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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들이여, 현실을 "차단"하지 말자
함흥석
(MBC 심의실)
l승인1997.0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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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 거리에서 항의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제작 현장으로 돌아왔다. 이 때쯤이면 우리는 언제나 늘 그렇듯, 현실의 생생한 역동성을 등지고 마치 어항안에 갇힌 붕어가 된 것 같은 단절감에 시달려왔다. 스튜디오 창 "밖"의 현실과 "안"의 풍경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안의 풍경과 완고한 관행은 직전까지의 생생한 "현실감각"을 무디게 하고, "내면에서부터 한 귀퉁이가 서서히 무너지는듯한 허무에 가까운 느낌마저 강요하였다. 그동안 많은 프로듀서들이 이러한 고민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은 회의주의자나 방관자의 모습으로 변해간 것도 사실이다.
|contsmark1| 하지만 어쩌랴, 이런 고민은 대중과 늘 접촉해야 하는 우리들의 숙명으로서, 거부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현실을 차단하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의 엄연한 구성요소인 대중과 대화하라"는 절묘한 화법을 요구하는 "창"안의 관행속에서, 누가 이런 고민을 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제 이런 악순환에 가까운 고민은 그만하자. 그리고 가능하면 직설법으로 이야기 하자. 주부들까지 노동법 철회에 공감하여 들고 일어난 마당에, 그 많은 tv와 라디오의 주부 대상 프로그램들이 "노동법과 관련한 주부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서 주저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겠는가? 동시대의 삶을 기록하는 것이 본질인 다큐멘터리에서, 대다수 한국인들의 운명을 좌우할 "노동법 사태"를 외면하는 일이 가능한가? 시사 프로그램이 노동법 사태를 외면한다면, 그러고서도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을 더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contsmark2| 하지만 이렇게 명백한 경우에 대해서까지 "감놔라 배놔라"하는 것은 주제넘는 일일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드라마, 예능 , 라디오 오락프로그램 등 전체 방송 시간의 거의 대다수를 점하는 프로그램들과, 또 그 제작자들의 의식들이다. 먼저 이들 프로그램에까지 현재 우리가 당면한 "정치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적 위기"를 표현하고 반영하는 방법은 소극적인 의미에서,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mc들의 오프닝, 브리지 멘트에서, 그리고 시청자나 청취자의 편지사연이나 전화통화를 통해, 이런 현실을 담아내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 나라가 시끄러운 마당에 마치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잡담으로 일관하는 것보다, 이러는 편이 오히려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코미디야말로 "풍자"를 통하여 "현실"을 해석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노동법 사태"를 둘러싼 훌륭한 정치 코미디 소재는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한 당장은 드라마가 노동 문제만을 주제로 해서 작품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일일극이나 주간극에서 이야기전개의 한 모티브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contsmark3| 문제는 프로듀서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한 발 양보하여 모든것이 불가능하다 해도 최소한, 당면한 "현실"을 프로그램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 고민이라도 해달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mbc동지들이 최루탄을 마셔가며 노동법사태를 외면한 "갑갑한 소리와 화면"만을 전달하였다. 방송인인 우리들 자신조차 이러한 "부조리"한 방송현실에 괴리감을 느끼는 마당에 시청취자들의 심경은 어떠하겠는가?
|contsmark4| 현업에 복귀한 이상, 이제 이런 식의 "방송과 현실의 고리"를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방송화면을 "정치현실"로 가득 채우자는 말은 아니다. 최소한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을 좌우할 "노동법 사태"라는 현실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는 제작자세만은 계속 유지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에 복귀한 우리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는 당면한 현실을 차단하지 않는 것이다. 현실의 반영은 단순히 "보도"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제작하는 모든 프로그램속에서 "현실"은 때로는 은폐된 모습으로 때로는 잇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공정보도"의 임무를 보도국 동지들에게만 짐지워서는 안될 것이다.
|contsmark5| 이 글은 필자가 mbc노조 특보 1월22일자에 mbc노조 편성제작 민주방송실천위원회 명의로 게시한 글이다. 13일간의 방송4사 노조 총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한 pd들에게 공정방송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주길 당부하고 잇는 이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모든 pd들과 함께 읽고자 한다.
|contsmark6|<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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