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는 진화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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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는 진화하는가
[오정호 PD의 되감기] 오정호 EBS PD
  • 오정호 EBS PD
  • 승인 2013.04.05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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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퉁이 가게>
<모퉁이 가게(The Shop around the Corner)> (1940년)
감독: 에른스트 루비치 (Ernst Lubitsch)

지금부터 내가 말하려는 이 영화는 MGM의 포효하는 사자가 요즘과는 달리 좀 귀엽게 보이고, 탄산수소나트륨이 소화제의 이름으로 쓰이고,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50대 남성은 베르테르처럼 총부리를 자신의 머리에 대던 시절의 이야기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주인공 알프레드 크랄릭(제임스 스튜어트)는 신문 광고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한다. “모던걸이 문화적 주제로 서신 교류를 하고 싶음. 익명의 지적이고 젊은 남성일 것. 우리가 아무리 일상생활에 찌들어도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음.”

작년 작고한 노라 에프론 감독의 1998년 작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이 개봉되었을 당시 이 영화 에른스트 루비치의 <모퉁이 가게(The Shop around the Corner)>와 비교한 글들이 넘쳐났다. 이메일(e-mail)이라는 생소한 소통 방식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이견이 분분했다. 이 무렵 장윤현 감독의 <접속> (1997) 역시 이러한 새로운 소통 기술이 바꾸어 놓는 인간관계를 조망했다.

알프레드(제임스 스튜어트)와 클라라(마가렛 설리번)는 같은 가게에 근무하지만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알프레드는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매사에 짓궂다. 클라라 역시 눈치가 빠르고 가식적이며 9년 차 베테랑 사원인 알프레드의 의견에 맞서는 당돌한 신참내기다. 관객들은 모두 지켜본다. 하지만 정작 이 두 주인공은 자신들이 연서의 느낌으로 서로 문화적 주제를 나누는 펜팔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겉도는 관계. 한 사람만 모른다면 애처로웠을 것이나 두 사람 다 알아채지 때문에 로맨틱 코미디가 된다.

편지, 이메일, 그리고 트윗

1940년대, 우체국 사서함은 편지를 주고받는 개인의 익명성을 보호받는 최고의 보안 장치이자 로맨틱한 오르골 상자 같은 것이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손을 넣어 그 안을 더듬는다. 봉투가 만져지기도 하고 그냥 차가운 바닥이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희열과 실망이 교차하는 어떤 순간.

하지만 이메일이 등장하면서 인간관계는 손의 온도보다는 손가락의 동작으로 규격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클릭한다. 열고 읽는다. 답하거나 버린다. 예전 편지(letter)는 “누구에게 편지를 보내다(send a letter to somebody)”라는 문장에 들어가는 소중한 목적어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메일의 출현 이후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E-mail me(이메일 해)” 그냥 명사에서 동사로 바뀐 셈이다.

이제는 어떠한가. 트윗(twit)은 목적어나 받는 대상이 사라진 묘한 동사다. 어떤 공간만이 주어진 모호한 소통 행위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자발적으로 생중계하기도 한다. 이미지를 내보내고 좋은 글들은 퍼 담는다. 전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새로운 중요한 정보로 재인식한다.

“제가 편지에서 너무 떠벌린 것 같아요.” 클라라를 직접 만나보라고 제임스의 동료 직원은 부추기지만 제임스는 망설인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연서는 연서를 끼적이는 이들의 실제 삶보다 훨씬 더 정돈되어 있고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 가지지 못한 어떤 대상을 향한 욕망에 대해 아주 능청스럽고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비루하나 글은 찬란하다.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볼 때 보이는 세상 같은 것이다. 멀리 있는 것은 가깝게 보이고, 정작 바로 앞에 있는 나의 것들은 마치 남의 것처럼 느껴진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이렇게 나를 타자화 시키면서 동시에 관계를 무한정 확장한다.

지도의 확장이 곧 관계의 진화일까

에세이 <과학에서의 엄밀함에 대해>에서 보르헤스가 언급했던 어떤 제국의 지도. 지도를 점점 정교화 하였더니 결국 그 나라의 땅덩어리 자체를 덮어 버릴 만큼 커져 버렸다는 이야기. 모든 사람이 자신 주변의 풍경들을 이미지화하여 지도에 올리는 이 새로운 시대. 우리의 지도는 예전보다 훨씬 촘촘해지고 완벽해진다.

▲ 오정호 EBS PD·EBS 다큐영화제 사무부국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선택적인 행위이며 새로운 타인들은 우리만의 지도 위에 어떻게 표기해야 할 지 모호한 ‘섬’들이다. 지도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지만, 지도 속 섬들을 찾아가는 항해는 여전히 수고롭고 때로는 위험한 일이다.

현대 소통 미디어가 이루어내는 인간관계의 확장이 결국 진화로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관계에는 중독이 되지만, 정작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외롭다. 지금도 어디선가 우리들은 홀로 우두커니 모바일 스크린을 연신 긁어내리고 있을 것이다. 배를 잃어버린 일등 항해사가 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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