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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대중에게 PD를 소개한 사람

[홍경수 교수의 PD학개론 ①] 주철환 JTBC 대PD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l승인2013.07.23 11: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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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의 발견> <단박 인터뷰> 등을 기획하고 연출한 KBS 예능 PD 출신 홍경수 순천향대 교수(미디어콘텐츠학과)가 방송 제작의 핵심 인력인 PD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며 PD 인터뷰를 진행했다.

홍 교수는 “그동안 학계에서 진행한 PD들에 대한 연구는 직업만족도와 조직문화 변화 등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으로 PD들이 어떤 접근법으로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으며, 이들의 제작을 규정하는 환경은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를 밝혔다.

홍 교수는 이번 연구를 위해 PD그룹을 △원로그룹 △1980년대 입사해 신규 매체로 확장한 그룹, △1990년 이후 입사한 신진그룹 등으로 분류했다. 그는 우선 1980년대 이후 입사한 PD에 대한 인터뷰를 우선 진행한 후 이를 엮어 12월경 책 <PD와의 대화>로 출간할 계획이다.  <PD저널>은 홍 교수가 진행한 인터뷰를 7월부터 12월까지 월 1회 게재할 계획이다. <편집자>

  ▲ 주철환 JTBC 대PD ⓒ강의정  
▲ 주철환 JTBC 대PD ⓒ강의정

인터뷰를 시작하며

이번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PD들을 어디까지 포함시킬 것인가이다. 우선 KBS를 세운 원로그룹들이 있다. 최창봉을 필두로 한 조선 중앙방송의 PD들과 지상파에서 평생을 보낸 PD들이 원로그룹에 속한다고 하겠다. 두 번째 그룹은 확장하는 PD들이다. 이들은 1980년대에 방송을 시작한 PD들로서 199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통해 일가를 이뤘다고 동료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전문가들이다. 세 번째 그룹은 1990년대 이후 입사한 신진 PD들이 되겠다.

우선 확장하는 PD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현재가 조사의 최적의 시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방송을 시작하여 현재는 지상파가 아닌 방송현장을 지키는 PD를 찾다보니 첫 번째 인터뷰 대상은 주철환 PD가 꼽혔다. 그가 첫 번째 PD로 뽑힌 이유는 이른바 방송 PD의 역사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PD와 대중간의 소통을 시도한 첫 번째 PD이다. 그는 PD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PD들과 대중에게 알렸다. 이른바 직업적 정체성을 자각하고 확립한 데 기여한 PD다. 그는 2000년 2월 PD를 그만둘 때 PD협회로부터 PD를 알린 공으로 공로상을 받았다. 따라서 한국의 PD 역사는 주철환을 기점으로 이전의 선사시대와 이후의 역사시대로 구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83년 MBC 입사해 1987년 <퀴즈 아카데미>, 1990년 <우정의 무대>, 1991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 1994년 <TV 청년내각>, <대학가요제> 등을 연출했으며 이화여대 교수로 7년 반 근무하다가 OBS 사장으로 방송에 복귀했고, 현재는 종편 JTBC에서 대 PD로 근무하고 있다. 그를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영감을 줍니다”

: 뵌 지 20년 됐는데, 변함없어 보입니다.
주: 한결같다는 말이 격려가 되는군요. 전직을 여러 번 했지만, PD로 불리는 것이 가장 좋았어요. 제가 가고자 했던 방향이 큰 성취를 이루기 위한 것은 아니었어요. 즐겁게 살다보니, 즐거움의 산물이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었죠. 그것이 PD 생활 30년 동안 제가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으며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행복합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3년 겨울이었다. 한 신문사의 수습기자로 취재원인 그를 만났다. 그는 여성스럽다 할 정도로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를 가졌다. “00야, 00했니?” 쉴 새 없이 방송과 세상에 대한 생각을 말로 풀어내던 그와의 시간은 열등감을 자아내게 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낼 수 있을까?” 눌변에 수줍음까지 많았던 필자로서는 그의 달변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고, 그러한 마음으로 프로그램도 만드는 것 같았다. 수습이 끝나자마자 필자는 신문사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뒤에야 PD라는 직함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주철환 PD는 필자에게 PD라는 길을 알려주고 직업경로를 변경하도록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밝힌다. 내년이면 60에 들어서는 나이인데도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그의 젊음의 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

  ▲ 주철환 대PD ⓒ강의정  
▲ 주철환 대PD ⓒ강의정
주:
저는 일찍이 ‘젊다’와 ‘늙다’의 품사가 다르다는 것을 간파했어요. 젊다는 형용사, 늙다는 동사입니다. 늙는 것은 동사이기 때문에 계속 진행되는 거고, 젊다는 것은 형용사이기 때문에 느낌을 줄 수 있는 거예요. 젊다는 것은 젊게 보인다는 것, “seeing is believing”이라고 젊어보이면 젊다고 믿는 것이죠. 거울 속의 제 자신을 보면 젊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친구에게는 접근하기 좋고, 점잖은 것은 불편해요.

