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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이 만난 사람 4 - 강준만
강준만의 분노와 정열

|contsmark0|이번호 주철환이 만난 사람은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다.‘김대중 죽이기’, ‘김영삼 이데올로기’,‘한국언론과 여론 조작’ 등의 책에서부터 최근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는 ‘인물과 사상’까지 그의 정력적인 글쓰기로 인해 이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의 유명인사로 인구에 회자되는 강준만 교수.그의 예리한 비판의식과 거침없는 독설은 어디서 기인하는지, 정치와 지식인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엇인지 그의 책을 통해서가 아닌 그의 ‘싱싱한’ 말로 들었다. <편집자>
|contsmark1|문단 너댓을 이리저리 섞어놓은 후 문맥의 흐름에 맞게 배열하라는 식의 질문은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시험에서 낯설지 않게 대해 왔을 것이다. 문단 (가)와 문단 (나)를 잇는 접속어로 어떤 것이 적당한지 고르라는 문제 또한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며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어 혹은 주제어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 역시 수도 없이 부딪친 기억이 있을 것이다.강준만 교수를 만나라는 프로듀서연합회의 특명(?)은 왠지 모를 기대감으로 들뜨게 하면서도 한편 절반 가량의 불안감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연작으로 내는 ‘인물과 사상’의 표지 우측 상단에 적힌 경고문이 마음에 걸린 때문이다. 거기엔 이렇게 씌어 있다.“지식인이여 가면을 벗자”90년대 이후 그가 종횡무진 토해낸(?) 글들의 흐름에서 내가 찾아낸 두 개의 핵심어는 분노와 정열이다. 내가 그를 직접 만나서 확인해야 할 일은 그 두 단어를, 아니 정서의 흐름을 어떤 접속어로 연결짓느냐 하는 것이다.그를 만나러 회사를 나서기 전 출연자 섭외를 위해 상대편 핸드폰 번호를 부지런히 눌렀는데 그때마다 똑같은 답변이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다.“죄송합니다. 연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나는 그와 대면하기 전 약 십분 동안 그와 내가 만약 ‘연결’이 안 되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그가 너무 ‘과격하게’ 이야기하고 내가 너무 ‘온건하게’ 반응한 나머지 “연결이 안 되고 있다”는 메시지만 울리게 되면 어쩔까 하는 게 나의 소박한 근심이었다.사실 그와 나는 이번이 첫 번째 만남이 아니다. 몇 년 전인가 방송개발원에서 주최한 세미나가 춘천에서 1박 2일로 열린 적이 있는데 그때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기억이 있다. 당시 나는 [tv청년내각]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중이었는데 나는 그와 몇 마디를 나누다가 ‘이 사람을 청년내각의 초대 총리로 영입하면 어떨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로 그는 깔끔했고 달변이었으며 예의발랐다. 한 마디로 준수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때는 그가 ‘김대중 죽이기’, ‘김영삼 이데올로기’ 등의 저서를 내기 전이었고 단지 정력적인 방송학자요 지방대학의 교수였다. 지금의 그는 그때의 그가 아닌가.
|contsmark2|- 변신입니까, 변심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나는 여전히 강준만일뿐입니다.- 무엇을 꿈꾸고 계십니까.- 한 마디로 문화권력자라고 할 수 있죠. ‘시대와의 간통’을 저지르는 문화권력이 아니라 진정 ‘시대와의 불화’로 학연, 지연, 혈연 등 이른바 연고주의에서 누락된 아웃사이더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문화권력 말입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당연하죠. 저는 노골적으로 특정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죽일 놈’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해 두고 싶습니다. 결코 내 스스로가 전위에 서서 정치가 노릇을 하진 않을 거라는 말이죠. 지금 아무리 떠든다고 해도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시간이 나의 진정성을 확인시켜 주는 수밖에.- 자신감이 넘치십니다.- 저는 솔직한 게 좋습니다. 저 자신이 옳다는 게 아니라 제가 느끼는 것, 제가 바라는 것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는 일에 기쁨을 느낍니다.- 저더러도 가면을 벗으라고 호통칠까봐 두렵습니다.- (웃음) 저는 위선적인 지식인들, 특히 권력에 빌붙은 추악한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혐오합니다. 노골적으로 욕심을 드러내지 않고 점잖음으로 무장한 채 실속을 챙기는 부류들의 그 질긴 가면을 하나하나 벗기기 위해 차곡차곡 자료들을 모으는 중입니다. 시궁창 속에 빠져있는 정치인들보다 거기에 몰려드는 파리 떼 같은 사이비 지식인들이 저는 더 싫습니다.
