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다큐, 동정 아닌 포용으로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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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연합회· 미대사관, 미국 다큐 감독 초청 포럼 개최

한국 PD들과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들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을 주제로 만났다. 지난 26일부터 27일까지 양일간 강원도 영월에서 한국PD연합회, 주한 미국 대사관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PD교육원과 한국전파진흥협회가 주관한 ‘한미 다큐 포럼’ 에서다.

‘하나의 목표· 다양한 목소리’를 내건 이번 한미 다큐 포럼에서 확인된 건 미국에서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과 차별의 역사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주한 미대사관의 초청을 받아 포럼 강연에 나선 에릭 뉴델 감독과 주디 리프 감독은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작품을 2011년에 나란히 선보였다.

에릭 뉴델 감독의 영화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Lives Worth Living)는 1990년 미국 장애인법이 제정되기까지 장애인 인권 운동의 역사를 담은 작품이다. 프레드 페이를 비롯해 인권 운동에 참여했던 장애인들과 활동가, 정치인들의 증언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정면에서 다룬다. 이 영화는 27일까지 열리는 장애인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뉴델 감독은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를 제작한 배경에 대해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를 여러 번 제작했지만 한 시상식장에서 프레드 페이를 만나기 전까지 장애인법안이 통과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며 “장애인 인권 운동의 역사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한미 다큐 포럼에 초청된 에릭 뉴델 감독(왼쪽)과 주디 리프 감독.ⓒPD저널
주디 리프 감독이 연출한 <데프 잼>(DEAF JAM)은 10대 청각장애자인 아테나 바로스키가 시낭송 대회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다. 시낭송 대회에서 풍부한 감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주인공 아테나 바로스키의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두 영화는 모두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이 아닌 사회의 일원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를 감상한 뒤에는 장애인에 대한 미국 내의 인식과 장애인 문제를 다룬 감독의 고민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김무성 KBS PD는 “장애인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경험이 한두번 있는데 저도 모르게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연대와 동정 사이에서 기준을 잡기 어려웠다”고 경험을 털어놨다.

뉴델 감독은 “미국 인권 운동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게 장애인들에게 동정심을 가져서는 안 되고, 동정심은 그들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며 “이 영화를 찍으면서 장애인을 한명의 사람으로 보게 됐다”라고 답했다.

리프 감독은 “언론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이 장애인 문제를 다룰 때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장점을 이끌어내고 강조해야 하는 것”이라며 “청각장애인들은 오히려 멀리 있는 사람과 의사전달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작품에 포함한다면 장애인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박건식 MBC PD는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에서 묘사된 미국의 장애인 인권과 한국의 장애인 인권 운동은 시간 차이만 존재할 뿐 흡사하다”며 “하지만 한국에선 미국 장애인 인권법안 처리 과정에서처럼 정치권의 노력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좌절감도 크고 인권 운동의 양상이 격렬했다”고 한국의 장애인 인권 운동을 평가했다.

그는 이어 영화 <도가니>에서 보여주듯 한국에선 여전히 장애인이 차별과 탄압의 피해자로 묘사된 점을 지적하며 “세계적인 추세는 장애인의 독립적인 삶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사회적인 비판 여론에도 장애인 시설에만 기부금이 몰리고 있다“는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장애인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동원된 세심한 표현 기법도 한국 PD들의 눈길을 끌었다. <데프 잼>은 수화로 대화하는 청각장애인들을 카메라 두 대를 동원해 담아냈고, 역동적인 자막과 음악을 삽입해 음향 공백을 채웠다.

▲ 영화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내레이션을 배제해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 병상에 누워있는 주인공 프레드 페이를 인터뷰하면서 시종일관 거울에 비친 모습을 영상에 담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뉴델 감독은 내레이션을 배제한 이유에 대해선 “지금까지 제 영화에서 주요 요소였던 내레이션을 이번 영화에서는 철저하게 배제했는데, 장애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하나의 메시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고, 거울에 비친 주인공의 모습은 “프레드 페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대로 인생은 아름다워>의 경우 시위를 하는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접근한 스토리텔링 방식이 사회적인 찬반 논란이 있는 주제에도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도 나왔다. 뉴델 감독은 “장애인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목격자’의 말을 듣는 게 최고의 스토리텔링이라고 봤다”며 “저널리즘의 원칙에 따라 사실을 확인한다면 논란이 있는 주제라도 이는 유효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작품이 됐지만 두 영화 모두 탄생이 순탄치 않았다. 촬영과 제작비 조달, 배급까지 곳곳에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열악한 제작 환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리프 감독은 “독립 방송사에서 제작비의 3분의 2정도 지원을 받았는데 이 과정만 4년 정도가 걸렸다”며 “MTV 등에도 문을 두드렸지만 ‘영화를 가져오면 봐주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제작 지원을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지원받은 자금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는 김승희 독립 PD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 <데프 잼>.
뉴델 감독이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를 자체 배급하기로 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땀 흘려 제작한 작품인데 배급사가 영화 수익의 75%를 가져가는 건 부당하다”며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에는 인터넷에만 작품이 노출된다면 스스로 배급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1박 2일로 진행된 이번 한미 다큐 포럼엔 지상파 방송사 PD와 독립 PD, 한국 PD교육원생 50여명이 참석했다. 홍진표 한국PD연합회장은 “1박 2일동안 진행된 한미 다큐 포럼이 기대했던 것보다 관심과 참여가 높아 만족스럽다”며 “앞으로도 한국과 미국의 다큐 제작자들이 만나 고민과 관심을 서로 나누는 자리가 지속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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