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침묵의 카르텔…있어도 없는 노동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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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 노동자 사망 등 ‘모른 체’…어쩌다 보도 땐 “불쌍한 사람들” 프레임

있지만 없는 사람들이 있다.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처우를 해달라고, 더 이상 우리를 쓰다 버리는 기계처럼 대하지 말라고 외치다 회사로부터 내쳐져 수백, 수천일의 시간을 거리에서, 땅보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보내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없다. 이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언론들이 무심히 흘려보내니, 생존에 바쁜 대중 역시 이들을 그저 나와 다른 ‘그들’로 치부하며 부지불식간 잊고 말았다. 이들 노동자들이 더욱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123주년 노동절(5월 1일)을 기준으로 재능교육노조 천막농성은 1959일에 접어들었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은 2282일, 쌍용자동차노조 철탑농성은 163일, 유성기업노조 투쟁은 715일이 됐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고, 싸움이 길어질수록 벼랑 끝으로 몰리는 노동자들은 고공농성과 죽음 등의 극단적인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다.

▲ 지난 4월 4일 덕수궁 앞 대한문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천막을 서울 중구청이 철거한 가운데 이를 막는 농성자를 경찰이 강제연행하고 있다. ⓒ노컷뉴스
■노동자 죽음에도 냉담한 언론=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5일 동안 여섯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답이 보이지 않는 노동 현실에 대한 체념이었다.

실제로 박 대통령 당선 이틀 뒤인 지난해 12월 21일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모씨는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못하겠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노조 활동을 하다 회사로부터 손해배상 요구를 받으며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민의 고통스런 삶을 이해한다던 박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었고 지상파 3사 메인뉴스도 함께 침묵으로 일관했다.

최씨의 죽음 하루 뒤인 12월 22일에는 하루 동안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노동자와 서울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활동가 등 두 명이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언론으로부터 이른바 ‘한류 스타’의 뮤직비디오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이날 MBC와 SBS 메인뉴스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조회수 10억을 달성했다고 자랑스레 소개했지만, 이들 노동자의 이름 석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노동의 문제에 언론들이 그나마 덜 야박한 순간도 있는데, 바로 정치인들의 입을 통할 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이어진 노동자들의 죽음에도 ‘모른 체’로 일관하던 지상파 방송 3사들은 지난 1월 4일 쌍용차 관련 소식을 일제히 전했는데, 이한구 새누리당 대표가 이날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을 방문해 해고자 복직 문제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후 쌍용차가 해고자가 아닌 무급 휴직자들의 복직을 결정하자 지상파 3사는 또 다시 해당 소식을 전했지만, 그뿐이었다. 국회의 쌍용차 국정조사 논의를 반대하는 회사 측의 입장을 전했을 뿐,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문제와 야당과 시민사회에서 요구하는 쌍용차 국정조사의 당위를 짚는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나마 언론에 언급되는 일조차 없는 노동자들도 있다. 지난 4월 4일 서울 중구청은 대한문 앞 쌍용차 시민분향소를 강제 철거한 뒤 그 자리에 화단을 조성했다. 꽃을 심는다고 사람을 철거하는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MBC <뉴스데스크>와 SBS <8뉴스>는 이 일을 하나의 ‘사건’으로 짧게 처리했을 뿐이다.

쌍용차 희생자 24인의 분향소가 갖는 의미는 돌아보지 않은 채 돌발 이벤트로 해당 상황을 전한 언론 보도는 언론단체 등으로부터 질타를 받았지만, 이에 앞서 지난 3월 26일 쌍용차 분향소 맞은편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다 역시 강제 철거된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얘기는 언론에 등장하지도 못한 탓에 비평의 대상이 될 수도 없었다.

7년째 사측의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기타 생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도 지난 2월 점거 중이던 공장에서 쫓겨나 천막을 세웠지만 관할 구청에서는 천막마저 4월 30일까지 철거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방송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방송·언론 현실에 대해 김미형 금속노조 대외협력국장은 “언론이 노동자들의 이야기보다 사건 사고나 연예인 이야기에만 엄청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며 “자본주의 속에서 방송이 경영자와 광고주인 기업들의 눈치를 보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국장은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매장당할 수도 있는 사회 분위기”를 꼬집으며 “결국 방송이 오랜 세월 주도적으로 노동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다보니 기자들도 암묵적으로 침묵하는 것 아닌가”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KBS 한 PD는 “기본적으로 비판 보도 자체의 총량이 많이 줄어든 상황에서 사회의 중요한 문제인 노동 문제도 배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 근원에는 노동뿐만 아니라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 부담스런 취재들을 기피하는 경향들이 오랫동안 계속되는 것이 있다”고 지적했다.

▲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이 지난 2월 13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성당 앞에서 열린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관련 여성계 연대 기자회견’을 지켜보다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 노동 현안, 사회 구조적 접근 ‘전무’= 방송은 노동문제를 다루는 것을 피하려 하지만 노동자들은 언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유명자 전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장은 “일반인들에게 노동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며 “메이저 언론, 공영방송에서 이런 걸 다뤄준다면 많은 사람들의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다. 언론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노동문제에 대한 언론의 관심만큼, 노동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시각도 중요하다. 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은 “투쟁의 어려움이나 노동자들의 고통을 조명하는 것도 좋지만 감정의 영역으로만 접근해 불편하거나 안타깝다는 생각으로 그치면 안 된다”며 “노동문제는 사회 구조에서 파생된 문제인 만큼 사회·경제·정치 등 각 분야에서 심층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부대변인은 “근본적으로는 노동이 갖고 있는 보편성에 대해 언론이 충실하게 알리지 못하고 있다”며 “특정 사업장이나 계층의 갈등이 아니라 문제의 배경과 전체 구조를 인식할 수 있도록 언론이 선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에서 노동문제가 소외되거나 심층적으로 다뤄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 방송사 내부에서도 반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언론노조 SBS본부 부위원장을 지낸 채수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노동 전문기자가 없고 방송사 노조의 공정방송위원회에서도 정치적 사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노동에 관한 부분을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채 위원장은 “물론 매일 새로운 이슈들이 생겨나고 뉴스 시간의 한계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인 만큼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노동 관련 사안을 의식적으로라도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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