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대로”…‘이중잣대’ 표적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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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서도 계속되는 방통심의위 ‘공정성’ 논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 이하 방심위)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정권 입맛에 맞춰 표적·과잉심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이런 심의를 하며 방심위가 특정 방송심의 조항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유사한 사안을 두고 조항의 적용을 달리하며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해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는 사안은 KBS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9월 7일 방송)에 대한 심의다. 해당 편은 국가정보원의 무리한 간첩 수사를 소재로 한 것으로 대선개입 논란으로 개혁 요구를 받고 있는 국정원, 즉 정권 입장에선 불편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

방심위는 현재 <추적60분> 해당 편에 대해 오는 16일 제작진 의견진술을 예정하고 있는데, 이는 현행법 상 중징계 의결 전 밟아야 하는 절차다. 실제로 지난 9월 24일 방심위 산하 보도교양방송특별위원회는 해당 편에 대해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제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등의 위반을 지적하며 최소 ‘주의’ 이상의 법정제재가 필요하다는 데 다수 위원의 의견을 모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일 한국PD연합회와 한국언론정보학회 공동 주최로 열린 심의 관련 세미나에서 박건식 MBC PD(MBC PD협회장)는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 조항이 ‘이중 검열’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적60분>과 <PD수첩>(MBC) 등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방송사 내부에선 비보도 프로그램으로 분류하며 사전 심의를 받도록 하는데, 방심위에선 현행 방송법 상 뉴스 보도와 논평에만 적용 가능한 공정성 조항을 이들 프로그램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판 중인 사건을 방송할 수 없도록 규정한 방송심의규정 제11조에 대해서도 박 PD는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 PD는 이어 “이 규정대로라면 방송에서 보도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심층 보도를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무조건 소송부터 거는 등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현직 방심위원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히려 이런 식의 심의가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일련의 심의규정이 사안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것도 문제다. 실례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나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사건은 현재 재판에 계류 중임에도 연일 방송·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지만, 방심위는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아예 재판 중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심의 사례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하고 시민방송 RTV에서 방송한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프레이저 보고서(제1부)’ 편에 대해 방심위는 지난 7월 25일 방송심의규정의 객관성·공정성·명예훼손 금지 조항 위반 혐의로 중징계인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조치를 의결했다. 이들 방송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미·친일 행적 등을 다루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부(CIA) 보고서 등을 토대로 제작된 <백년전쟁>에 대해 이승만기념재단은 보고서가 멋대로 편집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방심위는 이런 과정 속 진행한 심의에서 제작 주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 의견진술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당시 시민방송 RTV 관계자는 “<백년전쟁>을 놓고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기에 방심위의 공정성·객관성 등에 대한 심의는 매우 중요했다”고 말했다.

또 방심위는 당시 심의에서 <백년전쟁> 방송 내용에 반대하는 측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며 공정성 위반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는 방심위가 지난 2011년 7월 21일 전체회의에서 친일파 백선엽 장군의 전쟁 영웅적 면모만을 부각해 논란이 된 KBS 다큐멘터리 <전쟁과 군인>에 대해 ‘문제없음’ 결정을 내린 것과도 비교되는 부분이다. 당시 여당 측의 한 위원은 “(한국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 덕에 살았는데, 좀 미화한들 무슨 문제냐”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시민방송 RTV는 방심위 제재에 납득할 수 없다며 재심을 청구한 상황으로, 방심위는 오는 10일 전체회의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방심위는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인터뷰를 방송한 CBS <김현정의 뉴스쇼>(8월 30일 방송)에 대해서도 방송심의규정 제14조(객관성)와 제17조(오보정정), 제23조(범죄사건 보도 등) 4항 등의 위반을 주장하며 중징계를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재연 의원이 당시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문제 삼고 있는 서울 합정동 모임 참석 여부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을 그대로 방송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방송에서 진행자는 수차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질문을 하고 반대 측에 있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인터뷰를 했을 뿐 아니라, 방송 이후 김재연 의원 발언에 거짓이 있었다고 알리며 정정을 했다. 그럼에도 방심위는 8일 방송심의 소위원회를 열어 제작진 의견진술을 결정했다.

일련의 심의와 관련해 홍진표 한국PD연합회장은 “현재 방송심의가 이중 잣대로 적용돼 (같은 사안을 두고도) 한 쪽에 대해선 징계를 하고 다른 쪽에 대해선 문제없을 결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같은 문제를 공론화 해 장기적으로 방송법상의 독소조항을 삭제 또는 면제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팀장은 “방송 심의가 실제로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보다 오히려 방송의 공적 책임을 달성하는 데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최소한의 심의를 유지하되 내용은 자율규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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