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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정운현 국민TV 보도·편성 이사

평균 열흘에 한번 꼴로 올라오는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이하 이이제이)가 장안의 화제다. 이들이 신작을 올릴 때마다 조회수 수십만을 기록하며 팟캐스트 순위 1, 2위를 다툰다.

<이이제이>는 음식으로 치면 그야말로 ‘짬뽕’이다. 총선·대선 등 현실 정치 얘기서부터 깡패, 아랫도리 얘기 등 밤문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DJ(김대중)-YS(김영삼),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 신격호·김우중·두산그룹·대한전선 등 재벌, 그리고 약산 김원봉·여운형 등 역사인물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이 다양한 주제들을 커버하고 있는 사람들은 올해 38세 동갑내기인 건달(?) 셋이다. 셋 모두 역사학자와는 거리가 멀다. 식당으로 치자면 주방장격인 이작가(본명 이동형)는 모 지역에 소재한 대학의 신방과 출신으로 개인사업을 하다가 4년 전쯤부터 인터넷에 현대사 관련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글이 재미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현대사 관련 책을 한 권 낸 것이 계기가 돼 지금의 ‘이작가’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작가는 애초부터 싹(?)이 보였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는 책읽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동네 만화방에서 죽치고 살았는데 심지어는 시험 전날에도 그랬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시절 만화방에는 만화책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만화책 사이로 사회과학서적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그는 그걸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그 책들의 대다수는 근현대사 관련 역사책이었다. 이것이 그가 역사에 빠지고 또 글쟁이가 된 계기가 됐다.

나머지 두 사람 가운데 ‘이박사’는 실지로 박사(철학박사)다. 현재 모 명문대 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또 한 사람 ‘세작’은 학생시절 운동권 출신으로 현재는 자기사업을 하고 있는 평범한 30대다. 이들 둘 역시 ‘역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이런 ‘역사 문외한’ 셋이 모여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종횡무진으로 넘나들고 있는 모양이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이렇게 ‘역사’를 제 맘대로 갖고 노는 패거리를 여태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이 그저 공으로 역사얘기를 쏟아내는 것은 아니다. 지난 12일 공개된 ‘백의사 특집’(33회)은 이들의 ‘열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백의사’는 한동안 한국 정치사에서 야사로 전해오던 얘기였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에 미국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난 우익 테러집단이다. <이이제이>는 기자나 연구자 못지않게 꼼꼼하게 자료를 챙기고, 이를 역할분담을 해서 해설과 함께 이작가의 걸쭉한 입담으로 버무려냈다.

한 마디로 <이이제이>는 골방에서 시시껄렁한 중늙은이 셋이 모여 더러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낄낄대며 내뱉는 잡담에 다름 아니다. 일정 부분은 근거가 있으면서도 또 일정 부분은 제멋대로 해석에 제맘대로 비판도 곁들이고 있다.

이들의 대화는 전혀 학술적이지 않다. 물론 이들은 학술적으로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냥 알아서 듣고 알아서 판단하라는 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조차 이를 열광하는 것은 대체 왜일까? 그것도 이 비주얼 시대에 HD급 TV도 아닌 맹탕 라디오인데도 말이다.

비결은 두 가지라고 본다. 눈높이와 팟캐스트. 우리는 그간 역사를 너무 엄숙하고 무겁게 배워왔다. 그러나 이들은 한 마디로 역사를 갖고 논다. 역사는 딱딱하고 지루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지난 얘기’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는 역사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 역사는 역사 선생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얘기들조차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이들이 진정한, 살아 있는 역사 선생이 아닐까.

▲ 정운현 국민TV 보도·편성 이사
나머지 하나 팟캐스트. 이들은 팟캐스트가 없었다면 세상에 명함도 내밀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가수 싸이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를 석권했듯이 이들은 팟캐스트라는 무대가 있었기에 세상 속으로 나올 수 있었다.

냉엄한 승부의 세계만이 존재하는 팟캐스트에는 ‘역사와 전통’이 통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맞짱’을 떠서 이기는 자가 바로 승자가 된다. 강호에는 이름 없는 고수가 쌔고 쌨다. 바야흐로 ‘팟캐스트 전성시대’를 맞아 제2, 제3의 <이이제이> 출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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