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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정치의 함정과 한국언론

|contsmark0|피버노바가 몰고 온 월드컵 열풍 속에서 지방선거가 치뤄졌다. 민주당의 수도권 괴멸과 완전 호남당화, 노풍의 무력화와 진보정당 약체론이 재확인된 반면 ‘보수’ ‘주류’를 자처해온 한나라당이 전국적 압승을 이뤘다. 지난 4월 세계를 놀라게 했던 프랑스 대선에 이어 축구공을 매개로 한 한국식 ‘탈정치의 정치’는 또 한번 우익의 득세로 귀결되고 말았다.
|contsmark1|물론 한국판 우경화의 일차적 원인은 낡은 정치 그 자체에 있다. 소위 ‘3홍 비리’와 집권세력의 안일한 대응, 그 틈을 탄 거대 야당의 기민한(?) 정략… 유권자들의 탈정치화는 분명 비속한 정치과잉 사회에 대한 거부의 표현이었음에 틀림없다.
|contsmark2|여기에 갖가지 몰입의 요소를 두루 갖춘 월드컵이라는 축제가 결합되었으니! 사실 항상 ‘싸우며 일하고 일하며 싸워온’ 병영사회 속에서, 새벽 종이 울리면 새마을 가꾸기에 내몰려온 압축성장 사회 속에서 대중의 ‘놀 권리’가 요즘처럼 존중되어 본 적이 있었던가!
|contsmark3|어찌 보면 48%가 투표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가 보여준 이 ‘선진국형(?) 정치현상’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그 단적인 예가 ‘반미 응원’은 안되며 ‘순수하게’경기를 즐기기만 하라고 필사적으로 ‘완벽한 탈정치화’를 가르쳤던 이 나라 언론들의 행태다.
|contsmark4|어떤 형태의 응원을 하건 스포츠에 여하한 사회 정치적 의미를 결부시키건 그것은 그 자체로서 자연스러운 사회의식의 발로일 뿐인데도 이 나라의 방송 그리고 조·중·동은 약속이나 한 듯 자의적으로 금기를 설정하고 국민모두에게 그들의 기준에 맞춰 자기검열을 내면화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contsmark5|그 뿐인가? 전 대회 우승팀 프랑스는 사실상 다국적 외인구단이고 프랑스인이 세네갈 감독이 돼 그 팀에 맞서 싸우고, 더구나 한국의 감독도 네델란드인이고 거의 모든 나라 선수들이 평소 같은 유럽리그에서 뛰고 있는 세계화의 현실을 놓고도 오직 낡은 ‘영토적 민족주의’의 틀로써만 이 축제를 바라볼 것을 유도하고 있다.
|contsmark6|화려한 축제의 어두운 이면 - 과잉 단속으로 생존의 위기에 몰려있는 노점상, 여전히 진행되는 노동탄압,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 - 은 그 존재마저 깡그리 부인된 지 오래다.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contsmark7|신자유주의가 진행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지방자치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번 선거결과는 향후 우리 사회의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차분히 생각해 볼 어떤 계기도 우리 언론은 제공하지 않았다. 투표일에 임박해서야 ‘투표도 합시다’라고 면피성의 공허한 외침을 몇 번 반복했을 뿐이다.
|contsmark8|분명 모든 책임이 언론에게만 있지는 않다. 단지 조성된 상황에 동조했을 뿐이라는 변명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탈정치화한 상황 속에서도 정치는 지속되지 않는가? 진보적 지향은 사회에 대한 구조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만 형성될 수 있으며 의식의 단순성은 항상 현상유지 내지는 보수로 귀결되어오지 않았는가? 반미응원은 안된다는 등 한국언론식 순수주의야 말로 ‘be the reds’가 내포한 진보성의 발현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를 냉철히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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