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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울산MBC ‘사람, 산’

새벽 5시 30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산 속. “기상! 기상! 일어나”라는 고함 소리에 출연자, 스태프 모두 푸석한 얼굴로 눈을 부비며 하나, 둘 잠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잠자리라야 공통 텐트지만. 이젠 거의 몸에 익은 습관적 행동으로 배낭과 카메라 장비를 챙기며 산행 준비를 마친다.
“자, 오늘 산행을 이어 갈 루트는……” 신영철 대장의 높은 톤은 아직 덜 깬 잠을 날려버린다. <사람, 산> 제작팀이 촬영 현장에서 하루를 여는 익숙한 모습이다.

▲ 울산MBC <사람,산> ⓒ울산MBC
계절 따라 다른 얼굴의 산

<사람, 산>이 방송을 시작한지도 1년 3개월이 지났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당시 주변에서 모두가 반대했다. “그 산이 그 산이고, 그 나무가 나무인데, 과연 방송거리 될까?” “일회성 다큐멘터리면 몰라도 레귤러 프로그램으로 제작할 때, 과연 끊임없이 방송 소재가 나올까” “일반 촬영과 달리 산 촬영은 힘든데 3개월을 버티기 힘들 거다” 등등. 따지고 보면 모두 맞는 이야기였다. 나름 타당한 분석이었다.

2011년 여름, 특집 <영남알프스 7봉을 오르다>를 제작하면서 이 아이템을 얻었다. 깊은 산중에서 마주했던 여러 봉우리와 계곡은 오전, 오후가 달랐고 계절, 날씨, 기온에 따라 나무, 돌, 바위, 하늘, 심지어 물빛까지 색상과 음영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산이 항상 그 자리에 그렇게 한 모습으로 있다는 건 고정관념이었다. 계절 따라 산 색감이 바뀌듯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모든 것이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 표정과 사람을 엮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이런 산의 생 날것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다룬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됐다.

드디어 힘들게 편성이 확정됐다. 작가와 스태프 모두 모여 <사람, 산> 만의 색깔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사람, 산>은 ‘산’이 주인공이라는 걸 전제하고 큰 원칙을 몇 가지 정했다.

△리얼 다큐로 하루 촬영해서 1회분을 제작한다. △제작비 절감차원에서 한 번 촬영갈 때 1박 2일로 2회분을 촬영한다. △출연진은 총 6명 내외로 대장 1명과 촬영지역의 지역 산악인 4~5명, 스토리가 있는 전문 산악인 1명으로 정하고 대장 외에 다른 출연자는 매회 바뀐다. △초대한 전문 산악인과 지역 산악인 사이에 산 이야기를 나누는 산사 토크를 진행한다.

 

▲ 울산MBC <사람, 산> ⓒ울산MBC

산이 있고 그들이 있다

기본 틀은 이렇게 정했지만 카메라 앵글 속 주인공들을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산행 시작부터 하산 할 때까지 출연진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 넘어지고 짜증내는 그 모든 것을 현장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그야말로 리얼 그 자체로. 차별화를 위하여 사찰이나 문화재는 가능한 외면하기로 했다. 많이 보아 온 영상이니까.

프로그램의 조각을 맞춰갔지만 걱정이 앞섰다. <산>을 주인공으로 하고 <사람>을 대입시키는 기본 원칙을 정하긴 했는데, 과연 생각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그것도 55분 분량인데……. 그리고 하루 촬영해서 1회분을 만든다는 게 욕심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된 것도 사실이다. 산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매주 반복되는 영상과 제작 형식이 지루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촬영에 들어가자 해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이 겹쳐 식상할 수도 있는 부분은 촬영지역의 지역 산악인들을 출연시킴으로서 해결되었다. 그러니까 매번 출연진들이 바뀌다보니 시청자들에게 매주 새로움을 주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지역 산악인들과 함께 산행을 함으로서 지역 산악회의 활성화를 꾀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 때로는 유명 산악인인 허영호, 엄홍길, 홍성택 등이 출연해 산행을 함께함으로서 산악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눈길까지 사로잡는데 효과를 주었다. ‘산사토크’ 시간에 그들만의 산 이야기, 삶의 얘기를 나눔으로써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또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제작의도에 공감한 아웃도어 업체에서 제작지원도 받을 수 있어 제작비에도 숨통을 틔었다.

지난해 5월 3일 첫 촬영이 시작됐다. 첫 촬영지는 땅 끝 마을이 있는 해남 두륜산과 달마산이었다. 땅 끝이라는 말은 “돌아서면 시작된다”는 뜻으로 전국의 ‘산’을 찾아 나선다는 상징적 의미도 갖고 있었다. 첫 촬영에는 산악 전문 잡지인 월간 ‘사람과 산’의 신영철 편집주간이 총 대장으로, 전문 산악인으로 허영호 대장이, 지역 산악인으로는 해남군청 산악회원들이 함께 산을 올랐다. 이날 두륜산 초입부에서 산행을 시작한 것이 벌써 1년 3개월 전이다.

▲ 울산MBC <사람, 산> ⓒ울산MBC

촬영만 들어가면 힘든 것도 잊는다

그렇게 시작한 방송이 지금까지 59회가 나갔다. 하루에도 몇 개의 산을 넘을 때도 있어 전국 유명한 산은 거의 다 갔다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태백산, 두륜산, 가야산, 월악산, 월출산뿐만 아니라 가거도, 비금도 같이 섬에 있는 산도 소개했다. 지난달 25일에는 일본 북 알프스를 촬영하고 돌아왔고, 오는 12일에는 히말라야 촬영 출장도 잡혀있다.

이렇게 살다보니 2~3일은 밖에서 잠을 잔다. 한 주는 헌팅, 그 다음 주는 촬영. 뫼비우스 띠처럼 이 일정은 무한반복이다. 한 달에 두 번은 힘든 산행을 한다. 그것도 분량과 영상미 때문에 해발 고도가 높은 산이다. 한 번 산행에 두 개 산 이상을 올라야 한다. 아마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1년을 넘게 이런 산행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출연자들을 쫒아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카메라 팀은 무릎 통증을 호소한다. 작가나 FD 역시 힘들다고 푸념하지만 촬영만 들어가면 모두 잊고 작업에만 몰두한다. 스태프들의 이런 노력이 있어 지난해 연말 MBC 계열사 작품 콘테스트에서 ‘촬영상’과 ‘작품상’을 받았다. <사람, 산>이 MBC 전국방송으로 편성돼 시청자들에게 선 보이게 된 것도 벌써 몇 달 지났다. 7개 MBC 계열사에서는 전국방송과 무관하게 자체 편성해 방송되고 있다. 또한 케이블 TV 3곳 에서도 <사람, 산>이 방송되는 호응도 얻었다.

▲ 김병주 울산MBC PD
우리는 오늘도 오른다. “왜”라는 물음은 전투 중인 나에게 정신적 사치로 들린다. 사명감이니,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 서라든지 하는 그럴싸한 포장은 더더욱 그렇다. 굳이 답을 한다면 ‘씨익’ 웃는 웃음으로 답할 것이다.

배낭을 메고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신영철 대장이 만든 신조어인 카톡(카메라 톡톡 뛰어서 먼저 앞으로가는 것), 아까맹키로(조금 전 상황을 다시 한 번) 빽도 (뒤로 되돌아가는 것)를 외치며 가파른 산을 오른다.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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