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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故 김종학 PD, ‘모래시계’ 그 후

끝까지 도전정신을 버리지 않았던 연출자 김승모 MBC PDl승인2013.07.31 02: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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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김종학 PD ⓒSBS  
▲ 故 김종학 PD ⓒSBS
고(故) 김종학 PD가 지난 23일 영면했다. 성남의 한 고시텔에서 그는 스스로 마지막 길을 선택했다. ‘드라마 거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방송계에 작지 않은 충격을 전해주었다.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유서에서 고인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후배 PD들이 혼을 담고 있는 모습에 내가 누(累)가 될까”라며 “혹시나 PD들에게 나쁜, 더러운 화살이 가지 않길 바란다”며 후배PD들을 걱정했다. 한류를 이끈 선봉장이었던 그의 고뇌가 얼마나 깊었는지 그의 죽음은 말했다. 1994년 <모래시계> 성공 이후 그의 양어깨에는 그 성공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짐이 올려 져 있었다.

1996년부터 지근거리에서 작품에 대한 고인의 열정을 지켜본 김승모 MBC 드라마국 PD의 기고 글로 그의 족적을 더듬어본다. 김종학 PD의 조연출로 방송계에 입문한 김승모 PD는 김종학 프로덕션 기획실장을 거쳐 2008년부터 MBC 드라마국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

 

제이콤 그리고 영화 ‘쿠데타’

고 김종학 감독과의 인연은 1996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모래시계> 흥행으로 당시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김 감독은 1995년 CJ그룹의 제안으로 제작사 ‘제이콤’을 설립했습니다. 김 감독과의 인연은 그곳 연출부로 입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모래시계>의 여진으로 김 감독의 사회적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김 감독이 언론사 선정 ‘한국을 이끌 30인’에 꼽힌 것도 바로 이즈음입니다. 사회적으로 ‘감독’ 이상의 위상에 오르고 다양한 제안을 받으면서 부담도 커졌지만, 본업에만 충실하려고 부단히 애썼던 김 감독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모래시계> 성공 이후 대기업과 손잡은 김 감독의 행보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한 CJ그룹이 미주 파트너로 드림웍스를, 아시아 파트너로 골든하베스트를 영입하면서 한국 측 파트너로 김종학 감독과 송지나 작가를 지목한 것입니다.

영화연출과 드라마 사전제작이 가능한 자금과 환경, 세계 시장과의 네트워크를 원했던 김종학 감독에게 CJ그룹 측의 제안은 또 한 번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김 감독은 제이콤을 설립하면서 드라마는 물론 영화와 애니메이션 인력도 대거 영입했습니다.

제이콤을 설립한 뒤 그는 영화 제작의 꿈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합니다. 영화 <쿠데타>는 김 감독이 가슴에 품은 첫 영화였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문민정부가 자리 잡으며 군부가 홀대받고 북한과의 화해무드가 급진전되자, 위기감과 모멸감을 느낀 군수뇌부가 쿠데타를 계획한다. 극비리에 유지해왔던 실미도에서 3명의 정예요원을 차출, 호남 출신의 유력대선후보를 암살, 남한정국을 극도의 혼란으로 몰아넣고 북한에 뒤집어씌워 남북관계를 급랭시킨 후 군부가 나선다….’

당시 조연출로 영화 제작에 투입됐던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모래시계> 이후 첫 작품이라 많은 이목이 쏠린 것은 물론 평생 꿈꿔온 영화작업이었기에 (거의 매일 영화 2편씩 보고 잠들던) 김종학 감독의 완성도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VFX, SFX, 미니어쳐의 완성도를 위해 호주와 할리우드의 업체와 스태프를 접촉, <에이리언1>, <스타워즈:제국의 역습>, <레옹> 등의 SFX를 담당했던 닉 얼더(Nick Allder)를 초빙, 기술자문을 받고 콘티작업을 했습니다. 톱스타 안성기와 함께 <모래시계>의 스타인 최민수와 이정재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대본연습을 비롯해 크랭크인 일정까지 잡았습니다. 하지만 제작비 등 여러 문제가 겹쳐 수차례 연기 끝에 제작은 중단됐습니다.