필자는 주철환 PD를 규정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젊음, 국문학적 감수성, 음악으로 규정해보았다. 국문학전공 박사, 국어교사 출신으로 언어에 대한 남다른 탐구심을 가진 그는 뛰어난 조어력으로 방송현상을 설명했다.

방송의 뼈대 중 하나가 언어인 것은 사실이지만, 방송 속에 담긴 언어를 끄집어 내 방송을 다시 보도록 만든 것은 그가 처음일 것이다. 그는 탁월한 언어적 상상력으로 방송을 리뷰했다. ‘방송은 감탄고토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방송의 생리다’ ‘PD는 주전자가 있어야 한다. 주체성, 전문성, 자존감’ ‘PD에겐 3ㅅ, 3ㅊ이 필요하다. 상상력, 설득력, 순발력, 창의력, 추진력, 친화력’ 등 그가 만들어 낸 두문자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수사학의 달인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겠다. 그가 MBC에서 이화여대로 전직할 때의 고민을 PD연합회보에 쓴 칼럼 ‘이대로 갈까? 이대로 남을까’는 그가 언어에 대해 얼마나 깊이 천착하고 있는 지 보여주었다.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기로조차 언어적 유희로 풀어낸 것이다.

홍: 평소 언어에 대한 명상을 자주하세요? 시간을 정해 놓는다든지.

주: 끝없이 해요.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도 붙여놓은 유자 크랜베리 파운드 광고에 대해 생각합니다. 유자에 대한 지식과 추억, 크랜베리는 회사 1층 빵집의 샌드위치가 크랜베리다 등등. 구성을 봐요. 사진크기 적당한가. TV를 중독된 상태로 보는데 시청률 낮은 프로그램도 재미있게 봐요.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토론에서 엉뚱한 리액션을 잡는 이유는 뭘까? 평소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합니다. 싸이의 인기에 대해서도 주철환식으로 생각하죠. 그의 성공비결에서 교훈을 얻죠. 세상의 모든 것은 교사입니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세요’라는 상투적인 질문에 왜 이렇게 질문할까라면서도 ‘삼라만상’이라고 대답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영감을 줍니다. 정읍사 가사 ‘달아 높이곰 돋으샤 어기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 달이 처음 나오죠. 제가 알고 있는 달에 대한 모든 정보가 나와요.

“지독한 외로움이 창의력의 원천”

홍: 이런 언어 명상이 창의력의 원천인가요?

주: ‘외로움의 역에 오래 머물지 말고 그리움의 역으로 빨리 가라’라는 말이 있는데, 지독한 외로움이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보아요. 최근 저의 성장과정을 궁상스럽게 설명하고 있는데, 저는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가난한 집 아이였으며, 아버지는 가정에 무심했어요. 원망은 안 해요. 아버지를 싫어했던 거죠. 아버지의 부재가, 결핍이 창조의 원천이 된 거예요. 느닷없이 형제들과 생이별하고 서울 고모 댁에서 살았는데, 고모님은 초긍정주의자였죠. 잡화상인 고모님은 외상장부가 없었어요. ‘외상 안 적어요?’ 물으면 ‘내 기억력이 비상하데이.’ ‘누락되는 것이 있을 텐데’ ‘그럼 그 사람이 축복받은 거지’ 그런 낙관주의를 물려받은 거예요.

