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초대석5 - 주철환이 만난 사람 - 최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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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스타하기 나름

|contsmark0|이번호에 주철환이 만난 사람은 연기자 최진실 씨다.‘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깜직한 cf 하나로 혜성처럼 나타나 10년을 한결같이 인기 정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그 유명한 ‘수제비론’, ‘최진실 신드롬‘ 등 문화비평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오늘의 인기가 결코 내일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부침 많은 연예계에서 10년의 수성은 결코 쉽지 않은 일.촬영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그는 촬영 중의 차림 그대로 인터뷰에 응하는 것을 양해해 달라는 말을 꼭 써달라고 했다). <편집자>
|contsmark1|스타는 그 반대일지 몰라도 스타론은 대체로 귀납적이다. ‘이래야 스타’보다는 ‘이래서 스타’가 더 설득적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이 시대의 pd에게 스타란 어떤 존재인가를 다소나마 해명해 보는 것이 이 글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어떤 pd는 스타를 생산해 내고 어떤 pd는 스타를 소모(소비를 넘어)한다. 어떤 pd에게 스타는 경배의 대상이고 어떤 pd에게 스타는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다. pd는 스타를 ‘움직여’ 대중의 기호를 ‘움직이는’ 도구로 쓰고자 하지만 스타는 pd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pd와 스타가 기분 좋은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자간 힘의 균형이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그 힘의 배후에는 변덕스런 대중의 시선이 있기 마련이다.은하계와 마찬가지로 방송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계에도 많은 스타들이 있다. 오리온이나 안드로메다, 카시오페이아처럼 이름과 함께 이야기 - 신화 또는 전설 - 를 지닌 불멸의 스타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짧은 순간 빛을 발하는 듯하다가 졸지에 수직낙하해 버리는 별똥별 신세의 뭇별들도 부지기수다. pd가 스타를 대할 때 ‘장난감을 갖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 기어이 부숴버리는’(헤르만 헤세의 ‘아름다운 사람’ 중에서) 어린아이 같아서는 곤란한 까닭이 거기 있다. 대중은 추락하는 별을 통해서보다 늘 어둠 한가운데서 꾸준히 빛을 내는 항성을 통해 꿈꾸는 자들이다.
|contsmark2|최진실을 만났다. 섭외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터뷰를 위해 만났다는 게 다소 쑥스러운 느낌이다. 분장실은 작은 은하계다. 한쪽에선 김혜자 선생님이 대본을 외고 계셨다.
|contsmark3|-우리가 처음 스튜디오에서 만났을 때를 기억하나.-(웃음)벌써 너무 옛날일 같다.
|contsmark4|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1990년 8월 31일 금요일이었다. [퀴즈 아카데미] 제134회에 최진실은 초대손님으로 나와서 대학생들 앞에서 문제를 읽었다. 그런데 문제는 문제를 읽고 난 후에 발생했다. 방청객으로 앉아있던 대학생들 거의 전원이 - 남녀를 가릴 것 없이 - 최진실을 따라 우루루 몰려나갔던 것이다. 이유는 한 가지. 좀더 가까이서 그녀를 보고 그녀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다.그때 그녀는 오로지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 그 한 마디로 떠오르는 중이었다. 그냥 ‘귀여운 여인’일 따름인 그녀의 무엇이 젊은 대학생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가수 신해철의 이른바 ‘스타 해바라기 이론’에서 찾고자 한다. 신해철에 따르면 스타가 되기 위해선 모름지기 재능(해바라기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다)과 개성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용모(중심부를 에워싼 주변부에 해당한다)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맨드라미(b급 스타)밖에는 될 수 없다. 재능과 용모를 다시 둘러싼 오라(aura)가 없이는 결코 a급 스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최진실에게는 오라(아우라)가 있다. 최면술사의 손끝에서 흘러나온다는 그 영험한 기운이 그녀의 생글거리는 미소 뒤에서 너울대고 있는 것이다. 브라운관 안에서 혹은 밖에서 다소 지치고 비틀거리는 듯하다가도 불사조처럼 생기를 되찾는 배후에는 그녀의 내면에서 발하는 신비의 오라가 자리하고 있다.
