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벌언론의 폐해, 현장 기자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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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벌언론의 폐해, 현장 기자에게 돌아왔다
[인터뷰] 최진주 언론노조 한국일보 지부 부위원장
  • 방연주 기자
  • 승인 2013.05.14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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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비대위의 싸움은 장재구 회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다. 장 회장은 업무배임 혐의가 짙은 만큼 대주주로서 자격을 상실했다. 내부 구성원의 뜻에 따라 <한국일보>는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언론노조 <한국일보> 지부가 지난 59년 동안 <한국일보>를 지배한 장 씨 일가와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이번 사태는 장재구 회장이 회사에 200억원의 손해를 입힌 것이 도화선이 됐지만 <한국일보>는 장 씨 일가의 계속된 전횡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과도 같았다.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정상원, 이하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노조는 지난 2일 <한국일보> 1면에 ‘회장의 불법 인사를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게재하고 <한국일보> 상황을 알렸다. 사측은 부랴부랴 ‘성명서’가 실린 신문을 회수 조치했지만 <한국일보> 사태를 감출 순 없었다. <PD저널>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 한진빌딩 내 <한국일보>지부 사무실에서 최진주 부위원장을 만나 진행 상황을 들어봤다.

▲ 최진주 <한국일보> 지부 부위원장. ⓒPD저널

최진주 부위원장은 2002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현재 산업부 소속이다. 작년부터는 비대위 부위원장으로서 대외협력 분야를 맡고 있다. 입사 당시 회사가 워크아웃을 통한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희망을 품었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더구나 중학동 사옥 매각 과정을 보면 장 회장을 둘러싼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결국 비대위는 지난달 29일 <한국일보> 대주주인 장재구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2011년 장재구 회장이 중학동 사옥 매각 과정에서 수백억 원의 손해를 회사에 끼친 혐의 때문이다.

2006년 워크아웃 졸업 당시 채권단은 사옥 매각과 장 회장의 추가 증자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한국일보>는 당시 중학동 사옥을 한일건설에 팔았고, 그 땅에 지어질 건물에 입주하기 위해 ‘우선매수청구권’을 확보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비대위는 보고 있다. 장 회장이 200억원의 증자를 위해 한일건설 쪽에 돈을 빌리면서 우선매수청구권마저 넘겼다는 것. 결국 중학동 사옥 복귀는 물거품이 됐고, 그에 따른 막대한 손실을 회사에 입혔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최 부위원장은 “구성원들은 완공된 사옥 입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1년 신문 1면에 중학동 사옥 복귀를 알리는 사고(社告)를 내기도 했다”며 “사옥 복귀가 무산될 당시 돈이 없어서 못 들어간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이런 일이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장재구 회장의 사옥 매각이 발단이 됐지만, 실제 <한국일보>의 만성적자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54년 창간된 <한국일보>는 창업주 장기영 전 회장 이후로 아들들이 번갈아 회사경영을 맡아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경영 악화 일로를 걷자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장재국 전 회장(4남) 때에는 부채가 5000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장재구 현 회장(2남)은 업무상 배임 혐의에 휩싸이는 등 바람 잘난 없는 ‘족벌체제’인 셈이다.

언론사의 족벌 체제에서 비롯된 폐해는 현장을 누비는 기자들이 감당해야 했다. 최 부위원장은 “실제 월급 말고는 제대로 나오는 게 없었다. 작년 대선 당시 이른바 ‘민심 취재’를 다닐 때도 출장비를 올려도 나오질 않으니 자비 출장을 다녔고, 외부 원고료도 1년 넘게 지급하지 못해 필자들에게도 민망할 때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 이영성 편집국장이 지난 6일 오후 편집국 비상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언론노조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

비대위의 검찰 고발에 사측은 강경하게 맞섰다. 사측은 검찰이 수사에 속도를 내자 지난 1일 장 회장에게 책임 있는 처신을 요구한 편집국 간부를 교체했다. 이영성 편집국장을 창간60주년기획단장, 고재학 경제부장을 부산취재본부부국장 대우로 발령했다. 지난해 노사가 마련한 편집강령규정 내 ‘편집국장 임명 5일 전 내정자를 조합과 평의회에 통보한다’는 규정을 1년도 채 되지 않아 어겼다. 결국 ‘기름에 물을 부은 격’이 됐다.

비대위는 이번 인사를 보복 인사로 규정하고 지난 2일자 신문 1면에 성명을 게재했다. 뒤이어 진행된 이영성 편집국장 보직해임 거부 투표에서는 98.8%(투표율 86.5%)가 해임을 반대했다. 또 하종오 신임 편집국장에 대한 임명동의 투표도 부결시켜 사측에 강경한 입장을 전달했다.

최 부위원장은 “취임 1년이 안 된 편집국장에 대한 해임은 부당하다는 여론이 반영된 결과”라며 “노조가 인사권을 쥔 사측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다했는데 장 회장은 여전히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울 뿐 물러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대위는 싸움이 길어질지라도 법정 다툼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간다는 입장이다. 조만간 장재구 회장에 대한 업무상 배임 혐의가 의심되는 자료를 바탕으로 추가 고발에 나설 계획이다.

비대위는 또 <한국일보>의 대주주와의 전면전이 실상 언론계에서도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 부위원장은 “<한국일보>의 경우 창업자의 자식들이 대를 이어가며 운영하면서 족벌체제가 됐다”며 “지금까지 족벌체제 신문에서 사주 일가가 스스로 물러나거나 매각하는 사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장재구 회장에게서 벗어나야 합니다. 장 회장은 대주주 자격이 없어요. 200억원을 되돌려놓고 물러나든지, 자신의 지분을 내놓고 이를 제3자 매각하든, 조합의 형태로 가든 내부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을 수용한 뒤 그 뜻에 따라야겠죠. 그리고 회사를 농단하지 않고 편집권에 간섭하지 않는 사람이 <한국일보>를 끌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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