고향 마산을 뒤로하고 고모의 양아들로 입적되어 여섯 살에 서울에 올라온 그는 아버지와 책이 없는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부재는 사회성을 떨어뜨리고, 책의 부재는 체계적인 사고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교육학의 상식이다. 하지만 그의 사회성은 매우 뛰어나고, 창의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도 훌륭하다. 아버지와 책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주: 계속 고모님하고만 살았잖아요. 잡화상이니 신문지가 쌓였어요. 읽을 게 없으니 매일 신문을 읽은 거죠. 신문에는 스토리 권선징악이 들어있죠. 영화포스터 등을 보며 상상력을 키우고 세상을 읽은 겁니다. 고모님이 라디오를 많이 들어서, 저도 음악을 많이 들었죠. 살아있는 대중음악의 역사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비교육적일 수 있다는 전제하에, 책을 대하는 태도가 있어요.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대신) 책 제목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언어의 뿌리를 찾아서, 이것이 어린 시절의 오래된 습관이죠. 잡지에 독자투고도 엄청 많이 했어요.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끝없이 투고했어요. 채택되지 않더라도…….

신문 라디오를 탐닉하던 어린 시절을 그는 ‘신라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그의 국문학적 감수성과 음악적 애호는 대중매체와 벗하던 어린 시절의 결과물로 볼 수 있겠다. 그는 신문을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잡지 등에 투고하며 글을 써왔다. 중국 문인 구양수(歐陽脩)의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중에서 다독은 안 하고 다작 다상량은 많이 한 그는 어릴 적부터 일기와 편지쓰기를 생활화했고 이것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여기서 확인!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결핍의 산물일까?

: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있었어요. 사는 법을 일찍이 터득한 거예요. 어릴 적부터 귀엽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귀여운 사람이 되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죠. 선생님 친구들에게 귀여움을 받았어요. 80~90명 되는 한반에서 오락시간에 저를 꼭 불렀어요. “춤춰라…….” 호출이 떨어지면 나가서 노래 불렀어요.

  ▲ 그는 주변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고, 그러한 마음으로 프로그램도 만드는 것 같았다. ⓒ강의정  
▲ 그는 주변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고, 그러한 마음으로 프로그램도 만드는 것 같았다. ⓒ강의정
“스스로 규정한 질환, 골목대장 콤플렉스”

홍: 젊음에 대한 거는 아직 설명이 안 되네요. 젊음에 대한 것도 집착인가요?

주: 집착은 좋지 않네요. 갈망 정도로 해주세요. 늙고 낡은 것은 우선 제가 싫습니다. 제가 늙고 낡은 폐품이 되는 게 싫어요. 제가 몸의 유연성은 많이 떨어지지만 사고의 유연성은 아직도 팔딱팔딱 뛴다고 생각하고 특히 젊은 친구들과 어울려서 대화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해요. 친구들보다 또래문화에서 약간 빗겨 나가 있어요. 스스로 규정한 질환이 있는데 골목대장 콤플렉스. 골목대장이 되어본 적이 없으니, 젊은 친구들하고 애기하면 맞장구 쳐주니, 즐겁죠. 누가 질문을 했을 때, 그것이 나를 꿈틀대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받으면 잠자는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죠. 제가 젊어 보이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보다 젊은이들이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이고, 제가 늙고 낡은 느낌을 준다면 젊은이들이 외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피터팬 신드롬’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젊음과 젊은이에 대한 큰 갈망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존재 확인을 젊은이를 대상으로 해온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는 유년기의 결핍이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심지어 농담 삼아 노화와 겨뤄서 승리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주: 저는 차를 안 타고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친구들이 삼겹살 고기 먹을 때 좋아하지 않았어요. 식탐이 없어요. 저는 나이를 먹어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증거물이 되고 싶어요. 영적으로 육적으로. 젊음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람들로부터 잊혀지면 어떨까하는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올드맨이 된다는 것은 올드-퍼니쳐가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고쳐야 되잖아요. 삐딱한 시각으로 보면 지나친 현시, 과시욕구로 볼 수 있지만, 그렇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소년적 욕구, 피터팬, 권력욕이 없잖아요. 골프장도 가기 싫어요. 또래들이 갖는 재태크에 대한 욕구도 없어요. 

“PD는 사람 마음을 훔치는 재주 있어야”

홍: PD생활 하며 가장 창의적으로 프로그램 만든 순간은?