|contsmark5|-본인이 느끼는 매력의 포인트는 무엇인가.-(얼마나 똑같은 질문에 시달렸을까. 그러나 짜증을 감춘 채)나는 연기자다. 나에게 매력이 있다면 작품 속의 인물이 매력 있는 것이다. 매력 있는 인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그런 상투적인 대답 말고 이 자리에선 다르게 말해보면 어떨까.-대중은 내게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나 역시 솔직한 게 좋다. 내 이름이 무언가.(계속 웃음)-기억에 남는 슬픔에 대하여.-밝혔다시피 나는 가난했다. 동정 받으려 했던 건 아니지만 수제비 이야기도 모두 사실이다. 그 괴로웠던 시절에 엄마는 일기를 썼다. 어느날 그 일기를 몰래 읽다가 ‘죽고 싶어도 진실, 진영 때문에 죽을 수 없다’고 쓴 부분이 마음에 걸려 밤새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후 더 슬픈 일이 생겼다. 돈을 조금씩 모은 후 그 일기장은 우리집 가보처럼 되어 있었는데 언젠가 도둑이 들어 그 일기장까지 훔쳐가 버린 것이다.(잠시 침묵) 그것만은 돌려 받았으면 좋겠다. 도둑에게는 아니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소중한 보석함이다.-가난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오기와 끈기다. 일을 하다 보면 솔직히 피곤이 극에 달하는 경우도 많다. 그때도 (웃어 보이며)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건 가난 때문에 기죽기 싫었던 사춘기 시절의 오기 덕분이다.-친구인 채시라와 다른 점은.-시라는 대중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해 주었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 같다.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tv에서는 무엇을 보나.-놀랄지 모르지만 난 뉴스를 가장 즐겨 본다. 신문도 꼼꼼히 보는 편이다.-대권주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나.-물론이다.(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표정)-어떻게 느꼈나.-앞과 뒤가 너무 다른 것 같다. 앞을 보면 점잖고 멀쩡한데 뒤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다. 난 정치계고 연예계고 뒤에서 비방하고 다니는 건 딱 질색이다. 왜 정정당당하게 당사자 앞에서 꾸짖지 못하는가.
|contsmark6|그러다가 또 한 마디를 추가했다.
|contsmark7|-떠날 때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비장감)-마흔살의 최진실은 어떤 모습일까.-한 남자의 아내, 연기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 그 정도일 것이다. 난 나이를 크게 거스르지 않는 연기자가 꿈이다. 마흔살에는 마흔살의 연기를 하고 싶다.-pd들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pd는 싫다. 신인과 스타급 연기자를 다루는 태도가 너무 차이나는 pd를 가끔 본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하지 않을까.(진실이는 진실에 입각한 이야기만 하는구나. 뜨끔한 pd들 많겠다.)-끝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지금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연기하고 싶다. 그래서 행복하다.
|contsmark8|몇해 전인가. [김한길과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의 구성회의를 우연히 엿들은 적이 있었다. 그날의 초대손님이 최진실이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최진실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최진실 신드롬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최진실씨, 도대체 신드롬이란 게 뭐죠?”나는 귀를 의심했다. “최진실씨. 최진실 신드롬의 정체가 뭐죠?”가 아니라 “최진실씨. 신드롬이란 게 무슨 뜻이죠?”였기 때문이다. pd를 조용히 불러 그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뾰족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만약 그 질문이 방송에 나갔다면, 그리하여 최진실이 머뭇거리며 허둥댔다면 시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해진다. 아마도 최진실의 무지를 탓하는 반응보다는 방송사의 무모를 질책하는 전화가 쇄도했을 것이 뻔하다. [일요일 일요일밤에]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몰래카메라’에서 최진실을 속여 천사날개를 단 채 나무에 매달았더니 엄청난 양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던 기억이 난다. 시청자의 정서는 한결같았다. 왜 최진실을 괴롭히느냐. 그녀를 내버려 두어라. 아니 행복하게 해주어라. 그녀는 어느새 시청자가 감싸안고 싶은 가장 친근한 별이 되어 그들의 가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대중은 스타 하기 나름’이란 사실을 그녀는 세월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대중과 스타를 이어주어야 할 pd들은 과연 무슨 말로 위로 받아야 할까. 결국 ‘스타는 pd 하기 나름’이라는 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로 자족해야 할 운명인 듯싶다.pd들이여. 최진실의 말을 귀담아 듣자.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한없이 약해지자. 앞과 뒤가 다르게 행동하지 말자. 떠날 때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무엇보다 세상 앞에 솔직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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