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의 전교조 ‘진상’…수수방관 공영방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도비평] 전교조 ‘법외노조’ 선택 이유·국제 권고 ‘배제’

대선을 사흘 앞둔 지난해 12월 16일 마지막 대선후보 초청 TV토론 당시 여당의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이념교육, 시국선언, 민주노동당 불법 가입 등으로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트린” 조직이라고 말이다. 당시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전교조 위원장 출신 이수호 후보와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가 유세장에서 함께한 데 대한 공세를 위한 발언으로, 전교조에 대한 박 대통령의 깊은 거부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교조를 불법의, 이념(빨갱이) 단체로 ‘낙인’ 찍은 발언에 대해 이수호 후보는 다음날인 12월 17일 지방교육자치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을 주장하며 박 대통령을 서울시교육청에 고발했고, 민주노총과 전교조도 비판 성명과 사과를 촉구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을 생중계했던 지상파 방송에선 일련의 항의와 문제제기엔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전교조가 법외노조로의 선택을 강요받은 지금,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 10월 24일 KBS <뉴스9> 25번째 리포트 ‘간추린 뉴스’ ⓒKBS
ILO 개입 등 ‘글로벌 스탠더드’ 외면하는 언론 

지난 9월 23일 고용노동부(장관 방하남)는 전교조 앞으로 한 통의 공문을 보냈다. 해직 교원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는 규약을 개정하지 않으면 노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시대에 따라 야권과 여권을 오갔지만 한 번도 유력 정치인이 아니었던 시절이 없던 박 대통령이 주야장천 교육계의 ‘해악’으로 취급해온 전교조를, 노동부가 혹자의 말마따나 ‘진상’하겠다며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9인의 해직자를 솎아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6만 명에 대한 조합원 자격을 정지하겠다는 것인 만큼, 근거의 타당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메인뉴스에선 근거의 타당성을 따지기는커녕, 관련 소식조차 전하지 않았다. SBS <8뉴스>만이 9월 24일에 관련 보도를 배치했지만 “전교조 조합원 가운데 해직자를 정리하라는 정부의 최후 통첩에 대해 전교조가 강력하게 반발했다”는데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8뉴스>는 당시 보도에서 “전교조 규약이 현직 교원만 노조원으로 본다는 교원노조법에 위배된다”는 노동부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며 “전교조가 규약을 고치지 않을 경우 합법화 14년 만에 법외노조가 돼 단체협약 교섭권 등이 박탈되고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원금도 받을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교조가 ‘왜’ 반발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없었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의 “노동기본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반(反)노동의 선전포고”라는 발언을 전하긴 했지만, 이 발언만으로는 ‘법’을 근거로 내세운 노동부와 비교할 때 막연한 ‘주장’처럼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0일 <한겨레> 8면 기사를 보면 상황은 다르다.

기사에 따르면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부가 전교조에 해직자를 정리하라며 근거로 들었던 법 조항 개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요구하는 문서를 방하남 장관에게 보냈다. 앞서 ILO는 2012년 3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 권한은 노동조합에 있으며, 해고자 가입을 인정하는 규약이 노동조합의 설립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는 아니다”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는데, 이 같은 권고를 한 횟수만도 무려 13차례에 이른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15개 국가 교원단체들도 조합원 자격을 노조가 정하고 있는 자국 상황을 알리면서 “국제기준을 준수하라”는 항의 서한을 최근 청와대와 해당 단체 소속 국가의 한국대사관에 전달했다.

실제로 노동부는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2항을 근거로 해직자의 노조원 자격을 박탈하라는 시정명령을 듣지 않으면 노조 아님을 통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모법인 노동조합법에는 이미 설립된 노조의 설립을 취소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 규정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가 지난 22일 전교조에 대한 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 계획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2항의 삭제를 거듭 권고한 이유이기도 하다.

▲ 10월 21일 MBC <뉴스데스크> 17번째 리포트 ⓒMBC
전교조 ‘법외노조’ 논란, 간추린 소식으로 전하는 KBS

그러나 해직자를 구실삼아 정부가 전교조에 선택을 강요한 한 달 동안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에선 전교조가 왜 해직자 9인을 솎아내는 대신 ‘법외노조’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대표 공영방송이라는 KBS에서 이런 모습은 특히 두드러졌는데, KBS의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 지난 한 달 동안 전교조 관련 소식을 그나마 구체적으로 전한 건 지난 19일 단 하루뿐이다. 당시 <뉴스9>는 ‘앵커&리포트’ 코너에서 전교조가 총투표를 통해 해직자를 조합원에서 배제하라는 노동부의 시정명령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음을 전했다. 하지만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에 대한 이유는 없이 총투표 결과와 법외노조를 선택함으로써 잃게 될 권한의 내용에만 집중했다.

전교조는 총투표 이후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법외노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을 밝혔지만 <뉴스9>는 해당 소식을 ‘간추린 단신’ 코너에서 한 줄로 전하는 데 그쳤고, 정부가 전교조에 법외노조임을 공식 통보한 지난 24일에도 마찬가지 보도 모습을 보였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19일과 21일 전교조 총투표 결과와 기자회견 관련 보도를 각각 4번째와 17번째에 배치하며 <뉴스9>보다는 주요하게 관련 사안을 다뤘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특히 21일 보도에선 방하남 노동부 장관의 “전교조를 없애라, 이렇게 한 게 아니고 법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이라는 발언을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ILO는 물론 국가인권위로부터 삭제 권고를 받은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2항의 문제를 사실상 묻어 버렸다.

해직자를 노조원으로 받아들일지 여부는 노조가 정할 일로, 그로 인해 노조 설립을 취소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지적이 나라 안팎에서 잇따르고 있지만, 정부는 아랑곳않고 언론은 눈을 감는다. 정부까지 나서 글로벌 미디어 육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국경없는기자회 등 국제 언론단체에서 산정하는 언론자유 순위가 계속 하락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