|contsmark3|문득 작곡가 겸 가수인 한돌의 ‘못생긴 얼굴’ 노랫말이 떠오른다.“열 사람 중에서 아홉 사람이 내 모습을 보더니 웃고 있네 나도 같아 따라서 웃어보지만 위선은 싫다 거짓은 싫어”(한돌은 그후 ‘개똥벌레’라는 노래에서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무덤이 내 집인 걸”이라며 개똥무덤과도 같은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할까 하는 철학적 질문을 끌어낸 바 있다)- 반성보다는 반발이 많을 듯 싶은데.- 나는 그들과 직접 맞붙어 싸우려는 게 아닙니다. 시비를 걸자는 의도도 없습니다. 그들이 누리는 권력이나 영향력에 비해 그들이 느끼는 사회적 책임감이나 윤리관이 너무도 허술하고 때로 기만적이기까지 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이 잘못 살아온 길을 되돌려 정도를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입니다.- 국립 서울대에 대한 증오심(?)도 대단한 것 같은데.- (또 웃음) 증오는 아니고 이 사안 역시 잘못된 걸 바로잡아보자는 제 의지가 다소 격하게 비쳐진 양상인데요, 현재 지방대의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남북통일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 중의 하나가 지방의 탈식민지화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나 문제는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또 누구도 그 문제를 풀기 위해 팔 걷고 나서는 이가 없기 때문에 제가 계속 부르짖고 있는 겁니다. 시끄러워서라도 뭔가 궁리를 해야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까지 쉬지 않고 ‘짖을’ 생각입니다.- 서울의 대학에서 초빙제의가 있다면.- 처음 이곳에 내려와서는 솔직히 기웃거리기도 했었죠. 몇 해 지나고 나서는 ‘내가 먼저 눈치를 보지는 않겠다. 다만 스카웃 제의가 있으면 마지못해서’ 식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마음을 굳혔습니다. 아무리 강력한-그럴 리도 없지만- 제의가 와도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쪽이죠. 제자들에게도 여러 차례 공언했습니다.- 글만 읽다가 직접 만나본 후에는 뭐라고 얘기합니까.- 실망했다고 하죠. 운동권인 줄 알았는데 너무 약하다(웃음) 뭐 그런 거죠. 어떤 이는 진보인 줄 알았는데 이건 왕보수다 이런 얘기도 하고.
|contsmark4|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유일한 통신수단은 팩시밀리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짐작하기로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가로막는 일체의 걸림돌을 사전에 제거하자는 의도일 성싶다. 그런 그가 프로듀서연합회의 인터뷰에 응해준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contsmark5|- 전 용기가 없어서 늘 남을 칭찬하는 글만 쓰는데요.- 용기가 없다니요. 남들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깜짝 놀랄만한 고백들을 많이 하셨잖아요. 그 또한 엄청난 용기죠.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contsmark6|덕담들이 오갔다. 방심한 사이에 그는 어느새 나를 인터뷰하고 있다. 여차하면 당할 것 같다. 맥주병의 수가 꽤 늘었다.내가 그를 만나 인터뷰한다니까 후배 중에는 “웃기는 그림이 나올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 친구도 있었다. 나의 지나친(?) 부드러움이 그의 넘치는(?) 도전의식을 어떤 식으로 감싸안을 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는 ‘인물과 사상’을 통해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이것이 그 책의 부제이다)고 엄중하게 선언했지만 내가 만나본 그는 시종일관 유머가 넘치는 ‘재미있는 인물’이었다.(그가 pd출신이라는 사실을 흐릿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 본인에게 실례가 되는 것일까.)이름을 얻으면 사람이 바뀌는 게 아니라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 입장과 명성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애쓴다면 이름값을 하는 것이고 그 반대이면 위선자로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다. 간간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그는 이 시대의 명망가, 유력지 들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고 강하게 전의를 불태우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늦은 밤 다시 회사로 돌아오면서 옛날에 외던 시 한 자락이 무심결에 떠올랐다.“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그리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와 나는 그리고 그의 분노와 정열은 마침내 하나의 접속어로 ‘연결’된 것이다.|contsmar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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