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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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만나다
KBS 현상윤 PD
MBC 고참 노동자 전연식 PD
EBS 신참 노조원 이두일 PD
  • 승인 1997.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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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계란 투척 시위의 배후(?)kbs 현상윤 pd
|contsmark1|방송사 노동조합이 총파업에 ㅅ가세하기 시작한 달초부터 신문의 한 지면을 심심찮게 장식해왔던 "달걀 시위"의 시발점은 방송4사 노조원들의 신한국당 당사 계란 투척 사건부터 이다. 이를 배후조종(?)한 이는 현상윤 pd. kbs 노조 부위원장인 그가 시위 현장에서 신한국당을 상대로 거침없이 쏟아 부은 말("욕설"이라고도 한다)때문에 예정에 없던 달걀들이 신한국당 당사로 무수히 날아들었다. 때문에 그는 대번 파업스타로 떠 올랐으며 각 방송사 파업현장에 한동안 얘깃거리를 제공햇다. 현장에 있었던 어는 pd는 심지어 "카타로시스를 느꼈다"고도 했다.
|contsmark2| 그는 이번 파업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kbs로서는 90년 4월 투쟁이후 7년만의 파업투쟁이었다. 그 4월이래 웬지 흩어져만 가는 듯했던 노조원들이 매번 kbs본관2층 민주광장을 가득 메우고 한목소리로 외쳐댔다. "오랫동안 누적돼왔던 불만들이 민주화되고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기본적으로 변화하지않고 있던 관제방송의 양태들로부터 억압받고 있었던 것에 대한 불만들이 터져나온 거지요" 90년 그 4월에도 그는 공정방송에 대한 열정 하나로 참 열심히 뛰어 다녔다. 그때 그는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소총수"에 지나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지금은 싸움을 진두 지휘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새삼 열심히 파업에 참가하고 잘 따라와준 조합원들이 누구보다 고맙다. "지도부에 의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끌어진 싸움이라기 보다는 조합원들의 자발적이고 자체적인 투쟁동력으로 진행된 싸움이였습니다. 90년 이후 공백기로 조합이 조합원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이런 어려움들을 일시에 극복할 수 있을만큼 놀라울 정도로 조합원들이 단결해줬다는 점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단결력이 이번 파업투쟁의 중요한 성과임을 그는 잘 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 개악에 대한 저항을 광범위하게 조직해낸 것은 물론, 내부적으로도 7년동안 허물어진 노조의 조직력을 복원하는 기틀을 잡았고 일정정도 매너리즘에 빠졌던 공정방송투쟁도 새롭게 힘받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성과지요" 이런 소중한 성과를 무위로 돌릴 수 없다는 생각이 얼마남지 않은 그의 임기를 더 바쁘게 할 것이다.
|contsmark3| "결국 방송인들도 사회의 민주화 과제나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개혁과 변화에 같이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게기가 됐을 것입니다. 공정방송도 개개인의 의지만으로 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제작책임, 제작자율권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노력이 뒷받침돼야 하죠. 조합으로서는 방송통제 시스템과 환경을 개선할 수 잇는 노동법, 방송법 들 법 제도적인 문제에서부터 단체협약 등을 통해 방송인들이 개개인의 양심을 지켜낼 수 있고 자율적으로 업무에 충실할 수 있는 방송환경을 만들어 나가는것까지 총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다른 생각할 여지가 어뵤지만 pd로서 그는 코미디언이나 역사드라마를 하고 싶어 한다. 그도 pd인 것이다. 그래서 pd로서 pd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하고 했다. 개별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되도 잇는 pd들이 사내 어느 집단보다 앞서 열심히 동참해 든든한 모습을 보여 준것에 대해, 그리고 그런 열정이 방송을 바로세우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되길 바라다고.<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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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천만 노동자중의 한 사람일 뿐"mbc 고참 노동자 전연식 pd
|contsmark7|입사 15년차인 중견 pd, 차장대우 직위를 단지 1년 9개월. 그가 파업에 참가해 집회장을 어슬렁거리거나 뒷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는 것이 후배들의 눈에 띄었다. 화사내에서 직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파업이나 노동조합 집회 등에 참가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차장급만 돼도 비조합원이 훨씬 많고 더구나 파업에 집회 참석까지 맘편하게 하는 이는 좀 더 드물다. 그런데 그는 애써 치켜세우려는 기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저도 천만 노동자 중의 하나일 뿐이죠. 그래서 파업할 수밖에 없습니다."하고 만다. 더 열심히 하지 못해서 오히려 부끄럽다고 했다. 천만 노동자의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냐고.
