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개그 콘서트’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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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를 좋아한다. 특히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를 자주 본다. 다른 것들보다 재미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보기 편한 편성시간 때문이기도 하다. 일요일 밤 9시대. 같은 시간대 뉴스가 있지만 고민거리는 못 된다. 요즘엔 코미디가 더 저널리즘 같지 않은가.

<개콘>의 많은 코너가 다 우리 사회의 반영이겠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사회성 강한 것들이 좋다. 혹자는 웃음은 그냥 웃음일 뿐 다른 목적에 종속시키는 건 난센스라고 주장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메시지가 담긴 것을 좋아한다.

같은 단어라도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걸 보여주는 ‘현대 레알 사전’. 그 많은 내용을 척척 호흡을 맞춰 소화하는 것도 놀랍지만, 촌철살인의 정의에는 매번 감탄한다. ‘시청률의 제왕’은 시청률에 목을 매는 우리 방송 현실의 정곡을 아프게 찌른다. 드라마 PD는 아니지만 어디 드라마만의 일인가. 가슴이 뜨끔하다. 폭력에 대한 거부감을 자연스러운 맥락 속에 녹여내는 ‘버티고’의 아이디어, 못생긴 외모와 결점을 아예 전면에 내세워 웃음을 유도하는 ‘시스타 29’와 ‘네 가지’ 등. 거슬리는 점이 없는 건 아니나 그걸 압도하는 재미가 더 크다.

▲ KBS <개그콘서트> ⓒ화면 캡처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코너는 ‘오성과 한음’이다. 외모 비하도, 과장된 몸 개그도, 고함에 가까운 큰 소리도 없지만 페이소스가 담긴 웃음이 압권이다. 이른바 루저인 두 청년 콤비. 예나 지금이나 자장면이 비싼 이유는 “외국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하고, 삼촌의 캠핑카 빌려 여행 가자던 호기는 기름값 얘기에 그냥 이대 앞에서 여대생 구경이나 하자며 금세 사그라진다. 허무 개그에 터져 나오는 웃음은 그러나 그냥 웃음이 아니다. 8%를 넘는 높은 청년 실업률. 그 팍팍한 현실이 배어있는 쓰고도 짠한 웃음이다. 그 여운이 좋다.

그런 <개콘>에도 차마 보기 괴로운 코너가 하나 있다. ‘황해’다. 아무리 풍자와 조롱의 대상을 조선족 동포 일반이 아니라 범죄자에 한정한다 해도 그 효과까지 범죄자에 국한시킬 수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형화다. ‘황해’에서 중국 동포들은 가난하고 촌티나고 무식하고 덜떨어진 범죄자들로 전형화된다. 여기에 뼈다귀(영화 ‘황해’에서 많은 사람을 때려죽인 무기)를 휘두르는 조직 폭력배의 흉포한 이미지까지 더해지면 조선족 동포들은 그 역사성에서 완전히 유리된 채 이제 우리와 더불어 살 수 없는 존재들이 된다. 전형이 무서운 것은 사실적 근거가 박약한 편견이나 무지를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번 형성되면 효율적인 의미 제조의 도구로 이용해 먹기가 쉽고 그만큼 불식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로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인보다 더 나쁜가. 그렇지 않다(2011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 동포 수는 한국인 수의 0.9% 수준이고 한족과 중국 동포를 포함한 중국인 범죄자 수는 2010년 기준으로 전체 범죄의 0.5%라고 한다). 17년 전 <PD수첩> 방송이 기억난다. 한국인 사기꾼들에게 속아 전 재산을 날리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수많은 조선족 동포들. 방송 후 반향이 컸다. 성금이 답지하고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지금도 불안한 처지에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동포들이 많다.

▲ 송일준 MBC PD
강자들의 위선에 대한 풍자. 규범과 억압에 대한 조롱과 야유. 그것이 긴 역사를 통해 발전해 온 코미디의 정신이고 자존심이다. 그렇게 기본적으로 약자들의 담론이어야 할 코미디가 약자들을 웃음의 소재로 삼아 조롱하는 상황. ‘황해’를 보면서 느끼는 괴로움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 개콘의 ‘황해’ 코너를 재고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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