: 대표작이 <퀴즈 아카데미>죠. 시사문제를 퀴즈로 낸 것은 제가 처음일 수 있습니다. 어제 일어난 일을 문제로 냈죠. ‘서울시장이 뇌물비리로 구속됐다. 조선시대의 서울시장은?’ 퀴즈 아카데미는 컴팩트 하고 임팩트 있게 만들었습니다. 시대를 읽을 수 있고. 문제가 문제로 나오는 프로그램, 문제의식 있는 프로그램, 문제 제기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자부심 있었어요. 참 잘했죠. 1987년에 우승자에게 유럽 베낭여행을 보내준 것도, MC의 역할을 줄인 것도 좋았고, <장학퀴즈>는 진행자인 차인태 씨가 너무 역할을 많이 했어요. <퀴즈 아카데미>는 편집할 때도 진행자 역할을 과감히 줄여서 스피디하게 편집했습니다. 또한 2명의 대학생이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제목으로 출연했어요. <퀴즈 아카데미>는 하나하나 뜯어봐도 부끄러움이 없는 프로그램입니다.

1987년 대학교 2학년이던 필자는 학회실 우편함에 수북이 쌓인 팬레터들을 보았다. <퀴즈 아카데미>에 출연해 ‘여름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우승한 같은 과의 송원섭(현, JTBC 홍보마케팅 팀장)에게 보내온 팬레터였다. 텔레비전에 출연해 여고생들로부터 팬레터를 받고, 빌트모아라는 양복 광고모델로도 출연했던 그는 <퀴즈 아카데미>가 낳은 스타였다. <퀴즈 아카데미>는 당시 대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꿈의 무대’였다. 일요일 학교 도서관 휴게실에는 <퀴즈 아카데미>를 보며 함께 <퀴즈 아카데미>에 나가자는 부추김과 아서라는 만류가 교차했다. 1987년 대학가의 주말은 그렇게 선망과 꿈 그리고 헛헛한 아쉬움으로 저물곤 했다. 대학생에게 PD라는 직업이 있고, 괜찮은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을 준 것은 단연코 그가 처음이리라.

주: <우정의 무대>도 제가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프로그램을 스펙터클하게 만들고 ‘병사 가요열창’, ‘행운의 화살’ 등의 코너를 만들었어요. <일밤>도 송창의 PD가 시작한 것이지만, 출연자의 다양성을 확보해서 조경철 박사, 변웅전, 김홍신 소설가 등 오락프로그램에 안 나오는 사람을 끌어들였습니다. <대학가요제>를 캠퍼스에서 시작한 것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에서 대학가요제를 진행했더니 시청률이 몇 배가 올랐어요. ‘부른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운동권 노래가 텔레비전에 방송됐어요.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지상파에 처음 방송한 것도 접니다. 노찾사 ‘빨간꽃 노란꽃...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노찾사도 출연시켰고, 한돌, 안치환 제가 텔레비전 데뷔시켰어요. 저변에 있는 사람을 방송에 끌어들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는 판을 벌이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섭외력인데, 모든 PD들이 가장 갖고 싶은 재능 중 하나가 아닐까? 

주: PD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훔치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에게는 애교가 있고 애교에 어려운 게스트들이 많이 넘어옵니다. 김혜자 씨는 제가 하는 프로그램 외에는 오락프로그램에 안 나왔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을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누가 들으면 닭살 돋는 일이지만, 성공하는 비결은 진실 되게, 간절하게, 꾸준하게 이 세 가지를 하면 성공합니다. 진정성 있는 거죠. 김혜자 씨는 지금도 제가 보자고 하면 만납니다. OBS에서 토크쇼도 했습니다.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도 했고, 최진실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지로 가는 <우정의 무대>를 네 번이나 출연했습니다. 지금의 김태희, 송혜교입니다. 그때 최고 스타는 <우정의 무대>에 다 나왔습니다. 최고들이 모일 때 자신이 빠지면, 탤런트들이 스스로 연락이 옵니다. 김혜수 씨는 최진실, 채시라 나오는 프로그램에 나오고 싶다고 연락 왔습니다. <유쾌한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저는 다른 PD와 달리, 최고가 아니면 출연 시키지 않았습니다. 맨날 나오는 사람만 나오는 단점이 있지만, A급들로 퀄리티가 유지됩니다.

  ▲ 홍경수 순천향대 교수 ⓒ강의정  
▲ 홍경수 순천향대 교수 ⓒ강의정
“나는 JTBC의 소통담당 임원”

국어교사, MBC PD, 이화여대교수, OBS, JTBC 등 그는 교육자와 방송인으로서 비교적 많이 전직을 했다. 전직이 창의적인 사람의 특징일까?

