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빨래집게로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운다?

|contsmark0|“honte! 프랑스인인 것이 부끄럽다!”7년만에 실시된 프랑스 대통령선거 1차 투표일인 지난 4월 21일 밤, 바스티유광장에 몰려든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분노와 치욕에 떨며 써 붙인 구호였다. 우파인 시락대통령과 좌파인 죠스팽총리가 결선투표에 나갈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프랑스 제5공화국 탄생이래 처음으로 극우파인 국민전선의 쟝 마리 르펜이 결선에 진출하게되자, 온 프랑스가 충격에 휩싸인 것이다. 부활절휴가로 애들과 남편을 멀리 떠나보내고, 홀로 tv를 시청하고 있던 나도 깜짝 놀랐다. 재빨리 인터넷으로 르몽드를 확인하니, “이변! 대재앙!”이란 뜻의 “seisme”이 헤드라인으로 뽑혀있었다.
|contsmark1|그 날부터 결선투표일인 5월 5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프랑스 전국에서 극우파 르펜저지와 투표참여를 호소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좌파들은 평생 처음 우파에 표를 던지게 될 것이라며, 이는 시락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파시즘을 막고 프랑스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청개구리적인 자기반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contsmark2|연일 tv에서는 극우반대 시위뉴스가 쏟아졌다. 보신탕반대로 유명한 브릿지트 바르도도 소속당원으로 있는 국민전선의 르펜은 히틀러의 가스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인물로, 대통령이 되면 바로 유럽연합을 탈퇴하고 유로화대신 프랑화로 돌아가겠다는 등의 공약을 발표했다.(유럽의 이웃 나라 출장시 유로화가 얼마나 편리한 지 체감하고 있는 내가 듣기엔 무척 짜증스럽고 시대를 역행하는 공약!)
|contsmark3|며칠 후 결선투표때 빨래집게로 코를 막고, 고무장갑을 끼고 투표장에 가자는 운동도 벌어졌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극우파 국민전선의 세균(?)에 감염될까까봐 투표장에 이런 차림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contsmark4|
|contsmark5|95년 대선때도 맞붙었던 두 인물-시락과 죠스팽의 재대결로 별다른 이슈없이 진행되던 이번 프랑스대선을 놓고, 과연 ‘어떤 주제로’ <세계는 지금> 아이템으로 다룰까 고민했던 기억이 떠 올랐다. 역대 대선사상 최고 출마를 기록한 4명의 여성대권후보들에 초점을 맞춰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뒤떨어졌던 프랑스 여성정치의 변화와 이번 대선의 주요이슈를 정리하는 쪽으로 프로그램의 방향을 잡았던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면으로 대선을 다뤘더라면, 나도 1차투표 결과와 빗나가는 말들을 쏟아냈을텐데. 생각만해도 아찔!
|contsmark6|5월 5일 결선투표날! <세계는 지금> 답사차 브뤼셀로 떠났던 차를 몰고 프랑스 국경을 넘어오던 중 라디오뉴스를 켜니 82.21%에 이르는 역대 최고의 지지율로 시락이 재선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투표기권율은 1차 때보다 훨씬 낮은 20.29%로, 이는 우파의 승리가 아니라 프랑스 국민 전체의 승리라는 코멘트와 함께.
|contsmark7|그 날 밤 tv에선 레퓌블릭크광장에서 진행된 새대통령 시락의 첫 연설과 우파지지자들의 축제무대가 중계되었고, 2㎞남짓 떨어진 바스티유광장에서 좌파지지자들이 6월 총선에서 만회를 다짐하는 모습도 번갈아 화면을 메우고 있었다. 부활절 휴가 중에도 고등학생과 젊은층이 주축이 돼 펼쳤던 1차 투표 후의 극우파 반대집회, 그리고 결선투표를 보면서, 그래도 프랑스의 정신은 살아있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수많은 스펙트럼의 인종들이 득실대는 파리에서의 삶이 앞으로 만만치 않겠구나하는 우려가 교차한다. 그런데 빨래집게를 코에 꽂고 투표하면, 프랑스의 자존심이 다시 세워지나요?
|contsmark8|예미란kbs 파리pd특파원
|contsmark9||contsmark10|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