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송신 분쟁 봉합했지만 ‘시한폭탄’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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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박근혜 새 정부, 의무재송신 채널 확대 움직임

지상파 3사와 재송신 대가 협상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였던 티브로드와 현대HCN이 지난 8일과 9일 연달아 가입자당 요금(CPS) 280원에 대가 협상을 타결하면서 재송신을 둘러싼 양사업자간 갈등이 파국은 면했다. 이에 따라 ‘블랙아웃’ 사태 재발까지 점쳐졌던 갈등은 봉합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유료방송측은 대가 협상과 별개로 재송신 제도 개선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이해당사자인 유료방송 측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에 정치권과 정부도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지상파 재송신 문제는 ‘잠재적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다.

■7년 묵은 분쟁= 재송신 분쟁은 지난 2007년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 측에서 재송신 대가 산정 문제의 부당성을 제기한 이래, 현재까지 협상 결렬과 소송을 반복하며 계속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지상파와 유료방송간 갈등은 지상파의 저작권(동시중계방송권)과 대가 지불의 당위성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에 유료방송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재송신 협상을 매듭짓지 못한 티브로드와 현대HCN은 지상파 방송 송출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오는 13일부터 각 지상파 방송사에 하루 3000만원씩 간접강제금을 지불해야 했다.

곧바로 케이블TV와 위성방송, IPTV 사업자들도 ‘플랫폼사업자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동대책위)을 꾸리고 의무재송신 대상 확대와 합리적인 재송신 대가 산정 기준 마련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촉구했다.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 양상으로 보였던 분쟁은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이 의무재송신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방송법·IPTV법안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불이 붙었다. 법안에서 쟁점이 되는 내용은 지상파 의무재송신 범위를 현행 KBS 1TV와 EBS에서 KBS 2TV, MBC까지 확대하도록 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한 유료방송 관계자는 “지상파가 콘텐츠를 제공하는 PP(채널)화 돼 가고 있는 만큼, 공영방송은 의무재송신으로 규정하는 게 맞다”며 “협상 때마다 마찰을 겪고 있는 재송신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의무재송신 확대에 반대해온 지상파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콘텐츠 기업으로 변모하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막는 법”이라며 “지상파 방송사들의 콘텐츠 생산 기반을 무너뜨려 공멸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 ⓒ설인호 화백
■미래부 방송정책 방향타= 재송신 제도 개선 문제는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 수장이 정해지기 전부터 방송 이슈로 부상했다. 이 때문에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조직을 정비한 이후 첫 번째로 다뤄야 할 정책으로 꼽히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갈등을 중재해 방손 산업의 균형 발전을 유도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첫 시험대인 셈이다. 하지만 논의 시작 전부터 방송의 공공성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한 관계자는 “재송신 제도를 개선하려면 방송 산업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검토하는 게 먼저”라며 “미래부로 유료방송 진흥정책을 이관하면서 우려했던 유료방송만 살찌우겠다는 의도가 벌써부터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인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데 핵심 재료인 문화 콘텐츠 생산의 중요성도 간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새정부의 정책 기조를 놓고 보면 재송신 제도 개선 역시 유료방송의 주장만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며 “방송을 산업의 논리로 바라보면 투자를 탄력적으로 할 수 있는 곳에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문기 미래부 장관 후보자는 가장 먼저 유료방송 시장의 규제 완화 방침을 밝혔다. 케이블TV 사업자의 경우 특정 기업 하나가 전체 케이블TV 가입자의 3분의 1을 초과하거나 전체 케이블 방송구역(77개)의 3분의 1로 제한하고 있는 규정을 없애고, 전체 유료방송 가입 가구 수를 기준으로 3분의 1이하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다. KT가 요구하고 있는 ‘접시 없는 위성방송’인 DCS도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방통위가 검토했다가 특혜와 위법 논란으로 유보했던 것들이다.

의무재송신 대상 확대도 결국 수혜를 받는 쪽은 유료방송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유진투자증권은 남경필 의원 법안대로 MBC까지 의무재송신 채널에 포함될 경우, 스카이라이프와 SK브로드밴드의 올해 영업이익이 각각 14%, 9.3%까지 상승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전망한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의무재송신 확대를 내용으로 한 이번 법안의 입법 여부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남경필 의원은 법 개정 의지를 밝히고 있다. 남경필 의원실 관계자는 “애초 4월 임시 국회 내 처리를 목표로 했지만 지상파 쪽의 반발이 크고 살펴봐야 할 쟁점이 많이 시간을 두고 논의할 계획”이라며 “논의 과정에서 법안의 일부 수정은 있겠지만 관련 부처와 협의를 마친 만큼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신료 인상·직접수신율 얽힌 난제= 지상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재송신 제도 개선에는 일단 시동이 걸린 상태다. 하지만 막상 논의에 들어가면 재송신 제도는 실타래처럼 현안들이 얽혀 있어 진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KBS 수신료 인상과 지상파 직접수신율 확대, MBC 민영화 등이 의무재전송 확대와 맞물린 현안들이다.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규정 미비와 대가 산정 기준 등 재송신 쟁점만 해도 의견이 분분한데 묵혀 뒀던 방송 현안까지 확장되면 실마리를 찾는 것은 더욱 복잡해진다.

수신료 인상 문제는 의무재송신 대상 확대의 종속 변수로 작용한다. 지금까지 지상파가 유료방송으로부터 받은 비용을 주로 프로그램 제작에 써왔기 때문에 의무재송신 확대는 재원 확보 방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언론학자와 언론단체쪽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KBS 2TV까지 의무재송신 확대 주장과 수신료 인상 재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는 KBS의 내부 여건이 맞물려 정치적인 계산이 끼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재송신 제도 논의 과정에서 수신료를 우회적으로 인상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전망이 많다. 채수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KBS 2TV를 의무재송신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전제로 수신료를 인상하는 방안은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사회적인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시청자들은 불편부당한 공영방송을 전국 곳곳에 공급해주는 조건으로 수신료를 내는데 이를 유료방송을 통해 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KBS 한 관계자도 사견임을 전제로 “의무재송신에 포함되면 콘텐츠 수입에 당장 타격을 입을 텐데, 수신료 인상에 대한 기대만으로 확대에 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일방 사업자의 의무재송신 확대 요구가 수신료를 인상 논의로 확대되는 것도 시청자 권익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저조한 지상파 직접수신율도 재송신 제도 개선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문제다.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 방송을 유료방송에 기대지 않고 시청자들이 볼 수 있도록 직접수신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통위의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상파 직접 수신율은 7.9%에 불과하다.

김서중 교수는 “지상파가 갖는 공공적 가치를 봤을 때 지상파 콘텐츠는 누구나 보편가능하게 접근이 가능해야 하고, 콘텐츠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지상파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결이 있지만 상대편이 있는 한 분쟁은 지속될텐데 지상파도 맡은 역할과 책무를 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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