주: 창의적인 것보다, 모험을 좋아했죠. 하지만 뭐든 맞아야 하는 겁니다. 이대로 갈 때, MBC가 더 제게 맞죠. 고즈넉한 평원에 구름이 떠있고 양들이 있는 그곳에서 평화를 즐기며 7년을 있었습니다. 재미가 덜했습니다. OBS로 간 것은 사장 허세를 부리기 위해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다 할 수 있어서였죠. 모험을 즐긴다는 것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홍: JTBC에서 대 PD로서 어떤 일을 합니까?

주: 조직에서 건방진 이야기일수 있지만, CIO(Chief Image Officer)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주철환의 이미지가 뭐냐? 젊다, 뭔가 천진난만하며, 재밌게 출렁거릴 것 같다. 이미지만으로는 안 됩니다. 메시지로 보완해야 하는데, 글 쓰면서 끊임없이 보완하고, 특히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회사 돌아다니며 말걸기를 합니다. ‘00야 너 어떠니?’ 지난번 KTX 잡지 6월호에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라는 코너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젊은이들과 이야기하고 있지요. 어떤 이야기요? 진담, 농담, 상담을 하죠.’ 저는 회사의 소통담당 임원입니다. 스스로 규정한 것이죠. 대 PD니까 큰 기획 1년에 1개씩 하고 있고, 회사에서 중요한 인물을 영입하는 데도 역할을 하고 있다.

홍: 손석희 사장님이 오시는데도 역할을 하신 거죠?

주: 저는 손석희를 사랑합니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어요. 겉으로는 냉철해 보이나 따뜻합니다. 무엇보다 제게는 은인이죠. 아내의 동생으로 아내와 함께 이어준 인연, 30년 우정입니다. 그 친구가 저와 가까이 있는 것이 저는 좋고, 그 친구가 저를 부러워합니다.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게, 저는 새처럼 지저귀잖아요. 굳이 엮자면, 제가 이대 갈 때 그렇게 부러워했다는군요. 손 사장도 성신여대에서 딱 7년 반을 교수를 했고, 다음 행보는 보도담당 사장, 엮으려면 운명적 행보라고 할 수 있고, 얼굴도 똑같이 동안입니다.

어쩌면 손석희도 주철환 스쿨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는 스쿨의 일원을 넘어선 친족이니까.

홍: 전직한 방송사마다 조직의 기풍이 차이가 있죠?

주: 사람이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MBC는 젊은이의 발언이 힘이 센 방송. 어떤 사람들은 ‘노영방송’이라고도 부릅니다. 들썩거리는 방송이죠. OBS는 대표희생이라고 미디어종사자 중 가장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 iTV 문을 닫고 왔는데, 동종업계 최저임금을 받고 있죠. 저는 생각을 안 하려고 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저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죠, 초대사장으로서. 그 친구들은 반드시 고난을 극복해서 그들이 꿈꾸는 희망의 방송사가 되도록 응원단장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를 사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찾지 말고, 형, 선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계속 만나자.’ JTBC는 중앙이라고 하는 문화가 있잖아요. 돈이 있는 방송 같은 느낌. 조중동이라고 해서 보수적인 카테고리에 넣잖아요. 보수에 들어가지만 그래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방송사 같고, JTBC는 TBC(동양방송)라는 DNA가 있어요. TBC를 부활시키려는 몸짓이 있죠. 어릴 적 TBC가 재미있었죠. JTBC가 TBC가 추구하려는 발랄함의 맥을 이으면 좋은 거죠.

홍: 어제 종편 20개월을 평가하는 언론과 사회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종편 20개월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주: 빛과 어둠, 그림자 있겠죠. 제가 지금 여기에서 희망을 말하는 사람 쪽에 있죠.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서, 빛의 부분을 늘려 가면 좋겠죠. 미디어 다양성 이런 것은 좋지 않을까요? 물론 채널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 종편을 너무 많이 허가해준 것은 문제 아닐까요? 그러면 너희만 있어야 하고 다른 종편은 사라져야 한다는 거냐는 오해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광고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업들에게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보수 언론들이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협박하는 걸로 비춰진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즐거움을 만드는 사람들이 경쟁할 수 있는 구도면 참 좋을 거 같습니다. 새로운 창의성을 만드는 사람들의 경쟁이면 좋겠어요. 지상파에 있다가 종편이나 케이블에 온 사람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잖아요.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데, 욕을 먹을 지도 모르나 이런 비유하고 싶어요.

