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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싸우는지 질문하는 언론이 필요하다”

[인터뷰]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전 지부장 최영주 기자l승인2013.04.30 17: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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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 2007년 12월 21일 시작한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이하 재능교육지부)의 싸움이 벌써 1958일(30일 기준)을 지나고 있다. 2000일 가까이 싸움을 이어오는 동안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복직, 노조 탄압에 대한 사과 등의 항목이 추가됐다.

재능교육지부의 싸움은 시작부터 다른 사업장과 달랐다. 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직’ 신분의 학습지 교사들은 ‘노동자’라는 이름을 얻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고, 지금은 전국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대표하게 됐다. 학습지교사, 화물운송업자, 퀵서비스 종사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법적으로 위임계약이나 도급계약으로 생활하는 개인사업자 내지는 위탁계약자로 되어 있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2000일 가까이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처한 모순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싸워왔지만, 여전히 이런 현실은 아는 사람만 안다. 재능교육 사태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간혹 찾는 언론들도 장기 투쟁을 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절한 ‘사연’에만 관심을 뒀기 때문이다.

때문에 <PD저널>은 2007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재능교육지부 싸움의 거의 모든 시간을 이끈 유명자 전 지부장을 지난 4월 29일 만나 그간의 얘기를 차근차근 들었다. 유 전 지부장은 현재도 서울 중구 재능교육 사옥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6개월 후면 6년인데,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예상 했으면 절대 못했겠죠. 임금제도를 개정하라는 요구로 시작했는데 말이죠. 회사가 해고와 단체협상 파기로 나왔지만, 우리가 항복을 안 하니 가압류까지 하더군요. 회사가 우리를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만들었어요.”

  ▲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전 지부장 ⓒPD저널  
▲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전 지부장 ⓒPD저널
6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서울 혜화동 본사 앞에서 설치했던 천막이 강제 철거된 것도 수십 번이고, 유 지부장을 포함한 조합원들의 단식과 삭발도 이어졌다. 지금도 두 명의 조합원들이 재능교육 본사가 마주 보이는 서울 혜화동 종탑에 올라 84일째(4월 30일 기준) 힘들고 위험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오랜 시간 외로운 싸움에 인이 박여 새삼 힘들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씩 무릎이 풀썩 꺾이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무엇을 위해 이 힘든 싸움을 벌이는 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다. 얼마 전 유 전 지부장을 찾은 대학생들도 언론에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900만명이라고 하는데,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300만명에 육박해요. 회사는 고용비는 적고 노사문제도 해결될 수 있는 매력적 고용형태라는 점에서 이런 식의 고용을 계속 확대할 거예요. 이 경우 우리는 쉽게 쓰고 버리는 노동의 하나로 소비될 수밖에 없죠. 이런 문제는 결국 남의 것이 아닌 우리의 문제인데, 이런 부분을 인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당위와 현실은 다르다. 유 전 지부장이 한 기자회견의 태반은 ‘기자 없는’ 기자회견이었다. 유 전 지부장은 “장기투쟁노동자들이 제일 목말라 하는 점이 투쟁이 기사화되고 언론에 나오는 것”이라며 “작은 언론사라도 인터뷰한 기사가 나오면 링크하고 공유하고 된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보도자료도 예전과 다르게 준비해야 했다. 기자회견장에 오지 않는 기자들을 위해 오지 않고도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써야 했다. 그나마도 보지 않고 지나칠까봐 제목 하나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그나마 관심을 갖고 보도하는 언론도 재능교육 사태가 일어나게 된 본질적인 문제보다 장기투쟁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다루는 내용이 많았다.

유 전 지부장은 “거리에 나와서 몇 년씩 천막농성을 하는 안쓰러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라는 식의 보도에 때로는 선정적 제목을 달고 나오기도 한다”며 “내용을 읽어보면 특수고용직 문제에 대해서도 다뤄지기도 하지만 문제의 실체는 없다”고 지적했다.

유 전 지부장은 노동자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유 전 지부장은 “우리는 특수고용직이라는 신분으로 싸우고 있지만 함께 응원하고 지지하는 분들도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특수고용직이 어떤 부분에서 문제인지 잘 모른다”며 “왜 저런 싸움을 하는지 근본적인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한 번만 던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능교육지부는 학습지 교사 최초이자 특수고용자 최초로 파업을 통해 1999년 노동부로부터 합법성을 인정받아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러나 지난 2005년 대법원에서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리자 회사는 현행법상 의무가 없다며 단체협상을 파기했다.
유 전 지부장은 “결국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의 싸움이 되면서 투쟁도 더욱 길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 11월 ‘학습지 교사도 노동조합법상 규정된 요건을 충족하는 한 근로자로 인정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법원은 노동법상 노동자는 인정했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지위는 인정하지 않아 12명의 조합원을 해고한 사측의 부당해고행위에 대해서는 노조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사측은 부당노동행위 건에 대해, 노조는 부당해고 건에 대해 항소를 한 상태다.

유 전 지부장은 “우리를 노동법 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근거가 근로기준법에도 충분히 부합할 수 있는데도 결과는 상충됐다”며 “만약 근로기준법 상 2심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으면 25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도 획기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학습지 교사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근원에는 아이들에게는 비정규직의 굴레를 물려줄 수 없다는 목표가 있다. 이를 위해 지금도 법적으로 ‘노동자’라는 정당성을 확보해 줄 서울행정법원의 2심 판결을 기다리며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너무 힘들었고 2000일이면 만 6년이에요.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 누리려고 거리에서 싸우나 할 수 있지만 싸움을 시작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아이들만큼은 절대로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싸울 겁니다.”


최영주 기자  yj719@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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