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갈등 이슈 보도 가이드라인 필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론단체 밀양 사태 보도 문제점 토론회

“백날 찍어 가봐야 기사 한 줄 제대로 내보내지 않을 거 아니냐.” (한 밀양 주민의 발언)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남 밀양 초고압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지 16일로 보름을 맞았다. 그러나 언론들이 주민 간 대립만 부각하고, ‘외부 세력론’을 내세워  ‘편가르기식’ 보도로 일관해 밀양 송전탑 갈등의 제대로 짚어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책사업을 둘러싼 사회 갈등 이슈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노조 등이 16일 오전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칼슨홀에서 ‘밀양 송전탑을 보도하는 언론의 양심과 역할’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밀양 송전탑 문제의 언론 보도 행태의 문제점 등을 짚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병남 강원대 언론학 박사는 “주요 일간지와 방송 뉴스는 주민과 경찰의 대치 상황을 ‘갈등 대치’와 ‘폭력’ 프레임으로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노조 등이 16일 오전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칼슨홀에서 ‘밀양 송전탑을 보도하는 언론의 양심과 역할’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밀양 송전탑 문제의 본질과 쟁점의 형성을 비롯해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짚고 있다.ⓒPD저널

자료에 따르면 주요 일간지들은 한전의 공사 재개 전후인 지난 2일부터 14일까지 밀양 송전탑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한겨레> 18건, <동아일보> 12건, <경향신문> 11건, <조선일보> 10건, <중앙일보> 4건 등으로 ‘갈등 대치와 폭력 난동’에 초점을 맞춘 기사가 쏟아졌다.  이와 별도로 이번 사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담은 기사는 <경향>, <한겨레>이 각각 6건, 5건을 내보냈고, <조선>·<중앙>은 0건, <동아>는 단 1건에 그쳤다.

지상파 방송 3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1일부터 14일까지 KBS는 10건, MBC는 6건, SBS는 5건을 내보냈지만 한전과 주민 간의 갈등 상황이 주를 이뤘다. “반대 측 주민들은 4개 면 현장 곳곳에서 경찰과 팽팽하게 대치했다”(MBC <뉴스데스크> 10월 1일), “밀양 송전선로 반대에는 주민 외에도 야권, 환경, 노동단체와 시민단체가 대거 들어와 곳곳에서 경찰력과 부딪혔다”(KBS <뉴스9> 10월 2일), “주민과 시민단체, 종교계 인사 등 100여명이 합세해 저지하며 충돌이 발생했다”(SBS <8뉴스> 10월 2일)  등이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들은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이유를 면밀히 분석하기 보다는 오히려 ‘외부인’의 개입을 강조하는 프레임으로 보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료에 따르면 MBC는 “밀양 송전탑 반대시위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들은 보라색 조끼차림 통진당원들…정작 현지주민보다 외부인들이 훨씬 많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행위 주제를 주민보다 ‘외지인’으로 강조했고, 주민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 자료를 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지난 2일자 KBS <뉴스 9> 리포트 (위), 지난 4일자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아래) ⓒKBS, MBC

이같은 보도에 대해 이은정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밀양 주민들이 외부세력에 호도돼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것처럼 보도됐다”며 “제주 강정마을, 용산 참사, 평택 대추리 등 국책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주민들의 반대 투쟁이 있을 때마다 언론에서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외부세력’ 등 편가르기식 보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봉화 경남도민일보 노조지부장은 “송전탑 문제는 탈핵 등 에너지 문제의 본질을 건드릴 뿐 아니라 국책사업이 약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며 ““지역언론으로서 끊임없이 송전탑 문제를 보도해왔음에도 (메이저 언론의 보도를 보면)여론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리포트에 포함된 인터뷰에서도 균형감을 잃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박사는 “방송 3사의 당사자인터뷰 특성에서도 한전 관계자의 인터뷰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인상을 준데 비해 밀양 주민의 의견을 담은 인터뷰는 감정적인 내용을 전달했다”며 “현장 주민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했지만 갈등 사안에 대해 보도에서는 갈등의 원인과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언론의 책임을 외면한 것”이라고 말했다.

▲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침해감시단이 지난 10일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 근처인 부북면 126번 현장을 방문했으나 통행 제한을 당하고 있는 모습. ⓒ인권운동사랑방

이처럼 국책사업과 관련해 지역주민과의 갈등이 반복적으로 빚어지는 상황에서 언론사들이 왜곡된 방향으로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 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갈등 이슈 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박사는 “언론의 취재원칙과 쌍방 이해관계자의 의견 전달법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한국기자협회의 재난보도준칙처럼 갈등 이슈 보도의 경우 사안의 특성을 감안해 정확한 데이터나 사실을 중시하도록 언론사의 내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