|contsmark8| 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나는 보통의 조합원일 뿐이고 노동자의 권리라는 게 개인적으로보다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거니까 조합을 결설하고 그 구성원이 되려 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다"라거나 또는 "파국으로 가지않고 잘 해결되면 좋겠지만 애초 잘못된 노동법이나 안기부법을 무효화하는걸 목표로 시작했으니 그게 관철될 때까지 싸워야 되는거 아니냐"는 식이다. 갑자기 그런 그의 주장들을 듣고 있자니 너무나 단순명확한 일인데 왜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앗는지 헷살릴 정도다. 그랬다. 그에게는 조합원으로서 파업에 참가하고 집회에 참여하는게 특별한 각오나 특별한 의식, 의지의 소산일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옳다고 이끄는대로 움직였고 그건 하나도 새삼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무조건 쫒아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지난 3월 mbc 강성구 사장 퇴진투쟁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빗대어서 머슴이 주인보고 나가라 마라 할 수 있는 있이냐고 하지만 방송노동자가 어디 사장 한사람한테 매어잇는 보통 머슴입니까. 국민들에게 제대로 하겠다는데 주인이 못하게 하니 그런 주인 싫다할 밖에요"
|contsmark9| 역시 간단하지만 그게 바로 핵심인 그런 행동의 근거를 그는 가졌다. 물론 그로서도 파업하면서 여느 pd들 못지않게 안타까운 점이 많다. 한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pd로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 그가 맡고 잇는 "생방송 두 여자"는 일일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파업기간 중 결방되지 않았고 아주 세심한 눈썰미를 갖지 않았다면 시청자들도 별반 변화를 못 느꼈으리만큼 잘 나갔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눈에는 보인다. 손이 딸리니깐 땜질식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엇던 자기의 프로그램을 밖에서 모니터하면서 안타까웠다고 했다. 심지어 "더 안타까운건 시청자들이 왜 파업을 하는 지 조차도 모른다는 것입니다.한 술 더떠 월급도 많이 받고 먹고 살만 할텐데 왜 파업하냐 하는 사람도 있어요"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contsmark10| 사람들한테 영악한 면이 있어요. 자기에게 닥치지 않으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게 눈감는다고 해결될 일입니까.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선진국에 다 잇는 제도라고 생각해본적 없어요. 사회보장제도나 복지제도, 정치적 민주화 그 어느것도 "선진국형 노동법"을 받아들일 조건이 아닌데 말이죠" 지난 연말부터 온 나라와 국제사회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노동자들의 항의가 이유있다고 새삼 느껴진다. 논리적으로 절차의 잘못과 조항의 악법성을 하나하나 따지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을. 그가 말했듯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것이다.<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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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노래패 이끄는 "똑남이pd"ebs 신참 노조원 이두일 pd
|contsmark16| 방송4사 첫 연대파업이라는 역사의 현장속에 당당히 서 있는 "신참pd"를 찾기 위해 각 방송사 노조에 알아보는 과정에서 "말잘하고 재미있는 신참pd" 한명을 소개받았다. ebs "역사속으로의 여행"ad를 맡고 있는 이두일 pd(기획제작부, 95년 입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실제로 본 그는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앳된 모습이었다. 그에게 먼저 파업에 참가하게 된 개인적인 게기를 물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역사에 부끄럽지 않고 싶었어요. 97년 1월, 그 현장에 나도 참여했었노라고 나중에 나의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요. 대학시절 난 늘 뒤에 있는 입장이였죠. 학생이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잇는 지 고민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바로 그 "당사자"가 됏으니까요"
|contsmark17| 파업에 처음 참가한 신참pd의 눈에는 파업중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부 차장급 노조원들이나 중간간부들이 어떻게 비쳤을까. "글쎄요, 아무래도 씁쓸한 기분이죠. 그렇지만 아직까지 방송사의 파업이 어느정도여야 하는지 정리가 안돼요. 파업상태임을 직접 드러내는 별방이여야 하는지, 방송의 질이 좀 낮아지더라도 기본방송은나가야 하는지." 교육방송 파업참가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수가 너무 적어 집회 때 타 방송사에 비해 참석자가 적은 것이 섭섭하단다. 그래서 일부 차장급 노조원 선배들도 집회에 참여했으면 좋을거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이두일 pd가 ebs 노동조합 노래패"소리얼음"의 우두머리로 활동하고 있어서인지 파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일도 "노래패"와 관련된 것이었다. "지난 13일 "소리얼음"을 재결성했어요. 활동이 뜸했는데 파업을 계기로 신입회우너도 모집하고, 그 와중에 제가 "대장"이 됐죠. 이제 겨우 시작했는데 언노련 집회에서 방송4사 노래패 합동공연을 하더라군요. 밤새 "율동"까지 준비했는데 실제 공연에선 "ng"가 났죠. 내가 제일 많이 틀렸을 걸요! 하지만 같이 준비하면서 느끼는 "일체감"이 좋았어요." 그는 사람들 사이의 정서적인 교감을 중요시해서인지 파업의 성과로도 "일체감"을 꼽았다.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성과는 특별히 없지만 우리의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내부적으로 보면 교육방송 사람들이 "직능이기주의"를 버리고 교육방송 노동조합" 깃발 아래서 하나될 수 잇었던 것. 개인적으로는 잘 몰랐던 선배들과 친해지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죠" 대학방송국 출신인 이두일 pd는 "교육"과 "방송"에 대한 요구를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곳으로 교육방송을 택했다며, 방송의 상업적인 면을 극복하고 싶다고 한다. "좋은 pd란 좋은 소재와 유익한 내용을 "방송의 재미"라는 형식으로 포장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요? 겉은 잘지만 속은 몸에 좋은 약이 들어있는 "당의정"같은 교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시종일관 진지했지만 사진촬영을 한다고 하자 옷매무새응 고치느랴 분주한 그를 보며 주위에 그를 두고 똑남이(똑똑한 남자), "멋을 아는 남자", "매너 리", "존경하는 후배"라고 평가하는 것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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