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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풍자’까지 이색 라디오 프로그램 코너

청취자들은 더 이상 주파수를 맞춰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 음악은 음원으로 내려 받아 손쉽게 들을 수 있고,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으면 24시간 쉬지 않고 누군가는 지저귀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찾으면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말한다. 라디오는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말이다.

부산한 아침부터 하루의 짐을 비로소 벗어 던지는 밤까지 우리네 소소한 일상에 대한 관심은 물론 시대의 변화까지 읽어내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는 매체가 바로 라디오인 까닭이다.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청취자들의 곁을 지키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코너들을 소개해본다.

# 위로가 필요할 때

매일같이 서로 다른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어른들과 학생들에게 라디오는 스튜디오 안팎에서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MBC 라디오 <세상을 여는 아침 강다솜입니다>의 ‘세아침 출근 택시’(수요일)는 스튜디오 밖 몸도 마음도 피곤한 청취자들의 집 앞으로 찾아가 편안하게 출근시켜 주는 코너다.

일터까지 청취자를 실어주는 일. 얼핏 소소하지만 이른 아침 편안한 출근길을 보장받은 청취자들의 감격은 남다르다. 경기도 의왕에서 서울 갈월동까지 매일 김밥 장사를 위해 출근하는 한 모녀는 ‘출근 택시’를 통해 처음으로 택시를 타 봤다고 한다.

버스를 네 번 갈아타야 겨우 출근할 수 있다는 사연의 주인공은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하고 싶지만 미래가 불안한 비정규직이라 매일 전쟁 같은 출퇴근을 하고 있다며 모처럼의 여유 있는 출근길에 함박웃음을 짓는다.

‘출근 택시’가 어른들의 힘겨운 일상을 위한 라디오였다면 EBS 라디오 <경청>은 아이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진다. 학교폭력, 왕따, 자살 등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 단계에 다다랐지만 청소년들의 속내를 들어주고 달래줄 곳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에 청소년 고민상담 프로그램인 <경청>은 만화가, 정신과 전문의, 문학박사, 재즈피아니스트, 기타리스트 등으로 구성된 ‘경청지기’가 30분 이상 한 명의 청취자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이자 전직 고등학교 윤리교사인 권구익 씨도 경청지기로 참여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경청지기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인다.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이 무섭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여고생부터 집안 사정으로 원치 않는 학교에 반강제적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학생까지, <경청>은 청소년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털어놓는 자리를,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을 이해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MBC FM4U <세상을 여는 아침 강다솜입니다>,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KBS Cool FM <홍진경의 2시>, EBS FM <경청>.
#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

최근 TV의 인기 키워드는 ‘동심’이다.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는 무한 이기주의 어른들의 세상을 순수함과 예상치 못한 엉뚱 행동으로 무장한 동심이 노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라디오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아이들의 기발하고 독특한 상상력과 동심을 통해 청취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었다.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어느 집에나 한 명씩은 꼭 있는 아이들의 귀여운 활약상을 소개하는 ‘짱구는 못말려’ 코너가 방송되고 있다.

아이들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말로 어른들을 놀라게 한다. ‘짱구에 못말려’에 소개된 한 사연에서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말로 청취자들에게 감동을 준 경우가 있다. 6살 난 아들에게 엄마가 몇 번째로 사랑받으면 좋겠냐고 묻자 아들은 자신을 맨 끝에 사랑해도 된다고 말했다. 아들은 “어차피 끝에 사랑해도 똑같이 사랑하는 거”라는 기특한 대답을 내놨다.

아이들의 소소하고 천진난만한 일상을 소개해주는 KBS 라디오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의 ‘귀욤 열매 드세요’(금요일)에서도 아이들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한밤중에 창문을 닦는다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일이지만 아이들에겐 하나의 발견이 된다. 한 청취자가 보내온 사연 속 어린 조카는 창문을 닦으며 더러워진 걸레에 ‘깜깜한 밤’이 묻었다고 이야기한다. 어른들에게는 단지 더러운 걸레지만 아이에게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다.

# 웃음으로 시대를 읽다

언제부터인가 TV에선 시사 풍자를 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라디오에서는 여전히 사회와 정치에 대한 콩트를 통해 청취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TV에서 정치 풍자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던 코미디언들은 라디오에서도 여전히 코너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10여 년 동안 최고의 풍자 프로그램 위치를 지키고 있는 MBC 라디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인기 코너 ‘대충 토론’은 우리 사회의 이슈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살펴보되 따끔한 비판을 잊지 않는다.

최양락씨와 함께 ‘대충 토론’을 진행했던 성대모사의 달인 코미디언 배칠수, 전영미씨는 현재 tbs 교통방송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의 DJ로 시사콩트 ‘9595 반상회’를 선보이고 있다.

‘대충 토론’의 캐릭터들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9595 반상회’는 ‘직설화법’으로 강도 높은 은유와 풍자를 쏟아낸다. ‘반상회’의 주인공은 YS(김영삼), MB(이명박), 박그네(박근혜), 박시장(박원순)으로 DJ들은 대통령, 장관, 판검사, 국회의원, 재벌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더욱 신랄하게 비판한다. 실명 거론도 주저하지 않는다.

# 궁금해? 라디오에 물어봐

간밤에 꾼 꿈의 의미부터 남녀관계에서 발생한 다툼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등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하긴 하지만 전문가를 찾기엔 애매해 포털사이트를 검색하거나 인터넷 카페에 질문을 남겨본 일이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에겐 소소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일, 작은 호기심들도 라디오에서 풀 수 있다.

본격 꿈 심리탐구를 표방하는 MBC 라디오 <굿모닝 FM, 서현진입니다>의 ‘당신의 꿈은 안녕하십니까’는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청취자들의 꿈을 콩트로 재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철 원장이 해결사로 등장해 꿈을 해석해 준다.

분명 법적인 해석이 필요하지만 전문가를 찾아가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데이트 하면서 같이 쓴 할부금을 헤어졌을 때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는 어디에 물어야할지 애매하다. 이런 청취자들을 위해 KBS 라디오 <홍진경의 2시>에서는 백성문 변호사와 한석준·김승휘 아나운서와 함께 수요일마다 ‘법무법인 홍시’를 연다.

한 상가에 같은 업종이 두 곳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나가 해외여행 보내준다고 한 일과 관련한 문의, 부모님 명절 용돈문제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사연들이 올라오면 ‘법무법인 홍시’는 법적으로 궁금증을 해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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