일제시대라면 모르는데, 지금 일제시댄가? MBC에도 깨어있는 사람도 있고, 깨어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MBC 있으면 깨어있고, 종편에 왔다고 돈에 팔려왔구나 섣불리 판단할 수 있을까요? 거기서 어떻게 하는 것을 봐야죠. 주철환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우호적인 리플, ‘OBS 사장하던 사람이 종편 본부장을 하다니, 우리는 뭐냐는 말이냐, 억울하다.’ OBS에서 구조조정 하라고 했는데, 저는 못한다 했어요. 즐거운 판을 벌이고 싶은데……. 그런 와중에 JTBC에서 오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도대체. 명분을 지키기 위해 실리를 다 버리라는 건지……. 오너의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친정부적인 발언과 행위를 했다, 그 증거를 대라 이거예요, 해명, 소명, 반성 등을 할게요. 저야말로 명예를 지키는데 혈안이 된 사람인데, 정부에 잘 보여서 입각하려하거나 국회의원 출마할 의도도 없고, 좋은 프로그램 만드는 것이 좋은 사람인데…….

종편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시각을 의식했는지 그는 종편의 평가 부분에서 다소 강하게 응답했다. 종편으로 이동했다는 사실보다는 그곳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바탕으로 판단해달라고 주장했다.

홍: 시청자들이 JTBC를 어떻게 본다고 인식합니까?

주: 시청자들은 대표 프로그램으로 방송사를 인식합니다.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JTBC도 주철환 이미지가 있었고, <빠담빠담>, <아내의 자격>, <무자식 상팔자>, 드라마 몇 개가 기억날 정도가 됐다는 것은 so far so good(지금까지는 괜찮다). <히든 싱어>, <썰전> 등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지금의 아사리 판에서 어느 정도의 새로운 느낌을 주는 프로그램? TV 조선의 대표 프로그램이 뭘까요? 뉴스쇼 판? 채널 A는 먹거리 엑스파일, 쾌도난마, JTBC는 드라마 예능입니다. 전체 시청률로는 JTBC가 뒤집니다. 그런데 시청률 1위부터 50위에 JTBC가 35개 들어있습니다.

시청률 조사기관 TNmS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 종편의 평균 시청률은 MBN 0.80(%), 채널A 0.74(%), JTBC 0.67(%), TV조선 0.65(%)를 기록했고, 이는 동기 대비 21분 증가해 전 채널 시청시간 22분 상승을 이끌었다. 이는 시청시간이 2분 증가한 지상파와 1분 감소한 PP채널에 비교해 높은 수치다. 전 채널 시청시간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도 전체 479분 중 41분으로 8.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 점유율은 지난해 동기보다 4.2% 증가한 수치다(기자협회보, 2013년 6월 27일자). 

일부 종편이 보도전문채널화 되거나, 광고판매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콘텐츠 투자액이 계획 대비 47.4%에 그쳐, 전반적으로 높아 종편 승인의 정책적 목표인 ‘방송의 다양성 실현과 콘텐츠 산업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지만(장하용, 2013), 시청률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그램 장르 편성만을 보았을 때, JTBC의 오락, 드라마의 비율은 36.6%로 상대적으로 높았으며(이현우·원희영, 2013), 채널 A와 TV 조선과 달리 방송 보도로 인한 여론의 역풍을 덜 받은 것도 사실이다.

주: 종편을 비난하거나 안 좋은 이야기 할 때, 늘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적들에게 감사하라, 그들은 우리의 약점을 예리하게 지적해준다’고 이야기합니다. 누가 이야기할 때 귀담아 들으면 됩니다. ‘무정도시’라는 드라마가 자극적인 표현으로 징계 받았습니다. 방송은 공공재로, 수돗물과 같은 것입니다. 수돗물이 콜라가 나온다면 일시적으로는 시원하겠지만, 씻고 밥해먹을 수 없습니다. 방송의 기본에 어느 정도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지나치게 돈벌이 한다, 선정, 폭력,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있다면, 종편뿐만 아니라 어디나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종편이 탄생했잖아요. 다시 문을 닫아라, 현실적으로 어렵죠. 직원들은 또 실업자가 될 텐데, 신입사원은 무슨 죄입니까? 종편이 (강제로) 문을 닫을 것이 아니라, 시장의 원리, 극장의 원리에 의해 자연스레 문을 닫을 겁니다. 우리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교만한 것도 싫습니다. 자만할 것도 낙관할 필요도 없고, 현실은 객관적으로 미래는 낙관적으로 보자고 말합니다.

