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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의 사회학

|contsmark0|최근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영화 속에서 조용히 사라진 ‘파이란’을 비디오로 빌려봤다. 주연배우 최민식의 깡패연기 그 중에서 욕설이 대부분인 뒷골목 언어들은 압권이었다.
|contsmark1|영화에서 최민식은 한물 간 건달이다. 조직 내에서 그의 위치는 그가 욕설을 퍼붓는 대상과 존댓말을 써야하는 대상을 통해 파악된다. 그의 주변에는 점점 존댓말을 써주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한 때는 친구였지만 지금의 보스에게 그는 면전에서 반말을 하지 못한다. 이렇듯 한국어에서 존댓말과 반말은 권력관계의 지형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contsmark2|많은 외국인들에게 때와 장소와 대상을 따라 복잡다단하게 변화하는 존댓말의 구분은 쉽게 넘을 수 없는 진입장벽이라고 한다. 그 분, 그 사람, 그 친구, 그 녀석, 그 치, 걔(그 애), 그놈, 그자식 까지 3인칭 단수 남성을 가리키는 말 한가지만 해도 이렇듯 다양한 것이 한국어다. 대상에 따른 높낮이가 이토록 복잡다단하게 발전한 언어는 세계적으로도 일본어와 함께 한국어가 으뜸이라고 한다.
|contsmark3|그렇다면 이토록 복잡한 한국어의 높낮이는 생래적인 것일까? 예전에 본 <역사스페셜> 프로그램에 의하면 조선초기만 해도 나이가 어린 부인이 남편을 ‘자네’라고 호칭했다는 것을 보면 우리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해서 단군이래로 존댓말을 엄격히 사용해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한국어의 존댓말과 하대의 엄격한 구분은 주자성리학의 토착화 과정과 그 궤를 같이 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contsmark4|한국사람들은 만나자 마자 나이 물어보고 형님 동생 서열을 정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존댓말과 반말의 적절한 사용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평생을 두고 배워야 하는 사회화 과정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못 구사했을 때 받는 대가 또한 만만치 않다.
|contsmark5|필자도 이쯤 됐다 싶어 반말을 했다가 떨떠름해 하는 상대방 표정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본의 아니게 관계가 불편해져 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반대로 처음 만난 상대가 허락도 없이 반말을 하는 통에 불쾌했던 적도 있다.
|contsmark6|재수를 해서 나이는 동갑인데도 꼬박꼬박 반말하는 선배랑 술자리를 갖다가 무의식중에 “야자타임”을 한후에 철저한 응징을 당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욱 절실히 느낄 것이다. 허나 어쩌랴! 형님 동생만 수만명 정도는 돼야 성공한 정치인 축에 끼일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인데….
|contsmark7|단순히 관계의 불편함에서 그치지 않는다. 존댓말과 하대의 구분은 민주적 의사소통을 방해할 수도 있다. 도로상에서 차세워놓고 잘잘못을 따지다가도 바로 “너 몇살이야!”하며 밥그릇을 세고 있는 군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contsmark8|생면부지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럴진대 직장내 상하관계에서는 어떨 것인가! 매일 마주 대하며 존대와 하대로 단련(?)된 관계에서 논리적으로 잘잘못을 따진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contsmark9|여기서 우리는 존댓말과 반말의 관계는 대게 권력관계를 수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언어상의 위아래 관계가 권력관계를 고착화 하는데 기여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권력기관일수록 자신보다 연배가 낮은 사람이 자신을 앞질러 승진할 때 후진을 위해서 그만두는 미덕(?)도 발휘되는 것이다.
|contsmark10|형이라 부르며 편하게 대하던 선배가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호칭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 하는 것도 소심한 사람들만의 고민거리는 아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존댓말과 반말이 가져다주는 거래비용이라고 본다면 그 사회적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contsmark11|우리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야외촬영이나 스튜디오에서 처음보는데도 반말을 사용하는 타직종 선배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나이 많은 작가가 pd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전통적으로 일대일 접촉이 많고 끈끈한 인간관계를 과시하던 pd사회도 변하고 있다. 편하게 호칭하는 선배가 줄어간다. 인간적 유대가 채웠던 자리에는 조직내의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가 들어선다. 그럴수록 의사소통의 원활함은 힘들어진다.
|contsmark12|김영삼kbs 편성국
|contsmark13||contsmark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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