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다큐 ‘백년전쟁’ 편성 RTV 중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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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방심위원들 “불법 음란물만큼 유해”…RTV “재심 청구”

민족문제연구소 제작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편성·방송한 RTV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 이하 방심위)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방심위는 25일 전체회의에서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편과 ‘프레이저 보고서’ 편에 대한 심의를 진행한 결과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1·2항, 제14조(객관성), 제20조(명예훼손 금지) 2항 등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법정제재인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처분을 결정했다. 야당 추천 위원 2인의 반대에도 박만 위원장을 포함한 여권 추천 위원 6인이 한 목소리로 중징계를 주장한 데 따른 것이다.

이승만·박정희 비판 ‘백년전쟁’에 與측 위원들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이날 회의에서 여권 추천 위원들은 RTV에서 편성한 <백년전쟁>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 편파·왜곡 방송이라고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1948년 미국 CIA(중앙정보국) 보고서를 분석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일·친미행적과 임시정부 재정권 장악 과정 등의 내용을 방송한 ‘두 얼굴의 이승만’ 편에 대해 엄광석 위원은 “문서 안에 분명히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있음에도 방송에선 그 부분을 빼고 악의적인 부분만 인용하고 편향적인 시각의 인물들만 인터뷰했다”며 “다큐멘터리의 기본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엄 위원은 해당 편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갱스터’, ‘플레이보이’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과 관련해 “초대 대통령을 모욕·저주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왜곡했다. 증오라는 이름의 먹물로 써내려 간 다큐멘터리”라고 비판했다. 또 “드라마에서 선정적인 언어를 사용했다고 과징금을 물릴 게 아니라,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청소년들에게 저주의 역사관을 심어주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과징금을 물리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박성희 위원도 “해당 프로그램이 전체 연령 시청가로 돼 있어서 역사 인식이 부족한 초등·중학생 등이 접할 수 있는데, 음란물만이 불법이 아니라 역사를 객관적으로 조명하지 않은 것도 유해하다”라고 주장, <백년전쟁>을 불법 음란물 이하의 수준으로 폄훼했다.

▲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민족문제연구소
그러나 야당 추천의 장낙인 위원은 “해당 다큐멘터리는 비밀 해제된 CIA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심의를 한다면 CIA 보고서에 나와 있지 않는 내용을, 그 내용을 왜곡해 보도했다는 게 입증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택곤 상임위원도 “(역사적 사실을) 일본의 비밀문서와 <독립신문>을 인용해 전하고 있는데, 내용이 불편하다 하더라고 공정성·객관성 등의 위반을 들어 단죄할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CIA 보고서와 과거 신문 보도 내용 등을 바탕으로 하는, 객관적 사실에 기반해 제작된 다큐멘터리라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해당 다큐멘터리가 퍼블릭 액세스 채널인 RTV를 통해 방송됐다는 점도 심의에 있어 감안할 점으로 꼽았다. 장낙인 위원은 “퍼블릭 액세스는 (제작한 이가) 자기 주장을 펼치는 프로그램으로, 제작자의 의도가 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며 “만약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에서 (공정성) 문제가 있다면 반대 주장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RTV 측에서 편성·방송을 요청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련의 부분을 고려할 때 <백년전쟁>의 내용은 논쟁의 영역일 순 있어도 심의 대상일 순 없다”라고 강조했다. 김택곤 상임위원과 장낙인 위원은 각각 ‘의견제시’와 ‘문제없음’ 의견을 밝혔다.

반면 여권 추천의 권혁부 부위원장은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이 방송심의규정 위에 군림하는 예외적인 프로그램일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권 부위원장은 “해당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일관되게 건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반대한 곳으로, 다큐멘터리 제작 시점 역시 지난해 11월 중순으로 누가 봐도 정치 선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백년전쟁>에서 인용한 신문 보도 등에 대해서도 “검증되지 않은 자료”라고 말했다.

박만 위원장 또한 “지난 역사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검증 없이 정확하지 않은 내용까지 전달하는 행태를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며 “정상적인 방송에서 이런 방송이 나갔다면 과징금이 마땅하나 RTV가 방송법 제70조 7항에서 정하는 시청자 참여방송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대로 방송을 해야 하는 한계를 고려해 한 단계 낮춘 ‘관계자 경고’ 및 ‘징계’ 제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당시 경제성장 배경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레이저 보고서’ 편에 대해서도 여야 추천 위원들의 의견은 엇갈렸는데, 여권 추천 위원들은 이 또한 ‘두 얼굴의 이승만’ 편과 같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권 추천 위원들은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한국의 경제성장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의해 주도됐다는 내용에 왜곡을 강하게 주장했는데, 최찬묵 위원은 “방송 내용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해 대한민국이 현재 이만큼 살고 있다는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여권 추천 위원들은 ‘프레이저 보고서’ 편에 대해서도 모두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처분을 주장했다.

RTV “‘백년전쟁’ 제작·방송이 왜 대선 개입인가. 방심위원들 월권” 비판 

반면 야권 추천의 김택곤 상임위원은 “관련 자료의 진위를 먼저 검토한 후 심의하자”며 ‘의결 보류’ 의견을, 장낙인 위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폄훼·비방한 게 아니라 프레이저 보고서 속에 담긴 미국의 시각을 반영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재평가 한 다큐멘터리인 만큼 문제도 없고 심의 대상도 될 수 없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결국 이날 심의에서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편과 ‘프레이저 보고서’ 편은 모두 여권 추천 위원들의 뜻에 따라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처분을 받게 됐다. 이에 대해 이주영 RTV 기획실장은 “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정적인 측면을) 얘기하는 게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좌파의 시각으로 (지난해) 대선에 개입하려는 의도로 해석되는지 모르겠다”며 “방심위원들, 특히 여권 추천 위원들이 프로그램 자체의 공정성이나 사실관계 등을 살피는 게 아니라 심의 권한을 넘어서는 주장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RTV 측은 방심위의 이번 심의 결과에 불복, 재심을 신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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