 자극한 <7번방의 선물>이 천만관객을 돌파했다. 이와 결은 다르지만 시청자들이 복수를 감행하는 주인공을 통해 억눌린 욕망을 표출하면서 쾌감과 위안을 받는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복수극에선 한 개인과 주인공을 괴롭히는 세계의 대결 구도가 명확하다”며 “시청자들은 착한 주인공이 거대한 세계와 싸우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믿음과 신념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욕망을 투영하는데, 지난 18대 대선 이후 불었던 영화 <레미제라블>열풍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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