  ▲ SBS <모래시계> ⓒSBS  
▲ SBS <모래시계> ⓒSBS

 “김종학이니 돌파해 내야 한다”

그 이후 CJ그룹과의 관계가 끝이 난 김종학 감독은 1998년 ‘김종학프로덕션’을 설립하며 독립합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김종학 감독의 관심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남북의 젊은이들로 확장됩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톰 클랜시의 작품 같은 원작을 아쉬워하던 그에게 한태훈 작가의 소설 <백야 3.98>은 최고의 대안이었으며, 1989년 김성종 원작의 첩보물 <제 5열>을 연출하며 느꼈던 아쉬움과 한국적 첩보물에 대한 열망이 겹쳐 <백야 3.98>의 드라마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는 1997년 3월 모스필름 방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첫 방송이 1998년 8월이었으니 미니시리즈로는 엄청난 제작기간(1년 7개월)이 소요된 것입니다. 김 감독은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의 새로운 풍광, 첩보물다운 첨단영상, 실제 AK47과 미그기를 동원한 리얼한 전투씬과 전투기 비행장면, 전투기 콕핏 세트 등 완성도 높은 비주얼을 위해 많은 예산을 책정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시련은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해외촬영비가 급등해 결국 기술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많은 작품으로 <백야 3.98>은 그에게 남았습니다.

  ▲ <백야 3.98> ⓒSBS  
▲ <백야 3.98> ⓒSBS

2000년을 전후해 김종학 감독은 ‘하고 싶은 얘기, 다루고 싶은 시대’ 보단 ‘한국 드라마의 기술, 장르, 시장적 한계 확장’에 더 비중을 두는 듯했습니다. ‘이야기와 테마 부분은 이제 할 만큼 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사석에서 가끔 했습니다. ‘김종학만이 할 수 있는 무엇’ 또는 ‘김종학이니 돌파해 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백야 3.98>을 쓴 강은경 작가가 극본을 쓴 SBS 드라마 <고스트>(1999)는 새로운 TV호러물이었습니다. <고스트>는 주요 연출작 목록에선 종종 제외됐지만, ‘환타지성 장르물’이란 관점에선 2000년대 김종학 감독 작품의 시작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퇴마록’과 무협지에 열광했던 그가 ‘모래시계 감독’이란 무게감의 제약만 없었다면 보다 본격적으로 연출에 나섰을 지도 모를 아이템이었습니다.

  ▲ 유작이 된 <신의> 제작현장에서 배우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김종학 PD ⓒSBS  
▲ 유작이 된 <신의> 제작현장에서 배우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김종학 PD ⓒSBS
그의 도전 그리고 현실의 벽

김종학프로덕션의 제작 노하우가 축적되고 제작환경이 변하면서 김종학 감독의 고민은 아무리 성공해도 명확한 매출 상한선(방송사 지급액, 일본수출, 기타 아시아 시장, 협찬, OST 등)이 존재하는 드라마의 시장 한계를 넘는 것에 집중됐습니다.

판타지 요소를 도입해 ‘한 나라의 역사극’이라기보다 보편적인 ‘신화’의 느낌으로 접근, 다양한 국가의 시청자가 우리 역사에 기반을 둔 이야기를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길 바랐고, 판타지이기에 가능한 본격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를 구상했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영향을 받았으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보단 시기적으로 앞섰던 판타지 사극 TV시리즈 <태왕사신기>, 최초의 3D 미니시리즈를 꿈꿨던 <신의>는 그러한 목표로 탄생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 감독의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R&D 비용성의 손실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기존 수익모델과 아시아 시장만으로는 제작비 회수가 어려운 기획이었습니다.

‘명확한 근거를 갖고 더 치열하게 반대하고 설득했어야 했는데’라는 자책감을, ‘그래 봤자 어차피 소용없었다’라는 자기합리화로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이런 일이 생기니 혼란스럽습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김종학프로덕션을 떠나고 MBC로 자리를 옮긴 후 ‘넌 회사 나갔다고 연락도 없냐’는 핀잔과 섭섭함이 담긴 몇 번의 업무관련 전화 통화를 김 감독과 나누며 ‘힘든 상황 좀 정리되면 뵙자’고 시간을 끌다 이렇게 부고를 들었습니다. 유능하지도 충성스럽지도 살갑지도 못했던 제자이고 부하였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편하게 누리고 안주하며 살 수 있었지만, 끝까지 도전정신을 버리지 않았던 연출자였습니다. 가까이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그가 스케일 큰 액션 연출보다는 손짓과 눈빛으로 표현되는 디테일한 감정 연출에 더 능하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따스하고 소박한 멜로드라마가 기대되는 여린 감성과 소탈한 유머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해내야 할 이유보다 중단해도 될 핑계가 훨씬 많아져 어려운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 김종학 감독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지게 될 듯합니다.

 


 


김승모 MBC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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