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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총동원령과 방송의 전체주의

|contsmark0|1970년대, 우리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에는 21세기의 첫 월드컵 못지 않은 국가적 대사가 여러 번 있었다.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방송은 ‘큰 일’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contsmark1|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tv를 켜면, 시청 가능한 3개의 어떤 채널을 돌려도 똑같은 그림에, 비슷한 톤의 아나운서 중계로, 국가와 민족의 안위를 걱정하며 조국의 근대화를 향해 매진하자는 근엄한 지도자의 풍채와 음성이 나왔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 선거 중계방송’.. 그밖에도 최고지도자가 주연을 맡은 여러 이벤트가 똑 같이 3개의 채널을 점거했었다.
|contsmark2|30년이 지난 지금, 화면이 ‘흑백’에서 ‘초록빛’으로 바뀐 채, 컷 하나 다르지 않은 그림의 4개 채널 전파 타기가 장장 20일간 계속되고 있다. 준비 기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두 달간, 모든 프로그램을, 축구와 관련해 ‘잔디밭 위’와 ‘잔디밭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채우고, 똑 같은 내용을 뉴스와 교양, 시사, 오락 프로그램에서 단순 반복 재생산하면서, 우리의 자랑스런 방송은 국민과 시청자에게 ‘월드컵 총동원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contsmark3|1970년대의 방송 관계자들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방송 전체주의’에 대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독재정권의 통제와 감시, 격렬한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국민 통합을 이뤄야한다는 시대적 사명감, 방송사의 존속을 위한 자발적인 의지 등등, 그들에겐 내밀 수 있는 오리발이 몇 족은 됐다.
|contsmark4|그러나 지금, 방송에 몸담고 있는 우리가 핑계 댈 무덤은 어디에도 없다. 월드컵을 통한 갈등 해소와 국민 통합? 경기 부양? 세계 속에 한국의 위상 재정립? 월드컵 중계권료가 워낙 비싸서 본전 뽑으려고? 이런 낯 뜨거운 둔사(遁辭)는 더 이상 하지 말자. 세상 물정 모르는 숙맥이 아닌 다음에야, 광고 많이 팔아 ‘돈’ 벌려고 월드컵으로 도배질 했다는 걸 다 아니까.
|contsmark5|70년대의 ‘방송 전체주의’가 국가권력의 채널 독과점에 의한 것이었다면, 21세기형의 그것은 방송자본의 생존 논리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 권력과 교묘하게 연결돼 있다. 연예인이 입고 나온 티셔츠의 상표에는 간접광고다 뭐다 하면서 서슬 푸르게 나오던 방송관련 국가 기관들이 방송 3사의 이런 무지막지한 중계 편성에는 별 대응을 안 하는 걸 보면.
|contsmark6|지난 한 달 간 우리 사회의 그 수많은 다양한 목소리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니, 어디선가 아우성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 중요한 매체들이 귀를 닫아버렸다.
|contsmark7|사회와 권력에 대한 비판적 감시 기능을 포기한 채, 축구 관련 아이템으로 넘치는 방송 3사의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을 보라. 방송이 앞장서서 조성한 이런 비이성적인 분위기는 축구와 관련 없이 변화, 발전하는 세계의 흐름으로부터 국민들을 차단한다. 이렇게 팽팽 돌아가는 세상에서 한 달 동안이나!!
|contsmark8|방송사는 엄청난 흑자를, 그 직원들은 보너스를 얻고 받겠지만, 이 사회와 시청자는 세상을 정확하게 내다볼 수 있는 창을 오랫동안 잃었다. 만약 공중파 방송 3사에 제대로 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 있다면, ‘2002 월드컵’ 방송의 과오를 철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 총동원령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흽쓸려 버린 우리들도 과연 방송의 역할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자문해야 한다. 세상은 다 축구장의 초록빛이 아니다.
|contsmark9|손현철kbs pd협회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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