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 ‘표절 시비’ 예능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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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사들이 가을 개편을 앞두고 기획 중인 예능 프로그램이 발표되자 기대가 아닌 논란이 뒤따랐다. KBS가 준비 중인 3~4명의 중견 여배우들이 여행을 떠나는 콘셉트의 <마마도>, 가정에 소홀했던 아빠들이 육아에 도전하는 관찰형 예능 <아빠의 자격(가제)>, 경찰관 도전 프로그램, 새로운 볼거리와 일상 탈출과 모험의 로망을 자극하는 요트 여행기에다가 합숙하면서 소방관이 되는 과정을 담은 SBS의 <심장이 뛴다>까지 올 하반기 우리 곁에 찾아올 새로운 예능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 줄 설명만 들어도 현재 인기리에 방송 중인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바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한 번도 전파를 타지 않은 프로그램을 표절과 아류로 단정해 몰아가는 것은 가혹하다. 하지만 기획의도만 들어도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꽃보다 할배>(tvN)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MBC) <정글의 법칙>(SBS) 등이 모두 신선함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는 점과 지금 준비 중인 예능 프로그램들과 달리 1대 1로 매칭되는 레퍼런스가 없다는 점에서 <마마도> 등이 유행에 편승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긴 어려워 보인다. 한 마디로 새로워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 <꽃보다 할배>(tvN)·<아빠 어디가><진짜 사나이>(MBC)·<정글의 법칙>(SBS) (사진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

재밌는 것은 이런 카피와 유행의 경계 선상에 있는 프로그램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비난도 일제히 뒤따르는 현상이다. 뼈아픈 이야기지만 예전부터 ‘참조와 커닝’ 사이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이 명멸해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 게임을 위주로 한 스튜디오 게임 쇼들은 일본 예능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슈퍼스타K>(Mnet)의 성공 이후 전 세계적으로 광풍이었던 서바이벌 쇼가 한반도에 상륙했으며, 최근 다큐멘터리 형식을 도입한 관찰형 예능까지 유행은 공유되었다.

지금 예능계에서 표절과 상도덕의 논란이 과거보다 훨씬 두드러지는 이유는 예능의 성격과 주체가 변화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유재석과 강호동으로 대변되는 예능 선수의 시대가 저물고 기획과 콘셉트의 차별화가 가장 중요한 변별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년 배우들이 여행가는 콘셉트에 아이돌 멤버들이나 예능 선수들을 캐스팅했다면 또 한편의 그저 그런 리얼 버라이어티가 되었을 것이다. 단 하나의 전환이 가져오는 힘이 요즘 예능의 추세이고, 이를 관장하는 것이 바로 연출자다.

이처럼 예능의 성공 공식이 출연진의 능력과 시너지에서 ‘새로운 무엇’을 발명하는 것으로 옮겨오다 보니 예측 가능한 성공은 더욱 막막해졌다. 확률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먹히는 기획을 적극적으로 참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엇이 성공하는 것인지 공식이 실종된 상황인지라 필사적인 필사다. 이런 흐름 속에서 카피와 유행의 경계에선 프로그램이 범람하고 있고, 그에 따른 논란이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요즘 시청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평가를 할 때 출연진보다 제작진의 능력과 역할을 언급한다. 마케팅 포인트 또한 ‘누가 출연하는가?’에서 ‘PD가 누구냐’로 바뀌고 있다. 기획 콘셉트와 스토리텔링을 맡은 연출자가 프로그램의 간판이자 메인인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시대에 프로그램이 신선하지 않으면 시청자들의 관심을 살 수 없고 다른 프로그램과 비슷하다면 반감을 사게 된다. 호감과 비호감이 신선함과 뻔뻔함으로 나뉘는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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