홍: 주철환 대 PD께서 JTBC의 공공성을 담보 혹은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 하고 싶다는 것이지, 할 수 있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소위 의지의 강도, 추진력이 중요합니다. 저는 누구랑과도 이야기했을 때, 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자신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 수 없죠. 조선시대 각종 사화들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저는 카르페 디엠입니다. 오늘 열심히, 더럽지 않게 해야겠다. 내일은 또 내일 하면 되는 거지. 제가 5년 안에 종편을 어떻게 해야겠다. 이런 말을 할 자격 있나요? 저는 그것을 주제넘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회장이 말해야죠. 우리 회사의 중요한 가치가 신뢰와 창조입니다.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은 믿을 만하다. 새로운 것을 한다. 그것은 합의에 의해 나온 거지만, 저는 신뢰감 창의성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대 PD는 회사의 대표 PD이기도 하지만, 대기발령 PD이기도 한다며, 조직에서 다소 초연한 듯 한 느낌을 주었다. 방송사의 편성이나 제작 임원에서 벗어나 대 PD로 일하는 그는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방송사에서 언제라도 그만 둘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주: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럴 때, 그거 가지고 불안해하지 않아요. 그만두면 어떤가요? 저는 MC를 하고 싶어요. 후배들이 지방사 사장들인데, 강연하고 글 쓰고 살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친구들이 다 방송계에서 은퇴했습니다. 살아남아야지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기도 싫습니다.

그만두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그는 참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초등학생들에게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대학에 미디어교육학과가 생기면 학과장으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중앙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각종 강연의 단골 강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두 장의 음반을 낸 가수인 그는 해외교포들의 초청으로 미국과 호주 공연까지 다녀왔다.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력을 바탕으로 그는 노후에 방송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여전히 활약할 것 같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MBC라는 공영방송이라는 마당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 MBC에서는 조직이 (보호해주는) 병풍 역할이 있었습니다. 제가 KBS에 있었다면, 주철환은 없었을 거예요. MBC는 제가 30대 중반에 <한겨레>에 반년 연재할 때 제동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간혹 ‘야 너 기자냐? 작가냐?’ 약간의 부담 없는 야유가 있었을 뿐, 인사부에서도 ‘글 써도 됩니까?’ 라는 지적이 없었습니다. 쓰는 것 좋아하니 글을 안 쓴 매체가 없었죠. 강연은 시간만 되면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MBC의 자유로운 분위기로 명성이 구축됐고, 이대로 가고, OBS로 연결됐습니다.

“PD는 시청자의 행복한 시간표를 짜주는 사람”

  ▲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한 주철환 PD(왼쪽)와 홍경수 교수. ⓒ강의정  
▲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한 주철환 PD(왼쪽)와 홍경수 교수. ⓒ강의정

주철환 PD는 방송과 대중을 연결했고, 다양한 재능으로 방송의 황금기를 열어간 PD다. 그의 독특한 재능으로 대중은 방송과 PD를 새롭게 보게 되었으며, 그를 보고 많은 후배들이 방송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반대로 보자면, 그의 성장과 도약에는 상대적으로 좋았던 미디어 환경과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자리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개인적인 직업 선택의 자유에 딴죽을 걸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의 공적인 재능이 다소 개인적인 선택으로 폭이 좁아진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그가 결코 ‘흘러간’ PD가 아닌 ‘살아있는’ PD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네이버 검색창에 ‘유명한 PD’라고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김태호, 주철환이 뜬다. 세월이 빚어낸 결과물일 수도 있는 방송 PD의 역사성을 그가 싫든 좋든 짊어졌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스마트폰의 문자를 보여주며 소년같이 웃었다. 한 대학생이 문자메시지로 질문한 내용에 대한 그의 답이었다.

학생: PD가 하는 역할, PD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주: 시청자의 행복한 시간표를 짜주는 사람.

학생: 그래서 PD는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자세가 중요하겠죠?

주: 하하하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어쩌면 행복한 삶의 비결을 탐구하는 생활철학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행복해 했으며, 긍정적인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PD마인드를 설파하며 더 많은 젊은이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이야기를 전파하는 그를 보며, 그가 시청자의 행복한 시간표를 진짜로 짜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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