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철의 스마트TV] 지상파 편성표는 ‘쇼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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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대선 전까지는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정치시사 토크의 대명사였다. 해가 바뀌면서 다 죽었던 강용석을 되살려준 종편 토크쇼 ‘썰전’이 그 뒤를 이었다. 얼마 전 ‘썰전’은 친절하게도 지상파 밤 11시 대 예능 프로그램의 저조한 시청률을 걱정해주셨다. 3사의 프로 중 10%를 넘기는 것이 없다면서 기존 시청률 조사 방식의 한계를 지적한 것. 현재 피플미터 방식의 시청률 조사는 한계에 도달했으니 트위터 멘션과 페이스북 링크 수, IPTV·포털 웹TV·P2P 사이트·YouTube 등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의 조회 수를 시청률 산정 자료로 편입해야 한다는 결론.

사실 ‘본방 사수’를 외치며 기존 시청률을 높이려는 이들은 아이돌 그룹의 광팬 말고는 별로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지상파 채널 6,7,9,11에 집착해 리모콘을 돌리는 이들은 모바일 기기와 거리가 먼 어르신 층 외엔 별로 없는 실정. 이제 지상파의 모든 동영상 콘텐츠는 PC, IPTV, 모바일의 플랫폼 위에 새롭게 재배열된다.

지상파 편성부서는 순차적으로 개별 프로그램에 어린이 시간대, 저녁 시간대, 프라임 타임, 심야시간대 같은 방송시간 식별 지대(Zone)를 부여한다. 각 시간 지대는 성별, 세대별, 지역별, 고유의 시청률 패턴을 가지면서 광고 단가를 책정하는데 지표가 된다. 하지만 디지털 모바일 시대의 시청자들에게 이런 식의 시간별 편성은 더 이상 별 의미가 없다. 그들은 방송사가 규정한 시간 질서에서 벗어난 ‘편성 이탈자’들이다. 시청률 집계는 ‘이탈자’들을 카운트하지 못하고, 광고주는 미심쩍은 지표에 지갑을 열지 않고, 방송사의 수지는 악화된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현실 상거래에서도 나타난다. 온라인, 스마트 모바일 전성시대로 접어들면서 오프라인 기반 상점들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안타까운 상황을 지칭하는 말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데, 그중에 ‘쇼루밍 (Showrooming)’ 이란 단어가 있다. 집단지성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에도 버젓이 등재 돼있는 이 단어의 뜻은 ‘ 전통 상점에서 상품을 사지는 않고 살펴 본 후, 온라인에서 가장 낮은 가격에 파는 곳을 찾아 사는 행위’이다.

▲ 방송사 편성표. ⓒ커뮤니케이션북스

용산 전자상가 가서 사고 싶은 신제품을 둘러보고 모델 넘버 확인한 뒤 온라인 검색해서 제일 싼 제품을 주문한 경험이 우리에게도 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아마존이나 이베이 같은 온라인 상점들은 소비자의 쇼루밍을 돕기 위한 모바일 앱까지 개발했다. 매장의 상품 바코드를 인식해서 같은 제품에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하는 온라인 상점을 소개하는 것. 소비자는 매장에서 온라인 최저 상품을 사버린다. 백화점, 할인점은 비용 들여 제품을 보여주고 손님은 빼앗기는 한심한 신세가 돼버린 것.

마찬가지로 지상파 편성도 ‘쇼룸’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인터넷, 모바일에 익숙한 젊은 시청자는 지상파 편성표를 상품 전시대처럼 훑어보고 실제 구매(시청)는 지상파 채널이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 하고 있다. 실시간 방송 시청률 올려주고 광고주를 만족시켜야할 손님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버리는 것. 어떤 광고주가 여기에 돈을 쓰겠는가. 광고 효과 떨어지니 지상파 광고 매출 줄고, 대신 새나간 시청자를 받는 다른 사업자들이 수익을 얻는다.

▲ 손현철 KBS PD
이런 지상파 누수를 메우기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 도달률 조사 방식이 개발되고 있다. 미국의 시청률 조사기관 AC 닐슨은 2013년 가을부터 새로운 시청률 측정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방식은 소셜 미디어인 트위터의 해당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멘션과 반응을 반영해서 실제 시청률을 산정한다. 국내 조사기관들도 추세에 따라 곧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 쇼룸을 빠져나간 장외 구매자들의 숫자를 정확히 세야, 지상파의 생존이 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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